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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직' 닥터헬기 없는 아주대 병원 이국종 교수 취재기 ①

"헬기 떴니?"…그는 소방헬기를 타고 환자에게 갔다.

[취재파일] '아직' 닥터헬기 없는 아주대 병원 이국종 교수 취재기 ①
이국종 교수는 김현우 앵커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녹화 장소인 외상센터 앞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8시 뉴스까지는 3시간 가까이 남아 있는데 뭐.' 여유로운 마음으로 중계 팀에도 지연 상황을 알렸다. 인터뷰를 부탁할 때부터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는 김지영 코디네이터가 양해를 구해 온 사안이었다.

이국종 교수는 36시간 병원 대기 근무를 하는데 그날(17일) 외래 종료시간은 오후 5시였다. 김지영 코디네이터는 환자 보호자들의 질문이 길어지면 늦을 가능성이 있고, 급한 환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 그 점을 꼭 알아달라고 했다. 이국종 교수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제쳐놓고 인터뷰에 응해달라 조를 정도로 경우 없는 기자는 아니잖나. 저녁 6시로 인터뷰를 미루고 기다리는 사이 이국종 교수가 내게 보여줄 응급헬기 관련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언이 왔다. 곧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생각에 안도하던 순간, 다시 연락이 왔다. 응급환자가 발생해 이국종 교수가 헬기를 타고 출동해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는 즉시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인터뷰는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어쩌지? 오늘은 철수구나.' 중계 팀과 대책을 의논하고 있는데, 수술복 위에 가운을 입은 이국종 교수가 외상센터에 급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의료팀과 몇 마디 대화를 한 이국종 교수는 서둘러 헬기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취재파일] '아직' 닥터헬기 없는 아주대 병원 이국종 교수 취재기 ①
"카메라 빼서 헬기장으로 오라 그러세요! 아님 가든지."

헬기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있으니 그 때 잠깐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5초도 안 될 것 같은 이국종 교수의 말에 마음이 급해졌다. 문제는 촬영 장비였다. 사전 녹화를 위해 설치한 카메라는 EFP(Electronic Field Production)인 탓이다. 중계차와 연결된 선을 빼면 촬영할 방법이 없었다. 영상취재기자 출신인 중계 감독이 다급하게 김지영 코디네이터에게 물었다.

"병원에 카메라 없어요?"

그렇게 빌린 수술 녹화용 캠코더를 들고 중계 감독과 함께 헬기장으로 뛰었다. 그러면서 회사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기다리는 팀에게 다급하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녹화불가' 네 글자였다. 어느새 해가 져 컴컴했다. 녹화를 위해 준비했던 조명이 선이 없는 스탠드 형이라서 들고 갈 수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헬기가 벌써 도착했으면 어쩌나 싶어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헐레벌떡 도착한 헬기장. 나는 잠시 머뭇댔다. 다들 복장이 같아서 누가 이국종 교수인지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앞에 이국종 교수 계시네요." 홍보팀 직원이 설명했다. 이국종 교수는 신발 끈을 조이며 팀원들에게 묻고 있었다.

"헬기 떴니?" (네, 이륙했습니다.)

나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국종 교수 옆에 일단 쭈그려 앉았다. 캠코더에는 마이크가 따로 없어서 평소 뉴스 오디오 녹음하라고 회사에서 나눠 준 작은 마이크를 꽂은 휴대전화를 이국종 교수 입 앞에 가져다 댔다. 많은 질문을 할 시간이 없었다. 여수에서 발생한 해경 승무원 사망사고 대처 과정을 먼저 물었다. 소방헬기, 해경헬기, 닥터헬기까지 석 대가 있는데도 외상센터가 있는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 15분이 걸린 상황을 이국종 교수는 어떻게 생각할까. 2초 정도 생각하던 이국종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 항공 전력을 이용해야 되는 지를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안다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모르는 것 같아요."

신발 끈을 다 맨 후, 점퍼 속에 무전기를 넣는 이국종 교수에게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사고 당시 석 대의 헬기 가운데 닥터헬기는 환자를 싣거나 내릴 수 있도록 사전에 정해둔 장소, 즉 인계점이 아니라서 안 갔다고 했다. 환자를 싣고 내리는 인계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는 물음에 수없이 응급 헬기를 타는 이국종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인계점 가지고 그렇게 하는 데는 전 세계서 여기 밖에 없을 거예요. (다른 나라는 어떤데요?)회전익은 최소한의 안전 공간만 확보 되면 어디든지 내려앉을 수 있는 게 장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런던이건 어디건 그렇게 하지 않고. 저희도 (오늘) 인계점으로 가는 게 아니라 현장으로 가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나의 질문은 여기서 끝났다. 이국종 교수는 더 바빠졌다. 새 장갑을 뜯으며 무전기를 체크했다. 이때부터가 유튜브에서 48만 회 이상 조회될 만큼 인터넷을 달군 이국종 교수의 '무전기 집어던지기' 상황이다. 
[비디오머그] 응급헬기 탑승 2분 전, 인터뷰에 응한 이국종 교수가 분노한 이유

째깍째깍 헬기 탑승 시간은 다가오는데 무전기 볼륨을 다 올려도 상대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헬기 소리가 멀리서 들리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는 상황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이국종 교수는 '이건 진정성의 문제'라며 무전기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헬기 쪽으로 이동했다. 무전기가 없는 점퍼 지퍼를 여미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Roger(알았다) 한마디만 할게."

119라는 글자가 선명한 경기 소방헬기가 도착하자 마자 이국종 교수는 환자를 데리러 출발했다. 뉴스까지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부랴부랴 캠코더 SD 카드를 꽂을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회사 웹하드에 영상을 올렸다. 그제야 안에 상황을 설명하고 인터뷰 편집을 부탁할 정신이 들었다. 이리저리 뛴 탓에 구두를 신고 있는 발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곳이 외상센터인데, 말끔하게 보이겠다고 구두를 신고 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진짜 죄송한데, 구두를 좀 벗을게요." 양해를 구한 나는 양손에 구두를 들고 노트북을 던져두었던 외상센터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몇 분 뒤 김지영 코디네이터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사족이지만 김지영 코디네이터는 대화 몇 마디 만으로도 사람을 안도하게 한다. 환자를 돌보는데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국종 교수는 경기도 화성으로 출동한 건데 그곳에 칼에 배를 찔린 환자가 있다고 했다. 아직 배에 칼이 꽂혀 있는데다 피를 많이 흘려서 오면 바로 수술에 들어간다는 설명이었다. "무전기 때문에 교수님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김지영 코디네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그라운드 팀과 환자 상황을 공유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일단 헬기 안에서 팀원 간 소통에 필요하거든요. 헬기 안은 너무 시끄러워서 바로 옆에서 말해도 잘 안 들려요. 그래도 저런 분이 한 명쯤은 있어야 세상이 바뀌지 않겠어요?"

다시 헬기 소리가 들렸다. '응? 벌써 환자를 실어 왔나?' 수원과 화성이 가깝게 붙어 있는 것도 있지만 차로는 도저히 왕복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래서 외상 환자는 헬기로 실어오는 게 중요하구나, 새삼 깨달으며 병원을 나왔다.

그날 밤 9시 41분, 카카오톡으로 넉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인계점 없이 활동하는 런던 닥터헬기를 촬영한 사진들이다. 이국종 교수가 보내라고 했다며 오늘 고생 많았다는 메시지가 함께 왔다. 환자를 실으러 출동했다가 바로 수술에 들어가는 바람에 충분히 인터뷰에 응하지 못한 걸 내내 마음 쓰고 있었나 보다.

오밤중이었지만 이국종 교수가 할 말이 많이 남은 듯 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려서 김승희 의원실 보좌진과 대화를 나눴다. 이국종 교수가 시간이 된다면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며, 증인이나 참고인 신청을 해보겠다고 했다. (이국종 교수는 내일인 24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이국종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취재기 2편에서는 이국종 교수가 전화를 건 이유, 이메일로 쏟아진 다양한 반응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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