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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밤샘 노숙 견디는 팬들…무책임한 기획사

[취재파일] 밤샘 노숙 견디는 팬들…무책임한 기획사
"1년 반 전부터 '밤샘'을 계획하고 한국에 왔어요. 오늘로 이틀째 밤을 새우는 건데, 마치 파자마 파티 같고 정말 즐거워요. 함께 BTS(방탄소년단) 노래를 부르면서 우린 모두 친구가 됐어요." - 에일린 화이트, 미국 뉴욕

지난 주말, 방탄소년단의 콘서트가 있었다.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4만 5천여 석 규모의 콘서트는 '방탄소년단 월드 투어 Love Yourself'의 첫 시작이었다. 콘서트 며칠 전부터 잠실 주경기장 주변으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대형 경기장을 둘러싸고도 좀 남았다. 바로 콘서트 기간 동안 판매하는 기념 물품, 굿즈(Goods)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었다.

앞서 인터뷰 일부를 인용한 미국 소녀 에일린 화이트처럼 모든 팬들이 밤샘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판매 부스가 열리는데, 이미 삼일 전부터 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돗자리와 담요는 기본, 텐트와 간의 의자까지 동원됐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도 쉽지 않아, 화장실을 갈 때는 앞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끼니는 배달음식이나 편의점식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설상가상,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우산을 들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토요일 아침이 오기까지 팬들은 밤샘 노숙을 무릅썼다. 힘에 부쳐 '중도 포기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장 의료진에 따르면 토요일 하루 동안 15명가량이 탈진 증세를 겪었다고 한다. 방송 보도 후 연락을 준 다른 의료진도 그날 수십 명이 경련,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을 이유로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 동안 땡볕 아래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기다린 탓이라고 한다.

모인 사람들에 비해 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현장엔 관리 인력, 일명 '씨큐'가 있었지만 역부족이라 팬들이 어렵게 지켜온 질서가 무너지기도 했다. 팬들이 직접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시 줄을 만들었다. 한 팬은 줄이 무너진 건 여러분들 책임이라는 현장 스태프의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소지품이 없어지기도 했다. 콘서트 티켓과 현금 25만 원이 없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왔다. 창백해진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던 학생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힘들게 기다린다고 해도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느냐, 장담할 수 없다. 구매 수량 제한이 없는 경우가 있어 앞에서 잔뜩 사간다면 금방 동날 수 있다. 인기 멤버의 굿즈는 더 빨리 품절된다. 또 콘서트 시작 전 판매 부스 운영이 중단돼 기다리던 팬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준 뒤 공연 후 다시 오도록 안내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긴 기다림이었다.
[영상] 8시 뉴스 방탄소년단
밤샘이 워낙 힘들다 보니 '대리구매'도 성행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대신 줄을 서 물품을 구매해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밤을 새우며 물품을 구해주는 대신 품목당 또는 시간당 수고비를 받는다. 수고비는 2천 원부터 많게는 5천 원 선이다. 물품 전달은 직접 만나 전해주거나, 택배로 보내는 식이다. 중고등학생들도 상당수 '대리구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 대리구매자는 11명을 대신해 줄을 섰다고 말했다. 그는 내 몫과 다른 팬의 몫을 챙기면서 수고비도 받으니 '일석이조'라고 설명했다.

1박 2일 동행 취재하며 여러 팬들을 만났고, 만난 모두에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건넸다. 답은 비슷했다. 힘들지만 그래도 버틸만하다는 것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내리쬐나 며칠 밤 자리를 지킨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팬들의 고된 기다림과 순수한 마음에 비해 기획사의 성의가 부족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줄을 서게 하며 기다리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기획사로부터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기획사 관계자는 해당 콘서트 기간 동안만 판매하는 한정판 물품들이라, 팬들이 일찍부터 줄을 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획사는 팬들이 언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실 '아이돌 굿즈 문화'라는 게 요즘 세대만의 것도 아니고, 또 '밤샘'이 비단 방탄소년단 팬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인기를 끄는 아이돌 가수라면 콘서트, 팬미팅 등 어디를 가더라도 밤샘을 각오한 팬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기획사가 충분히 예상을 하고 대비를 하는 게 맞다. 현장의 불만이 적지 않다. 글을 마치면서, 콘서트 현장 의료진의 메일 일부를 발췌해 덧붙인다. (원래 방탄소년단 측 기획사에 보내려던 글이라며 토요일 보도 이후 나에게 보내왔다.)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분들의 콘서트장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늘막이 없이 이 땡볕에 상품을 구매하는 분들이 얼마나 더 쓰러져야 현장 판매는 없어질까요?" - 방탄소년단 콘서트 현장 의료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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