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라이프] 아! 단풍이여, 단풍이여∼…설악산 주전(鑄錢)골을 가다

[라이프] 아! 단풍이여, 단풍이여∼…설악산 주전(鑄錢)골을 가다
▲ 뉘라서 이 붉음에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인가.
 
장독대에 붉은 감잎이 날아와 떨어지자, 그 옛날 우리 누이는 ‘오메, 단풍들것네’(김영랑 시(詩))하면서 깜짝 놀라고 만다. 투박하지만 붉디붉은 감잎 한 장에 담긴 그 계절이 우리의 누이를 놀라게 하고 만 것이다.
 
그 붉음이 혹여 연정(戀情)은 아니었을까? 잊고 살았던 붉은 마음에 감잎 한 장이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뉘라서 그 붉음에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인가. 
설악산 주전골 2
주전골의 단풍은 남설악 최고의 단풍이다.
그 누이가 남설악 최고의 단풍이라는 오색(五色) 주전(鑄錢)골의 단풍을 보았더라면 뭐라 했을까? 아마도 놀라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감잎 한 장에 놀라는 그 여리고 순수한 마음이니 골골마다에 널브러진 단풍 앞에서는 정신마저 혼미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러했다. 아! 단풍이여~ 단풍이여~ 
설악산 주전골 4
산에는 단풍들이 제 몸을 살라 축제를 열고 있었다.
최근 몇몇의 산행을 하는 동안 가을산은 그야말로 단풍의 사태였다. 그 곳이 산이 아닐지라도 발 닿는 곳곳마다에는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는 단풍들이 제 몸을 살라 축제를 열었고, 그 축제에 초대된 사람들은 느닷없이 찾아온 행운에 저마다 탄성을 터트렸었다. 나 역시 적어도 올해만큼은 눈이 시릴 정도로 단풍을 만끽했노라 자부하던 중이었다. 
설악산 주전골 5
저 아찔한 단풍을 어이하랴...
사실 설악산을 넘어 이 땅의 최고 단풍이라는 주전골 단풍을 만나러 가면서도 단풍이야 그 단풍이 그 단풍이겠거니 했었다. 여기나 저기나, 오십 보 백 보... 그랬다. 차라리 또 단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말로 풀어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끄집어낼 만한 이야기도 없는데, 또 무슨 단풍 타령이란 말인가. 
용소폭포
길은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 인산인해다. 평일 낮이건만 10월 하순으로 접어드는 주전골은 사람들의 행렬을 끊임없이 받아내고 또 밀어내고 있었다. 오색약수에서 길을 시작한 무리는 용소폭포를 지나 만경대로 향하고, 우리 일행은 용소폭포 탐방센터에서 시작해 내리막으로 오색약수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불과 몇 걸음 떼지 않아,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오메, 이 단풍을 어이할꼬... 
설악산 주전골 7
오메, 이 단풍을 어이할꼬...
지금까지 본 단풍과는 그 규모나 결이 달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이 단풍을 능멸했더란 말인가. 단풍이야 어디에서건 볼 수도 있는 풍경이겠으나, 설악산이라는 웅장한 골골의 봉우리와 어울리는 모양새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비경이었다.
 
행렬의 이동은 더디고 또 더뎠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달라지는 비경 앞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한다. 차례를 기다려 비경을 담고, 충분히 찍고, 찍혔을 만도 한데, 그럼에도 그들은 굼뜨다. 
용소폭포의 물줄기가 실로 붉었다.
머지않은 곳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용소폭포다.
 
용소폭포를 홀린 듯 바라보다 퍼뜩 깨닫는다. 흐르는 물조차도 붉다. 단풍이 계곡물도 물들였더란 말인가. 그래서였을까. 용소폭포의 물줄기가 실로 붉었다. 
용소폭포에는 승천하지 못한 암놈 이무기의 한이 서려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옛날 이곳에 살던 한 쌍의 이무기 중 수놈만 용이 되어 승천하고, 암놈은 승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아 바위가 되고 폭포가 되었다더니, 아직도 그 울분을 삭히지 못한 암놈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흥겹고, 그래서 또 소란스럽다. 
설악산 주전골 11
주전골은 가짜 엽전을 만들던 장소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옛날 이곳 주전골은 워낙 외지고 골이 깊어 도적들이 이곳에서 지금으로 치면 위폐, 즉 가짜 엽전을 만들던 장소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이야 가을 단풍철이면 사람들로 홍수를 이루지만, 옛날에는 도적의 소굴로 안성맞춤이었을 듯도 싶다. 운 나쁘게도 신관사또의 행차를 모르고 쇠망치질을 한 게 그들에게는 불운이라면 불운이었을 것이다. 그 쇠망치질 소리가 그들은 은거지가 드러나는 빌미가 되었으니 말이다. 
설악산 주전골 12
그런데 이렇게 수려한 비경을 품고 살았던 그들이 고작 도적질로 연명을 했었다니... 언감생심 시인묵객이 되었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신조차 혼미해지는 이 황홀한 풍경 아래에서 고작 도적질에 가짜 엽전이나 만들고 있었다니... 그저 애석할 따름이다. 하기야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삶의 전부였을 그들에게 이 풍경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배가 고픈 그들에게는 이 풍경조차도 사치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녹음의 계절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가을이라니...
도둑들이 엽전 만들던 그날처럼, 주전골에는 눈물 나게 고운 단풍이 서럽도록 붉게 산을 불사르고 있었다.
 
어느 시인(이상국, <단풍>)은 단풍을 보며 헤어짐의 ‘슬픔으로 몸이 뜨거워진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었다.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 녹음의 계절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가을이라니... 그 황망함이야 뉘라서 다를 것인가. 
설악산 주전골 14
마지막을 이렇게 붉게 물들이며 떠날 수 있다면, 그마저도 아름다운 퇴장일 것이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아름다운 산화(散花)처럼 보인다. 서산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의 노을처럼 제 가는 마지막을 이렇게 붉게 물들이며 떠날 수 있다면, 그마저도 아름다운 퇴장일 것이다. 
설악산 주전골 15
설악산 주전골 15-1
새삼 ‘우리 늙어 가지 말고 고운 색깔로 물들어가자’던 시인(유지나)의 바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유효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늙음이 추함이 되지 않도록, 나름의 빛깔을 품은 채로 은은하게 빛나는 삶은, 어쩌면 살아가는 자의 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이런저런 객담이 다 무슨 소용이랴.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어 보인다. 자! 보시라~ 다만, 눈에 담았던 그 단풍과 풍경을 사진으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부족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설악산 주전골 16
설악산 주전골 17
선녀들의 목욕탕이었다는 선녀탕이다.
산과 계곡, 그리고 고운 빛깔로 수놓은 풍경은 실로 절경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할 표현조차 어렵다. 붉고 노랗게 채색된 계곡물은 흐르다 어느 순간 둥글게 머물러 스스로의 자태에 푹 빠져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앓는다. 선녀들의 목욕탕이었다는 선녀탕이다.
 
청아한 달밤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긴 곳이라니... 훔쳐보던 떠꺼머리총각은 오죽 했을꼬~ 기어이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의 욕심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탐방객들도, 그 길도 어느 틈엔가는 풍경이 된다.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나무데크의 길이 아스라하고 어느 순간엔 단풍 못지않게 차려입은 탐방객들도, 그 길도 어느 틈엔가는 풍경이 된다.
 
그들도 나도, 떠밀리듯 길 위로 흘러간다. 어느 때엔 아찔한 그 붉음이 아쉬워 발걸음을 붙잡아보려 하지만,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더니 장강(長江)의 뒷물결에 밀려나는 앞물결처럼 그렇게 밀리어 간다. 
설악산 주전골 20
어쩌자고 너는 이리도 붉었더란 말이냐.
그래도, 그렇게 하염없이 밀리어 갈지언정 어찌 이 아찔한 단풍을 놓칠 수야 있겠는가. 숨이 턱턱 막히는 붉음 앞에서 그저 벌어진 입은 좀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자고 너는 이리도 붉었더란 말이냐. 
단풍의 절정에 멀미가 난다.
시인(도종환,<단풍 드는 날>)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했었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고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보는 이는 그들의 절정이 감당하기 어려워 멀미가 난다. 
설악산 주전골 22
아마도 나의 절정은 아직도 이르지 못했음이라. 나에겐 이만큼 뜨거워지지도, 그래서 붉게 타오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듯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서는 스멀스멀 안에서부터 밀려나오는 그 무엇이 있기는 하다. 누이의 가슴에 확 엉겨 붙었던 그 붉음처럼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죽지 않았음이라. 
멀리 독주암의 모습이 보인다.
멀리 독주암이 아득하다. 원래는 정상부에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로 좁다 하여 독좌(獨座)암이었다가 현재는 독주암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 뾰족함이 참으로 서늘하다. 
설악산 주전골 24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사람들이 간다. 무릉도원의 저편을 향해 나아가기라도 하는 양 모두 다 들떠 있다. 천애의 절벽을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그 안목도 놀라운데, 나무들은 절벽을 병풍 삼아 제 살아있음을 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 풍경 앞에서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악산 주전골 25
단풍을 문상하러 온 문상객들로 온 산이 북새통이다.
단풍더러 ‘너의 죽음이 국민장이 되는구나’라고 읊었던 시인(박가월,<단풍1>)이 떠오른다.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업적은 미비한데 화려한 장례식에 명산은 문상하느라 온 나라가 북새통’이라던 시인의 지적은 바로 눈앞의 현실이다.
 
국민장에 문상하러 온 나도, 다른 이들도 이 단풍이 훅 져버리면 어쩌나... 간절한 마음 가득이다. 저 아름다움이 스러지고 나면 이 산은, 우리는 또 오죽 가슴이 미어질 것인가. 그 허전함을 어이할까. 그래서일까. 시인(박태강,<단풍>)은 ‘빨개져도 놓지 마라. 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이 된다고 안타까워했었나 보다. 
설악산 주전골 26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헤어짐 없는 만남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저 욕심일 뿐이다. 갈 때는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아릿한 물빛인지도 모를 일이다. 
설악산 주전골 27
그런데 이런... 단풍의 스러짐을 걱정하느라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을 잊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계곡 길은 어느 순간 기어이 오색약수로 이끈다. 아직도 감흥이 여전한데 길은 제 맘대로 사람들을 주전골 밖으로 밀어내고 만 것이다. 회자정리를 외쳤지만, 그 일이 제 일일 때에는 쉽사리 인정할 수 없음도 인지상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설악산 주전골 28
설악산 주전골 28-1
그래, 왔으면 가야하고, 만났으면 헤어짐도 당연한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인다. 감흥이야 꼭 시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어설픈 위로를 한다. 뒤돌아본 주전골은 여전히 붉고, 아름다웠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오색약수터에도 사람들이 가득이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오색약수터에도 사람들이 가득이다.
 
주전골을 내쳐달려온 계곡물은 오색에 이르러 약수가 되었나보다. 사람들은 계곡 바닥의 약수터에서 나오지도 않는 약수를 퍼 담느라 분주하다. 하기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목을 축이려면 물탱크에서 약수가 콸콸 쏟아져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오색약수터 모습
일행 중 리더의 손짓이 바쁘다.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서 붉음에 취했던 환희의 들뜸과 기약 없는 헤어짐이 주는 아쉬움을 발견한다. 어쩌랴. ‘여행이란 본디 돌아가기 위한 연습’이라 하지 않던가. 비록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터벅터벅... 돌아가는 발걸음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가득 매달려 있다. 
설악산 주전골 31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