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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먹이 얻어먹던 반달곰…지리산 야생에서 퇴출

[취재파일] 먹이 얻어먹던 반달곰…지리산 야생에서 퇴출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 1마리가 방사된 지 1년 만에 야생에서 쫓겨났다. 탐방객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재미에 빠진 게 화근이 됐다. 반달곰의 이름은 'RM-62'다. 러시아산 수컷으로 2004년 반달곰 복원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리산에 방사한 62번째 개체란 뜻을 담고 있다. 지난해 5월 러시아 하바롭스크 지방 숲에서 발견된 이 반달곰은 태어난 지 만 2년이 안 된 어린 개체이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로 보내졌고, 지리산에 방사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지난달 19일 지리산 천왕봉 근처에서 포획틀로 반달곰을 붙잡아 기술원으로 데려왔다. 이유는 탐방로 근처에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보고 도망가지 않고, 탐방객이 던져주는 먹이를 얻어먹는데 길들여졌다고 판단해서다. 야생성을 잃게 되면 자연적응이 어렵고, 탐방객들이나 서식지 근처 농가에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종복원기술원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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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숲에 풀어 놓은 지 1년 만에 어린 반달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RM-62'가 처음 목격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5월이다. 한 탐방객이 노고단 탐방로 근처에서 반달곰을 발견하고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 속 'RM-62'반달곰은 탐방객을 보자 화들짝 놀라 나무 위로 달아났다. 종복원기술원은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고, 석달 뒤인 지난 8월에 반달곰을 붙잡아 노고단과 천왕봉 사이 벽소령에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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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반달곰은 다시 노고단 근처에 나타나 탐방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등산객들로부터 초콜릿과 과일, 음료 등을 얻어먹었다. 반달곰복원팀은 서식지 이주 방사가 실패했다고 보고, 지난달 초 'RM-62'를 2차 포획해 노고단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산청 내원사 근처 골짜기에 방사했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야생에서 먹이를 찾고 지리산 숲에 잘 적응해 살아가기를 바랬다. 가을철에는 도토리와 밤, 머루 등 반달곰이 좋아하는 먹이가 숲에 풍부하기 때문이다.
[취재파일] 먹이 얻어먹던 반달곰…지리산야생에서 퇴출
기대와 달리 어린 반달곰은 또다시 탐방로 근처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번에는 노고단이 아니라 천왕봉 근처에서다. 일부 등산객은 반달곰이 어슬렁거리는 모습과 먹이 먹는 장면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반달곰을 추적관찰 하던 연구팀은 'RM-62'가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야생적응이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 19일 세 번째로 붙잡아 종복원기술원 학습장으로 데려왔다. 더 이상 자연 방사는 어렵고, 새끼 반달곰 증식을 위해 활용하기로 했다. 어린 반달곰이 자연의 보금자리인 지리산 숲에서 사람 손을 떠나 야생으로 살아갈 길은 사실상 막혔다.
[취재파일] 먹이 얻어먹던 반달곰…지리산야생에서 퇴출
'RM-62'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한국과 러시아가 맺은 환경협약 덕분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반달곰의 복원과 유전 다양성확보를 위해 2천16년부터 5년간 반달곰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들여오기로 했다. 'RM-62'는 16년 이후 우리나라로 들어온 9마리 중 1마리다. 나머지 8마리 가운데 5마리는 지리산 야생 숲에서 살고 있고, 3마리는 방사용이 아니라 새끼 증식용으로 들여와 종복원기술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취재파일] 먹이 얻어먹던 반달곰…지리산야생에서 퇴출
자연적응에 실패한 반달곰은 'RM-62'뿐이 아니다. 지난 8월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RF25와 KM54 두 마리 반달곰이 잇따라 포획돼 야생에서 퇴출됐다. RF25는 산속 암자에 자주 내려와 창고를 들락거리며 먹이를 찾았다. 불안을 느낀 주민 신고로 결국 포획해 데려왔고, KM54는 양봉농가에 피해를 줘 지리산에서 쫓겨났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문광선 센터장은 "일부 반달곰이 성질이 온순해서 등산객을 피하지 않는 게 아니고, 먹이를 노리고 접근하는 걸로 봐야 한다. 등산객들이 반복해서 반달곰에게 먹이를 던져줄 경우 반달곰은 등산객에게 먹이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배가 고플 경우 등산객을 덮칠 수가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취재파일] 먹이 얻어먹던 반달곰…지리산야생에서 퇴출
올해 야생에서 쫓겨난 반달곰 3마리를 포함해 복원사업을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자연적응에 실패한 반달곰은 모두 15마리다. 이 가운데 방사개체가 12마리이고, 자연에서 태어난 개체는 3마리다. 당연한 결과지만 사람과 접촉이 많았던 반달곰일수록 자연적응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에서 반달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종복원기술원 연구팀은 반달곰을 자극하지 말고, 우선 신속하게 그 자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사진을 찍거나 먹이를 줘서도 안 된다. 어린 반달곰이 피하지 않고 다가오는 모습이 귀여워 먹을 것을 주고 사진을 찍으며 친숙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반달곰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야생성을 잃게 해 자연환경의 낙오자로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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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야생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은 지리산 55마리, 김천 수도산 1마리 등 모두 56마리로 집계되고 있다. 반달곰이 백두대간을 따라 덕유산과 속리산, 소백산을 넘어 설악산으로 이동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멸종위기종 1급 반달곰이 잘 복원돼 백두대간을 오가며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간섭이 없어야 한다. 자연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서로서로 어울려 살아가도록 반달곰의 서식환경을 보호하고 존중해 줘야 한다. 우선 당장 할 일은 밀렵도구를 수거하고, 먹이 주며 사진 찍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지리산과 수도산에 사는 반달곰은 동물원 반달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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