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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깰 각오로 임했다"는 FTA 개정 협상, 와 닿지 않는 이유

불확실성 없앴다지만…FTA 깰 만큼의 실리 찾기 공격 어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이 9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이라는 더 큰 소식에 가려 서명식은 상대적으로 언론에 비중이 작게 다뤄졌습니다. 과거 한미 FTA를 둘러싸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민감하게, 그로 인해 생길 가능성 있는 우려까지 경쟁적으로 보도가 이어졌고, 사회적으로 토론이 끊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광경입니다. 양국 정상이 모두 만족스러워하며 협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무 책임자인 김현종 본부장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타결되고 서명된 무역 협정이 한미 FTA 개정 협상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라며 스스로 점수를 높이 줬습니다. 추석 연휴 중에, 그것도 남북정상회담 후 이어진 한미정상회담 한가운데, 미국에서 전해진 '자평'을 가득 담은 소식으로 인해, FTA 양자협상의 실익을 따져보는 논란은 적었습니다.
한미 정상, FTA 개정협정 서명 (사진=연합뉴스)

● 김현종 본부장 "FTA 깰 각오로 협상에 임했다"

김현종 본부장은 개정협상과 관련해 "첫 번째 협상 때도 그렇고, 이번 협상에서도 한·미 FTA를 깰 생각을 하고 협상에 임했다"며 협정 파기 카드를 협상의 지렛대로 썼다고 말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시간이라는 개념에는 크로노스적 개념(객관적 시간)적 시간과 카이로스적 개념(주관적·상황적 시간)이 있다. 카이로스적 개념으로 봤을 때 FTA를 깨는 것이 오히려 '퀀텀점프(비약적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협상 상대에게 설명했다, 그 결과 (미국 측에서) 소규모 패키지로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고, 수용해도 국가와 민족 차원에서 크게 손해 보지 않고, 레드라인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개정 협상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게 브리핑의 목적인데, 현학적으로 표현해 헷갈리는 측면이 있지만, "개정협상을 소규모로 빨리 마무리 지은 건 우리가 잘해서이며 결과적으로 선방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김현종, 한미FTA 협상 브리핑(사진=연합뉴스)

● 한미FTA 개정협상, 누가 실익 챙겼나?

그렇다면 과연 한미FTA 개정협상은 스스로 자평할 만큼 "깰 각오를 하고 잘한" 협상인가를 짚어봐야겠습니다. 협상은 어차피 주고받은 것인 만큼 절대적인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겁니다. 보통 한쪽이 좀 더 나은 성적표를 받으면 한쪽은 약간 불리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양쪽이 모두 만족했다고 합니다.

누가 더 자국에 유리한 결과를 얻었는가는 회담 서명 후 양국 정상의 발언에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불확실성을 줄인 점이 큰 의미라고 했고, 트럼트 대통령은 "자동차, 의약품, 농산품 등에서 한국에 더 많은 수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미 중 무역분쟁으로 불안감이 커지는 때, 개정협상을 마무리해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을 줄였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거고, 미국은 국내용으로 세일즈할 수 있을 만큼 특정 산업에서 실리를 챙겼다는 쪽으로 해석됩니다.

● 미국이 가장 민감해한 車, 상당 부분 양보

자동차 측면에서 미국 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주며 양보했는데요, 우선 픽업트럭 부분입니다. 한국산 픽업트럭(화물자동차)의 미국시장 수입관세 철폐 기간을 당초 예상보다 20년 뒤인 2041년으로 미뤄주기로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사실상 한국에서 만든 픽업트럭은 미국에 수출할 생각 말라는 겁니다. 정부는 한국이 현재 픽업트럭 수출물량이 없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하지만 이건 FTA를 왜 하느냐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발언입니다. FTA는 양국간 관세장벽을 철폐해 서로 강점을 가진 산업을 발전시켜 '윈윈'하기 위한 양자 협정입니다. 우리가 10년전 한미FTA를 체결할 때 자동차 수출에서 우리보다 앞선 일본이나 유럽차를 따라잡아 미국 픽업트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10년 후 관세 완전철폐를 얻어낸 건데, 이걸 이번 개정협상에서 20년 뒤로 미뤄준 겁니다.

미국이 왜 픽업트럭에 민감해 하냐면, 픽업트럭은 '미국의 상징'으로 불릴 정도로 비중이 큰 차종입니다. 포드, GM 등 미국 브랜드 제품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관세 25%를 물고서는 후발주자가 시장에 진입해 경쟁하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미국 시장에서 최근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현대차는 2019년 즈음 신형 픽업트럭 출시를 준비해왔는데, 이번 개정협상으로 그 차량을 미국 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이나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게 됩니다. 정확히 트럼프가 원하는 바입니다. 픽업트럭 팔려면 미국땅에서 생산해 미국 일자리 창출하라는 겁니다. 중형 픽업트럭으로 처음 미국 시장 진출에 나서는 현대차가 성공할지 아직 예단하긴 어렵지만, 이 시장의 성장세가 계속 되는 만큼 버릴 수는 없죠.
한미 FTA., 자동차 관세, 협상

자동차는 전후방 산업 연계성이 높은 산업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량이 늘어나면 부품 산업 등 연쇄적인 고용이 일어납니다. 최근 자동차 산업 부진으로 부품업종 등 전반적으로 수출이 감소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결국 국내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측 공세가 강해 어쩔 수 없이 20년 뒤로 미뤄주는 요구를 들어줬더라도 미국시장 픽업트럭 쿼터를 받아내거나, 단계적 관세율 인하라도 얻어냈어야 했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미국산 자동차 부품 사용 비중을 올리는 것을 막아낸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리고 미국 내 안전 환경 기준을 통과하면 국내 수출이 무사 통과되는 물량도 제조사별로 2만5천대에서 5만대로 높아지는데, 이것도 정부는 현재 미국차 수입물량이 제조사별로 1만대 미만이라 별 영향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야 국내에서 미국 차의 경쟁력이 별로 없지만, 선망의 대상이었던 BMW가 잇따른 화재로 몰락하는 것만 봐도 미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한국 안전기준 충족 못해도 미국 기준만 맞추면 스크리닝 없이 국내에 그냥 들어오는 게 맞느냐라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찜찜한 게 있는데 이건 아직 의혹 제기 수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FTA 환영 성명에서 "농산물이 한국시장 접근성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라면서 "이것은 미국의 농부들이 아주 기뻐할 것"이라고 반색하며 말했는데, 농업부문 '레드라인'을 지켜내 추가 개방은 없다던 우리 정부의 입장과는 상반된 겁니다. 트럼프가 국내용으로 거짓을 말한 건지, 아님 팩트를 착각한 건지, 무슨 이면 합의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 "불활실성 해소" 자평...232조 불확실성은 해소 못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는 한미 FTA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뒀지만 정작 큰 불확실성은 해소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국은 한미 FTA와 별개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 제품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간주하면 언제든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데, 수입철강에 대해 이미 그런 조치를 취했습니다.

때문에 이번 FTA 개정협상에서 무역확장법 232조의 한국 배제 명문화를 관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서명할 수 있도록 서둘러 합의를 도출하면서 추후 과제로 미뤘습니다. 232조 배제는 무관세 혜택을 주고받는 FTA의 기본정신에 맞는 요구인데다, 우리 정부가 밝힌 대로 한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나프타와는 달라 예외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근거가 있는데 개정협상에서 세게 주장하지 않는 건 아쉽다는 지적입니다.

● "232조 배제, 협상 테이블에서 요구하고 관철했어야"

주로 '깰 각오를 하고 이룬 협상'이라는 말은 공격적으로 배수진을 쳐 우리 요구사항을 받아내는 경우를 말하는 것일 텐데요. 한미FTA 폐기까지 거론할 정도라고 보기엔 이번 개정협상은 지켜내는 '수비' 성격의 협상이었습니다. 불확실성을 줄인 것에 이어 우리가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하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제도 개선도 미국이 얼마나 자국의 이익으로 간주하고 저지하려고 했던 건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시험보고 성적표를 받아 온 사람이 '너무 잘했다' '대단하다' '의미 있다' 하면 칭찬해야 할 사람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우리와 경제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미국과, 그것도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미 간 민감한 힘겨루기 시즌에, FTA 개정협상에 임한 정부 관계자들이 고생한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그렇다 해도 평가는 국민들에게 맡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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