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클래식 in BTS 월드

[취재파일] 클래식 in BTS 월드
"엄마, 데부시가 유명한 사람이야?"

발단은 뜬금없는 딸의 질문이었다. 데부시? 알고 보니 딸이 말한 '데부시'는 프랑스 작곡가 Debussy, 즉 드뷔시였다. 딸이 '데부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BTS 덕분이다. BTS 영상에 삽입된 곡이 너무 좋았는데, 이 곡을 Debussy라는 사람이 썼다 해서 궁금했다는 거다. BTS 영상에 드뷔시?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BTS의 '화양연화 on stage Prologue' 테마영상, 그리고 '유포리아: Love Yourself 起 Wonder' 테마영상에 드뷔시의 '달빛'이 나온다.

▲ BTS 화양연화 on stage : prologue

▲ BTS 'Euphoria : Theme of LOVE YOURSELF 起 Wonder'

▲ 조성진이 연주한 드뷔시 '달빛'

왜 '달빛'일까. 단순히 선율이 좋아서 넣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달빛'은 드뷔시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축제(Fêtes galantes)'에 실린 '달빛(Clair de Lune)'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의 내용과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선율이 잘 맞아떨어진다.

그대(달빛)의 영혼은 빼어난 풍경화
화폭 위를 광대와 탈춤꾼들이 홀리듯이
류트를 연주하고 춤추며 지나가지만
그들의 가면 뒤로 슬픔이 비치네…
고요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달빛
달빛은 나무에서 새들을 꿈꾸게 한다

(번역은 최영옥씨의 매경이코노미 기고 글에서 인용. 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4&no=1331025)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한다. BTS의 영상에서 '달빛'은 돌아갈수 없는 청춘의 한 때, 아름다웠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를 갈구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까지나 청춘의 한 때에 머무를 수만은 없는 법. 엄청난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인간은 청춘을 통과해 어른이 된다. '류트를 연주하고 춤추며 지나가지만 그들의 가면 뒤로 슬픔이 비치네'라는 시의 구절은, 영상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함께 즐기는 멤버들의 모습이 어쩐지 슬퍼 보이는 것과도 조응하는 듯하다. 청춘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BTS는 드뷔시 뿐 아니라 쇼팽의 음악도 소환한다. '유포리아: Love Yourself 起 Wonder' 영상에는 쇼팽의 '이별의 왈츠'도 등장한다. 도입부, 뷔가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나오는 '이별의 왈츠'는 깨지고 일그러진 듯한 사운드에 섞여 희미하게 들린다. 바다에 뛰어드는 행위가 현실을 직면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불협화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이별의 왈츠는 떠나 보내기 싫은 청춘의 시간과 이별하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 발렌티나 리시차가 연주한 쇼팽의 '이별의 왈츠', BTS 영상 보고 찾아왔다는 댓글이 많다.

▲ BTS 'Fake Love' 티저1

'이별의 왈츠'는 Fake Love 티저1 영상에도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불협화음이 끼어들지 않고 투명한 피아노 연주 그대로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BTS의 클래식 음악 '소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BTS는 '화양연화' 이후 'Wings'라는 앨범을 내는데, 이 앨범에 실린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 장면 장면이 '데미안'을 떠올리게 하는데, 뮤직비디오 중간에 RM의 목소리로 '데미안'의 한 구절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He, too, was a tempter. He, too, was a link to the second, the evil world with which I no longer wanted to have anything to do.

"그(데미안)도 또 하나의 유혹자였다. 그런 것이라면 이제는 영원토록 조금도 더 알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악하고 나쁜 세계와 나를 묶어주는 유혹자였던 것이다." (이하 전영애가 번역한 민음사판 '데미안'을 따름)


'데미안'은 평범한 소년 싱클레어가 신비한 소년 데미안을 알게 되면서 겪는 혼돈과 시련, 그리고 시련의 극복과 깨달음을 통해 성장하고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낸다. '데미안'이 '유혹자'로 그려지는 것처럼, 뮤직비디오 역시 '타락천사(뷔가 연기하는 역할이다)'의 유혹을 받은 멤버들이 안온한 천국을 벗어나 '타락'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타락'이라 하지만, 사실은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나는 '성장'에 다름없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데미안의 이 편지를 받은 싱클레어는 '압락사스'에 대해 궁금해한다. 압락사스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존재다. 싱클레어는 우연히 알게 된 괴짜 신부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압락사스'의 의미를 자세히 알게 된다. 피스토리우스는 종종 싱클레어에게 오르간 음악을 연주해주곤 했다.

"마음이 짓눌릴 때면 피스토리우스에게 전에 들었던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달라고 청했다. 그럴 때면 어두운 저녁 교회 안에서 나는 그 자체에 몰두하고, 그 자체에 귀 기울이는 이 기이하고, 내밀한 음악에 몰입하여 앉아 있었다. 그 음악은 번번이 기분 좋았고 나로 하여금 더욱더 영혼의 목소리들을 인정할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북스테후데는 평생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살았던 바로크 음악가로, 오르간 음악에서는 바흐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이다.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는 이 대목을 상기한 듯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소환한다. 바로 RM의 목소리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나오고 이어지는 부분이다. 싱클레어에게 오르간을 연주해주던 피스토리우스처럼, 뮤직비디오에서는 슈가가 오르간으로 이 곡을 장중하게 연주한다. 마치 나를 얽매고 있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하도록 이끄는 것처럼 들린다.

▲ BTS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

▲ 북스테후데 파사칼리아 D단조

뒷북인지도 모르지만, 딸이 언급한 '데부시'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 BTS의 주요 뮤직비디오와 컨셉영상들을 훑어보며 BTS가 어떤 클래식 음악을 활용했는지 알아봤다. 여기서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클래식 음악을 주로 살펴봤지만, BTS의 영상들은 음악뿐 아니라 기존의 미술작품과 문학, 철학 등에서 착안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딸은 요즘 드뷔시의 '달빛'을 종종 찾아 듣고 있다. '아미'들 중에도 BTS 덕분에 '데미안'을 찾아 읽게 되었고, 쇼팽과 드뷔시 음악의 매력에 눈을 떴고, 전혀 몰랐던 작곡가인 북스테후데의 음악까지 찾아 듣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 역시 'BTS 월드'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