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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V] "나는 아빠를 죽이지 않았습니다"…'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의 18년

※ SBS 뉴스의 새 스토리텔링 영상 컨텐츠 '보이스V'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와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순서는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 씨가 18년 만의 재심 결정을 받기까지 지난 과정을 되짚어본 '그것이 알고싶다 X 보이스V - 재심' 시리즈입니다.

김신혜.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바닷가 시골 마을을 떠났던 그녀.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며 어릴 적 이혼한 엄마 대신 아버지와 동생들을 보살폈다는 그녀가 올해로 18년째 감옥에 있습니다.

죄목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 그러나 그녀는 18년 동안 한결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나는 아빠를 죽이지 않았다"라고요.

■ 24살 큰딸이 아버지 살인범으로 지목됐던 18년 전 그날

사건은 2000년 3월 6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신혜 씨는 여느 때처럼 가족들을 만나러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자정이 넘어 고향에 도착한 김신혜 씨. 그런데 이튿날 새벽 아버지가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고인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임영복 / 당시 현장 출동한 소방대원 : "차에 치였으면 어디 상처도 있고 할 건데 그런 것이 잘 안 보이더라고요."]

어릴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했던 고인이 엉뚱하게도 집에서 6km나 떨어진 도로 옆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뤄진 경찰 조사.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은 바로 큰딸 김신혜 씨였습니다.

■ "나 아빠 안 죽였어요" 경찰 현장검증에서 달라진 그녀의 진술

고인의 몸에서는 독실아민이라는 수면 유도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경찰은 김신혜 씨가 수면제 30알을 잘게 갈아 양주에 섞어 아버지에게 권했고 그것을 마신 아버지를 자신의 차로 길가에 버리고 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습니다.

아버지 명의로 든 보험이 무려 8개라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사망보험금 수령, 수면제 30알, 교통사고 위장 유기 등 일종의 살인계획서처럼 보이는 김신혜 씨의 글도 발견됐습니다.

숨진 아버지가 김신혜 씨와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도 경찰 조서에 포함됐습니다.

앞뒤가 딱딱 맞는 것 같은 존속살해의 정황들. 그런데 경찰서에서 자백을 했다는 그녀가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김준호(가명) / 김신혜 씨의 남동생 : "그때 멍하니 서 있었어요 누나는. 누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고. 누나가 시키는 대로 안 하니까 (형사가) 욕을 하면서 뭐라고 했던 거는 기억이 나요."]

당시 수사 기록에도 김신혜 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해 임의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해온 김신혜 씨. 그러나 대법원은 존속살해와 시신 유기 혐의로 김신혜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그녀는 수감된 뒤에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국가 기관과 시민단체, 언론사에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모두 경찰이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경찰에 자수하라고 한 건 고모부였어요" 김신혜와 고모부의 엇갈리는 주장

그렇다면 경찰은 김신혜 씨를 어떻게 체포할 수 있었을까.

장례식에서부터 그녀를 의심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김신혜 씨 남매의 고모부였습니다.

[김신혜 씨 고모부 : "내가 물어봤어요. 병원에서. 마침 경찰이 그 당시에 왔었어요. 의심이 가니까 조사하는 과정에서요."]

경찰이 김신혜 씨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물어봤더니 김신혜 씨가 살인을 했다고 털어놨다는 고모부의 말.

[김신혜 씨 고모부 : "본인이 자백을 하니까. (뭐라고 자백을 해요?) 아버지를 죽인 게 맞냐고 하니까 자백을 했어요. 그 당시에."]

고모부는 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고 김신혜 씨를 데려가 자수하게 했습니다.

[당시 관할 경찰서 청문감사관 : "'김신혜, 확실한 거야?' 물어보니까 고개를 끄덕거리고 울었거든. 진술하고 너무 맞아 떨어지니까 누가 봐도 범인이지."]

그러나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김신혜 씨는 말을 모두 뒤집었습니다. 사건 당일 고향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고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 자백 그리고 또 자백…"현장의 증거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김신혜 씨. 경찰이 살인계획서라고 결론지은 김신혜 씨의 글귀 옆에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듯한 메모와 앞으로의 송금 계획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동생의 이름 곁에 있는 '아빠'라는 두 글자. 그녀는 진짜 아버지를 살해한 걸까요?

취재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고인의 몸에서 나온 약물을 조사했습니다.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수면유도제가
고농도로 검출된 상황.

[유성호 교수 / 서울대 법의학과 : "몸무게를 고려하면 제 생각에는 150알 정도는 먹어야지 그 정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검출된 농도만큼 맞춰보려니 가루 양이 워낙 많아 잘 녹지 않습니다.

[유성호 교수 / 서울대 법의학과 : "표시 안 나게 일반적인 술이라고 생각하게끔 먹일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김신혜 씨의 자백 외에 이 사건에서 확보된 증거물은 뭘까. 경찰은 그녀가 수면제를 밥그릇 위에 놓고 빻았고 가루를 행주로 훔쳐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적시했는데 수면제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마셨다는 양주병과 유리잔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그녀는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한 이유…"강요에 의한 자백이었다"

그렇다면 김신혜 씨는 왜 처음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을까요.

[김신혜 / 존속살해 혐의 무기수(당시 사건기록 대독) :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동생 대신 제가 징역살이를 하려고 제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이 말을 꺼낸 건 바로 고모부였다고 김신혜 씨는 말합니다.

[김신혜 / 존속살해 혐의 무기수 : "(고모부가 말하길) 저한테 허위자백을 하라는 거예요. 자백을 하라고. 네가 희생이 되면 네가 희생을 하나 하면 너도 살고 네 동생도 산다."]

남동생 준호 씨는 그날 밤 내내 할머니, 할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한방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용의자로 거론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김신혜 씨의 주장에 따르면 장례식장에서 고모부가 자기를 불러내더니 간밤에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이고 찾아와 뒤처리를 도왔으니 집안 전체를 생각해 자수를 하라고 충고했다는 겁니다.

믿을 수 없다며 남동생과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고 했지만 고모부가 극구 말렸다는 겁니다.

[김신혜 / 존속살해 혐의 무기수 : "동생한테 빨리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문을 나오려고 하고 고모부가 저를 잡고 그랬죠. 얘기를 더 하자고 그러면서 자꾸 시간을 끌더라고요."]

남동생 준호 씨는 아버지가 누나와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진술도 모두 고모부가 시킨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준호(가명) / 김신혜 씨의 남동생 : "(성추행 부분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것은 전혀 없는 얘기예요. 우리가 저렇게 말을 해야 누나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말한 거예요. 고모부가 그렇게 시킨 거니까. (경찰서 가기 전에요?) 네."

고모부를 직접 만나 물어봤습니다.

[김신혜 씨 고모부 : "('성추행해서 죽이게 됐다'라고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으세요?) 전혀 없고. (전혀 없었다?) 그럼요."]

하지만 당시 참고인 조서에는 아버지가 여동생을 성추행해서 분개했었다는 말을 고모부가 김신혜 씨로부터 들었다는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 "동생이 아버지를 죽였으니 대신 자백해라?"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을 또 한 명. 김신혜 남매의 막내 동생인 김지혜 씨(가명)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고향을 떠나 지낸 막내 지혜 씨. 힘겹게 꺼낸 그날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김지혜(가명) / 김신혜 씨 막내 동생 : "(아빠가 지혜 씨를 성추행한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확실합니까?) 네. (그럼 그 얘기는 어떻게 해서 나온 거죠?) 그거는 고모부 입에서 (뭐라고 얘기하던가요? 뭐라고 시켰어요?) 아빠한테 성추행당한 적 없냐고 화를 내시면서 (그런 적 없다고 얘기했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왜 계속 강압적으로 당했으면서 왜 자꾸 거짓말하느냐고 자꾸."]

[김지혜(가명) / 김신혜 씨 막내 동생 : "(그러면 경찰서에 가서 진술할 때 성추행당한 적이 있다고 진술을 했잖아요. 그 진술을 어떻게 된 겁니까) 고모부가 그렇게 얘기를 하라고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고요."]

그날 장례식장에서 고모부와 언니가 나눈 이야기를 동생은 이렇게 기억합니다.

[김지혜(가명) / 김신혜 씨 막내 동생 : "언니는 아니라고 했고 고모부가 또 오빠가 죽였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언니 딴에는 이제 또 '오빠가 아빠를 죽였다' 이래서 언니가 오빠 좀 불러 달라 했는데 고모부는 안 된다고 끝까지 강압적으로 밀어냈죠."]

김신혜 씨의 기억과 동생 지혜 씨의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다시 김신혜 씨의 고모부에게 물었습니다.

[김신혜 씨 고모부 :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네가 대신 자수하라고 말씀하셨다던데?) 내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것도 처음 듣는 얘기인데 (남동생이 죽였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하신 적이?) 들어본 적도 없고 금시초문이에요."]

엇갈리는 말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 군대 동기 데리고 압수수색한 형사…상처로 남은 강압수사의 흔적들

범행의 또 다른 동기로 지목됐던 아버지 명의의 상해보험들. 8건이나 되는 보험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보험 설계사 앞에서 거절하기가 어려워 일단 계약을 하고 해지하려고 했다는 게 김신혜 씨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8개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돼 있었습니다.

심지어 보험금 수령자는 김신혜 말고 두 동생도 함께였고 미성년자인 두 동생의 경우 친권자인 새어머니가 보험금을 받게 돼 있었습니다.

[김헌수 교수 /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 "치밀한 계획을 통해서 보험 살해를 모의했다고 보기에는 좀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꿔버린 18년 전의 사건. 그녀는 과거의 기록을 상대로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김신혜 / 존속살해 혐의 무기수 : "저한테 다 네가 모든 걸 다 입증해야 한다. 증거 당장 내놓아보라 하는데 갇혀 있는 내가 어딜 가요? 어디서 증거를 가지고 와요? 누구를 찾아와요? 왜 증명을 못 했느냐고요? 갇혀 있어 봐요. 전화 한 통도 제대로 못 써요. 내 가족 얼굴도 제대로 못 봐요. 그러면서 저한테 뭐를 증명하라고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경찰의 현장 검증을 거부했던 그날.

김신혜 씨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신혜 / 존속살해 혐의 무기수 : "제가 바닥에 딱 붙어 가지고 막 버티고 그러니까 저를 차에다 들어서 옮기려고 그랬어요 형사들이. 그래서 그 다음날 오전에 다시 저를 끌어냈어요. 제가 거기서 아니라고 막 울고 버텼거든요. 막 저를 엉덩이 잡아 가지고 들어서 올렸어요 저를."]

압수수색 영장 없이 수색당한 김신혜 씨의 집. 담당 형사가 김신혜 씨의 집을 뒤질 때 경찰이 아닌 자신의 군대 동기를 데려갔다던 황당한 이야기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담당 형사 : "수사 인원이 그때 4~5명 갖고 하니까 이제 갈 사람이 없어서."]

잘못된 방법으로 얻어낸 수사 결과들. 과연 우리는 신뢰할 수 있을까요. 조사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숱한 폭력까지 당했다고 김신혜 씨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준영 / 변호사 : "분명히 김신혜는 현장 검증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했고 재연을 거부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재연했다는 사진이 다 찍혀 있어요. 진술대로 재연한 것 자체가 자백을 사실상 강요당했다는 걸로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 교도소에서 18년간 메아리 친 외침…이제야 밖으로 나오다

김신혜 씨의 재심 청구가 3년 만에 받아들여지면서 복역 중인 무기징역 수형자에 대한 첫 재심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들. 그녀의 처절한 외침이 교도소 담장 안에서 메아리쳤던 세월이 무려 18년입니다.

[김신혜 / 존속살해 혐의 무기수 : "나는요. 대단한 거 바라는 거 아니에요. 뭐 나를 믿어 달라? 나라는 사람을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 나 그런 거 아니예요. 나는 기본적인 걸 원하는 거예요.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나 다른 사람들처럼 저 검사, 판사, 경찰들, 형사들처럼 저들처럼 똑같이 동등한 인격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거. 나 그거 알고 싶어요."

다시 시작될 긴 재판의 여정. 김신혜 씨의 범행 여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에 맞는 대가를, 죄가 없는 사람은 억울한 벌을 받지 않는 나라. 

우리는 언제나 법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스V] '나는 아빠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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