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에는, 아 시대가 정말 변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최재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은 지난 10일 국민청원에 답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2004년에는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보신탕 판매를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올해 한 조사에서는 18.5%만이 개 식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14년 만에 여론이 크게 변했고, 동물을 가축으로만 정의한 기존 제도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청와대 비서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축산법 개정을 검토한다는 얘기입니다.
● 18.5%만 식용에 찬성, 靑 해석이 맞나?
청와대가 인용한 여론조사는 올해 1월 동물보호단체인 ‘동물해방물결’과 여론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한국리서치가 평소 갖고 있는 표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가 실시됐습니다. 취재진은 두 기관에 요청해 여론조사 결과표를 받아봤습니다.
● '어느 쪽도 아님' 35.5%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응답자의 35.5%는 3번, 어느 쪽도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어느 쪽도 아니라고 응답한 사람은 1,000명 가운데 355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42.5%가 “개인의 취향, 선택을 존중해서”라고 답했습니다. 28.5%는 “소, 돼지, 닭 육식과 마찬가지여서”라고 했고, 13.2%는 “예로부터 계속되어 온 문화 전통이라서”라고 응답했습니다. 7.0%는 “관심이 없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어서”, 4.2%는 “개 사육 환경, 도살 방식, 위생 문제만 해결되면 상관없어서”, 3.7%는 “몸 보신용으로 필요한 상황이 있어서”, 다른 3.7%는 “식용으로 키운 개라면 상관없어서”라고 답했습니다.
중요한 건, 어느 쪽도 아니라고 응답한 이유와, 개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가 거의 같다는 겁니다. 개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는 “소, 돼지, 닭 육식과 마찬가지여서, 개인의 취향 문제여서, 건강에 좋은 보양식이어서, 식용 개는 가정에서 기르는 개와 다른 가축이어서, 우리나라의 전통 관습이어서” 등입니다.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와, 어느 쪽도 아니라고 응답한 이유가 이렇게 거의 같기 때문에, 이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세종연구소 우정엽 박사는 여론조사 결과를 검토한 뒤, “어느 쪽도 아니라고 밝힌 35.5%도 개고기 먹는 걸 반대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서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한 것’은 찬성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개 식용을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론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님’이라고 응답할 때는, 떳떳하게 먹어도 된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됐을 거라는 취지입니다. 결국 이 여론조사 결과를 “18.5%만 식용에 찬성한 것”으로 해석하는 건 잘못이라는 겁니다. 우 박사는 찬성과 반대를 반반 정도로 추정했습니다.
● 질문 내용을 보면, 응답자가 "반대 입장의 조사구나" 추측 가능
개 식용에 찬성한다, 이렇게 응답하기가 멋쩍은 이유는 여론조사 자체에도 일부 원인이 있습니다. 저희는 질문지 전체를 제공 받아 여론조사 전문가 4명에게 검토를 의뢰했습니다. 조사 전문가들은 질문의 내용과 순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질문 내용입니다. 이 여론조사는 개 식용에 대한 찬반을 묻기 전에, 응답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그 중에는 “귀하께서는 처음 개고기를 드셨을 때, 알고 드셨나요, 모르고 드셨나요?”라는 질문이 있고, “개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으나 주변인이나 주변 상황에 의해 강제로 드셨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같은 질문이 있습니다. 소고기나 닭고기, 돼지고기에는 묻지 않는 질문들입니다.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강신구 교수는 “개고기 식용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진행하는 조사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문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리서치는 위 질문들은 ‘동물해방물결’의 내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문항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응답자들이 위 질문들에 대해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응답자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려면, 질문 순서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조사를 비교해야 한다는 게 한국리서치의 입장입니다.
● 개 식용에 반대하라고 "응답자를 학습시키고 교육 시키는 것"
질문 내용뿐만 아니라 순서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여론조사는 응답자가 아래 순서로 질문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조사연구학회 연구이사) 지적도 같은 맥락입니다. 조사 과정에서 응답하는 사람한테 “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조사연구학회장을 지낸 충남대 조성겸 교수도 똑같은 점을 지적합니다. 보기를 다 보고 나면, “(개 식용에 대해) 그 순간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이 의견을 구한 전문가 4명 모두 여론조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한국리서치는 이에 대해 “비위생적인 농장 환경, 항생제 투여, 야만스러운/무식한 사람, 같은 표현은 동물해방물결 측에서 전달해준 보기 리스트에 있다”고 설명했고, “개고기를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질문에 충분히 응답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제외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개고기를 자발적으로 중단한 사람과 비경험자가 (원래는) 개 식용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질문 보기에 영향을 받아서 반대한다고 응답한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 청와대는 이런 여론조사, 왜 인용했나?
청와대는 문제가 있는 여론조사를 잘못 해석해 인용한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시대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농림부에 요청해서 받은 자료”라고 답했습니다.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이 어디인지, 질문 내용이나 순서가 특정 답변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미처 따져보지 못했다는 취지입니다. 개 식용 찬반을 묻는 질문에 ‘어느 쪽도 아님’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고, 그렇게 응답한 이유가 찬성 응답자와 거의 같다는 것은 알지 못한 눈치였습니다.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개는 가축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일 수 있습니다.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추진하는 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여론조사는 여론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하고,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정책이 시대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처럼 오래되고, 민감한 사안은 특히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