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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남북 대화' 한미 간 인식차, 인정할 건 인정하자

[월드리포트] '남북 대화' 한미 간 인식차, 인정할 건 인정하자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추진을 비롯한 최근 남북 대화 흐름을 놓고 우리 정부와 미국이 온도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온도차는 당연한 것입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남북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과, 태평양 너머 본토를 위협하는 핵미사일 제거를 목표로 하는 미국과는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사안별로 감수성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열흘 사이 일련의 사안들(북한산 석탄 불법 반입 수사결과 발표/ 9월 남북 정상회담 발표/ 남북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추진)을 놓고 한미간 이견이 도드라져 보이는 언급들이 나왔습니다. 제 이야기는 인정할 건 쿨하게 인정하고, 의견 차이는 평소처럼 협의를 통해 좁히면 된다는 겁니다.

이견의 핵심은 남북 대화 속도조절론입니다. 미 국무부는 어제(21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추진에 대한 입장을 물은 SBS의 서면 질의에 나워트 대변인 명의로 답변해 왔습니다. 나워트 대변인은 <미국은 남북한이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열기로 계획하는 걸 알고 있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했는데, 남북 관계의 진전이 비핵화 진전과 발맞춰 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We are aware that the ROK and DPRK plan to open a joint liaison office in Kaesong. We reaffirmed the Panmunjom Declaration during the Singapore Summit and we did so because progress on inter-Korean relations must happen in lockstep with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

연락사무소 설치가 4월27일 남북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에 담긴 내용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한의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 진행돼야 한다며 속도 조절을 요구한 겁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소 안보통일센터장은 SBS와 인터뷰에서 "연락사무소 개설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추이를 살피고 대북제재를 이행하면서 추진해 달라는 일종의 속도 조절 요구라고 본다"고 같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국무부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한의 핵 문제 해결과 별도로 진전될 수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As President Moon has stated, "the improvement of rela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cannot advance separately from resolving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이런 답변은 하루 전인 20일 청와대가 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해 "미국도 이해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입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이미 남북 연락사무소는 4·27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고 그 내용이 6·12 센토사 합의에도 포괄적으로 계승돼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남북 연락사무소 문제에 대해서 제재 위반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해 <미국도 이해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 현재 미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국무부 입장이 나온 뒤에도 <우리가 보기에는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국무부에 있는 어찌 보면 대변인실에 있는 행정관급들 정도에서 나가는 답변인데, 거기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의겸 대변인

이렇게 온도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금 시점'에서 남북 대화의 쓸모에 대한 인식차에서 비롯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 대화가 비핵화 협상을 촉진한다고 여기는데, 미국은 현재로선 남북간 대화보다는 북한 압박을 위한 한미간 공조가 우선이라고 보는 겁니다. 좀 더 들어가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6월12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고 적시했는데, 우리 정부는 그러니까 남북 대화를 위한 공동 연락사무소 설치도 미국이 이해한 사안이라고 설명하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판문점 선언 역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것이니, 비핵화 진전 속도 보다 빠르게 남북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인식을 보이는 겁니다.

청와대가 국무부 답변에 대해 실무자급의 관행적 답변이라고 했지만, 미 정부의 공식 창구인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답변했다는 점은 직시해야 합니다. 미 국무부가 내놓는 답변에는 누가 발표자인지 표시가 돼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국무부 관계자로 돼 있지만, 이번에는 나워트 대변인(spokesperson)으로 명기돼 있습니다. 김 대변인 말대로 사안별로 한미 간 협의는 꾸준히 계속돼왔고, 북한 비핵화까지 그 기조를 이어가면 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면 추가 협의를 통해 메워가면 됩니다.
트럼프 김정은 북미 확대회담(사진=트럼프 대통령 소셜미디어 국장 댄 스카비노 주니어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미국이 예전과 달리 남북 대화에 이렇게 속도 조절론을 강조하는 것은 시기적 특성에 기인하는 걸로 보입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임박했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꼭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 목록과 비핵화 시간표를 약속 받아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함께 대북 압박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게 된 배경을 미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 제재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 재무부는 오늘(22일), 이달 들어서만 세번째로 대북 독자 제재를 단행했습니다. 북한 선박에 유엔 제재 대상인 정제유를 옮겨 실은 혐의로 러시아 해운 관련 기업과 선박이 대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것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측면이 강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궁합(chemistry)이 좋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며 "다시 만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폼페이오 방북이 잘 되면, 약속했던 워싱턴 백악관이나 자신의 마라라고 별장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당근입니다. 김 위원장이 최근 대북 제재를 '강도적인 봉쇄'라며 비난한 데 대한 달래기 성격도 있어 보입니다. 미국이 전력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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