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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금융감독원 직원의 '이중 생활' ①

'대치동 학원 강사들'로 말할 것 같으면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작성 2018.10.08 12:25 수정 2018.10.08 12: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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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금융감독원 직원의 이중 생활 ①
2008년쯤 한 후배가 회사를 그만뒀다. 언론사에 입사한 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기간이 그토록 빨랐던 후배는 내 기준으로는 아직 없었다. 몸담았던 언론사와 선배들에 대한 실망이 사직의 이유였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고,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퇴사 후 그가 논술 학원 강사로 재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다. 역시나 그 후배는 꽤 유명한 강사가 됐다.

최근 그 후배가 다시 떠올랐다. 어떤 제보를 받고서부터다. 서울 명문대에 자식들을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 '핫한' 대치동 학원 강사가 한 명 있는데, 그의 본업이 따로 있다, 라는 제보였다. 바로 금융감독원에 다니는 A 씨에 대한 이야기였다. 금감원. 정부 기관인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조직으로 국내 은행과 증권, 보험사 등 금융계 쪽에선 저승사자라고 불릴 만큼 권한이 막강한 곳이다. 따라서 금감원 직원들은 민간인이지만 공무원에 준하는 윤리 강령을 지켜야 한다. 실제 공공기관 운영법상 금감원 직원은 영리 목적의 다른 업무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런 기관의 직원이 '투 잡'을 뛴다?

A 씨에 대해 취재에 들어갔다. 금감원 직원의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소위 최고의 스펙을 갖고 있는 입사 11년차인 그가 어떻게 9~10년 동안 몰래 겸직을 해왔던 걸까. 그것도 학생들에게 얼굴이 팔릴 수밖에 없는 강사직을 말이다. 금감원에 취재 문의하기에 앞서 A 씨가 실제 언제, 어떻게, 무슨 강의를 하고 있는지 우선 확인해보기로 했다.

20대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해당 학원에서 강의 등록을 마쳤다. 강사 소개란에 나와 있는 A 씨의 이름은 두 개. 둘 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니었다. 사진도 없었다. 학원에는 존재하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지난 9월 어느 주말, 마침내 A 씨가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는 들고 난 학생들을 또렷이 기억했고, 강의 시간과 날짜를 주도적으로 바꿨으며 강의 내용을 평가하자면 그냥 말 그대로 전문 강사였다.

증거를 모아 A 씨를 찾아갔다. 그에게 "대치동 00학원의 □□□ 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 아내입니다." 그의 첫 반응에 외려 취재진이 놀랐다. 할 수 없이 그동안 강의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그때서야 A 씨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감원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겸직을 했던 부분은 반성한다, 다만 금감원과 이해관계가 없는 직업군이라 겸직 위반이라 생각 못 했다…. 그럼에도 그는 완전한 '사실'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내가 하던 강의에 자기가 조금씩 도와준 것이고, 강의가 늘어난 것 역시 최근 몇 년이 안 됐다, 강사료도 금감원 월급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등의 해명을 했다.

해당 학원과 제보자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A 씨가 금감원에 다닌 기간(10년)과 학원 강사로 뛴 기간(9년)이 거의 차이 나지 않았다. 강의를 주도한 건 A 씨 본인이지 아내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금감원에서 받는다는 평균 연봉 8천만 원대보다 더 많은 1억 원 안팎의 강사료를 최근 몇 년 간 받아왔다. 재직 기간 금감원 내에서 A 씨의 업무 능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A 씨를 통해 금감원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헐렁한'(?) 곳인지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얘기는 2편에서 다루기로 하자.

해당 학원에는 A 씨 같은 강사가 한 명 더 있었다. 수도권의 4년제 대학 전임 교수인 B 씨였다.

B 씨는 학원 강의에 오는 날이면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취재진이 B 씨를 추적해보니, 학원에 일찍 와도 차량 안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움직이더라도 학원으로 통하는 계단 대신 외부로 돌아 들어갔다. 그러고서도 학원 안에 바로 들어가는 대신 주변을 서성이다 강의 시작 5분 전 재빨리 들어가는 등 남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다.

해당 학원의 강사 소개란에 있는 B 씨의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해명은 어땠을까. 그 역시 A 씨의 첫 대응과 판박이였다. '내 아내가 하는 강의'라고 발뺌했다. 그런 B 씨에게 취재진이 증거를 들이밀자 그는 설명을 하겠다며 만나자는 제의를 했다. 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아내가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절박했던 모양이다. 학교 쪽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교수 신분으로 입시 학원에서 강의를 한 건 인정하고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는 총장 승인을 받을 경우 '사외이사'로만 활동할 수 있을 뿐 다른 영리 목적의 직업은 가질 수 없다는 교육공무원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B 씨 부부 역시 끝내 방어에 급급했다. 아내의 강의에 남편이 일부 보조를 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얼굴 없는 대치동 인기 강사, A 씨와 B 씨는 그렇게 닮은꼴이었다.

겸직도 능력일 수 있다. 원 직장의 업무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퇴근 이후 '내 시간'에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일이 무조건 지탄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양쪽 업무를 병행하며 본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노 프라블럼'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될 일이다. 더구나 회사 사규 정도가 아닌 공무원법을 따라야 하거나, 따르고 있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겸직은 능력이 아니라 그냥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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