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학교 생활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의 모호성이 불가피하게 내포됩니다. 줄을 세워 칼로 자르듯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수능에 비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쉽게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입시를 위해선 무엇이든 한다는 우리나라의 유난한 교육열을 생각하면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 지점을 사교육 시장은 정확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한층 진화한 사교육 시장은 정말로 더 이상 '촌스럽게' 대필, 대작을 권하지는 않더군요. 대신 6개월, 혹은 1년 단위 등록을 받은 뒤 그 기간 강사들과 학부모, 학생이 함께 들어간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학생의 '스토리'를 밀착 관리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내부 제보자를 통해 확인한 실상은 놀라웠습니다. 교내 경시 대회를 강사가 사전 공지문을 보고 미리 준비시켜주는가 하면, 학생의 전공 적합성과 적성을 증명해줄 과학 발명품을 학원 강사가 대신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남이 대신 만들어주는 창작물에 학생의 스토리를 얹기 위해 학원이 '초안'을 만들어서 학생에게 보내면, 학생이 첨언하고, 학원이 다시 다듬어서 학생에게 보내면 학생이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의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그래 놓고 "대필, 대작이 아니니 문제 없는 것 아니냐"는 거지요.
이런 학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 입시컨설팅 학원으로 등록된 학원은 모두 112곳. 인터넷에는 학생부를 관리해주겠다는 학원 광고에, 노골적으로 대필을 해주겠다고 홍보하는 블로그까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 그러면 수능이 더 공정할까?
여기에 참고할만한 논문이 하나 있습니다. 2011~2012년도 대학 입학생 2천 103명을 분석한 한국교육학연구 게재 논문 '대학입학전형 선발 결정요인 분석(2015)'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비율이 높았습니다. 가장 낮은 소득 분위(250만원 이하)에서는 정시 진학 비율이 44.8%였지만 2분위(251만~350만원)에서는 51.2%, 3분위(351만~500만원)에서는 61.9%, 4분위(501만원 이상)에서는 55.3%였습니다. 반면 같은 소득 분위에서 입학사정관 전형(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비율은 13.1%, 11.1%, 7.9%, 6.9% 순으로 반대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부모 학력이 고졸 이하인 집단에서는 48.4%가, 전문대졸 이상 집단에서는 56.8%가 정시 일반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통계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그리고 부모 학력이 높을수록 정시 진학률이 높다는 경향성은 의미심장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 성적이야말로 부모의 소득과 사교육 여부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수능은 각 과목마다 유형화가 돼 있어 사교육을 통해 훈련이 가능하다는 건데, 수능을 코 앞에 두고 기승을 부리는 단기 속성 족집게 고액 강좌가 이를 증명하는 예라고 말합니다.
● '공정한 입시'라는 신화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 말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실체 없는 공정성에 매달리는 동안 학교 교실은 더 나아지기는 커녕 끊임없이 무너져 왔다고 말합니다. 서점에 가보면 교육 선진국을 예찬하고,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책이 넘쳐납니다. '과도한 경쟁', '주입식 수업', '점수로 줄세우기'가 문제라고 하면서, '참여형 수업', '점수보다는 적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회는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의 삶을 숫자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 혹은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 고민해야 할 기로에서, 교육부가 내놓은 이번 대입제도 개선안은 그 무엇도 이야기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