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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녹조에 숨 막힌 백제보…수문 안 여나, 못 여나?

[취재파일] 녹조에 숨 막힌 백제보…수문 안 여나, 못 여나?
비단처럼 곱고 아름답던 금강<錦江>이 이름값을 빼앗겼다. 지난 2012년 금강 상류부터 세종보와 공주보, 백제보가 차례로 들어서면서부터다. 홍수예방과 수자원확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4대강 사업은 녹조와 썩은 강바닥이라는 환경파괴를 남겼다.

지난해 6월1일 공주보를 시작으로 수문을 열기 시작해 11월13일 세종보와 백제보도 5년 만에 꽁꽁 닫았던 보를 열었다. 공주보와 세종보는 계획대로 수위를 낮춰 올 초부터 완전 개방을 한 상태다. 세종보는 개방 전 수위 11.8미터에서 3미터나 낮췄고, 공주보도 8.75미터 수위에서 4미터 이상 낮춘 4.11미터를 유지하고 있다. 취수장과 양수장 대책을 세운 뒤 보를 전면 개방한 것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이가 흉물스럽게 강바닥을 찢어 놓고 있을 뿐, 이제 보는 있으나 마나 한 상태로 강 수위가 돌아갔다. 한 달가량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세종보와 공주보 근처에서 농사용 물이 부족하다는 말은 아직 없다. 여름철이면 반복됐던 진한 녹조띠도 찾아볼 수 없다. 막혔던 물길이 트이면서 여울이 살아나고, 모래톱도 돌아왔다. 진흙밭이었던 물가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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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와 공주보가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백제보는 사정이 다르다. 수문이 막혀 폭염속에 녹조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녹조 띠는 백제보 상류 9km 지점부터 금강을 좀먹고 있다. 왕진교를 중심으로 아래위로 퍼진 녹조띠는 물 가장자리로 갈수록 색깔이 짙어져 뻑뻑한 페인트를 풀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물 흐름이 느린 곳에서 녹조알갱이인 남조류세포수의 밀도가 높은 것이다. 물길이 막힌 수문 근처로 갈수록 녹조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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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물환경연구소에서는 1주일에 1회씩 물을 떠 남조류 세포수를 측정해 금강의 녹조 상태를 관찰한다. 최근 자료인 지난달 30일 기준 백제보의 남조류세포수는 1ml에 6만2천285셀이나 됐다. 1주 전 23일 측정한 4천6백90셀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앞서 7월16일에 측정할 당시에는 남조류세포수가 나오지 않았다. 장마가 끝난 게 12일이고, 뒤이어 35도 이상가는 폭염이 3주째 맹위를 떨치면서 금강의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더군다나 물이 막힌 백제보의 경우 수온이 3주 전 28.1도에서 31도와 30.5도로 급속히 뜨거워졌다. 녹조의 번성조건인 수온은 25도에서 30도로 알려져 있다. 폭염이 몰고 온 수온상승에다가 강물이 정체돼 물흐름이 느리자 기다렸다는 듯 녹조가 창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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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보는 지난해 11월13일 세종보와 함께 수문을 열었지만 불과 한 달만인 12월 중순 다시 수문을 닫았다. 보를 열기 전 수위 4.2미터에서 2.6미터까지 1.6미터의 수위를 낮춘 시점이다. 보 주변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피해를 보고 있다는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난방비 부담 때문에 기름을 때지 못하고 대신 이중 비닐하우스 사이에 지하수를 뿌려 수막을 형성하게 해 보온효과로 겨울농사를 짓고 있다. 이른바 수막을 난방으로 이용한 농사법이다.

지하수 관정은 대부분 20~30미터 깊이로 얕게 뚫었다. 표층수를 끌어 올리다 보니 수문개방으로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자 직접 영향을 받아 물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지하 100미터 가량까지 뚫어 암반층에서 물을 퍼 올리는 농민들은 수문개방에도 물 부족을 느끼지 않았다.

겨울이 끝나 봄이 가고 여름이 왔지만 백제보의 수문은 열릴 줄 몰랐다. 환경부는 지난 6월 중순 백제보 수문 개방 일정을 밝히며 단계별로 조금씩 수문을 열어 보 개방에 따른 지하수변동을 모니터하겠다고 밝혔다. 농민들도 동의를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지난 7월 2일 개방한 수문은 불과 20cm에 그쳤다. 4.2미터 수위에서 4.0미터까지 찔끔 열었고 지금도 변동이 없다. 마을대표들을 설득해 보 개방에 동의를 얻었다고 했지만 농민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반발에 부닥쳐 더 내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다.

올 초 보 개방에 따른 지하수 변동수위를 관찰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단지에 뚫어놓은 모니터용 관정도 무용지물이다. 수위를 어느 정도 내릴 때 농사용 지하수가 영향을 받는지 알아야 구체적인 보 개방 계획을 마련할 수 있는데 농민들의 반발이 완강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농민들을 탓하기에 앞서 환경부의 준비와 대처가 부족했다. 지난 겨울부터 농민들의 반발이 있었고, 보개방 계획을 세운다고 했지만 7개월가량 대책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계절별 비닐하우스 작물 현황과 물 수요량, 암반층 관정수와 공유방법 등에 대한 전수조사와 분석도 없다. 구체적인 자료와 정보를 얻는 것은 기본이다. 농민들의 물 부족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좀 과장된 것인지를 따져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농업용수 관련 기초 데이터가 없다보니 농민들을 설득할 논리도 궁색해 보를 열면 안 된다는 주장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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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최근 자치단체인 부여군을 통해 보를 개방하더라도 물 걱정이 없는 시설하우스 용수공급사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은 95억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환경부는 기재부 등 경제부처와 논의를 해 농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강물을 농사에 이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농사에 지장을 줘선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강물이 건강해야 농사에 이용할 수 있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도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항구적인 대책 마련과 별도로 여름철마다 녹조에 신음하는 백제보를 살릴 방안에 대해 정부뿐 아니라 농민들도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록적인 폭염에 녹조가 심해지고 있지만 환경부는 언제쯤 백제보를 추가로 열지 답을 못하고 있다. 최근 남조류 측정치만 해도 조류경보제 발령기준으로 보면 경계수준 <1만셀>을 6배나 넘어섰다. 수문에 막혀 질식하기 전에 강물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농민들을 설득할 구체적인 자료를 모으고 믿음을 얻을 방안을 백방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비단강의 절규를 모른 척하면 안 된다. 강이 살아야 곡식이 살고 사람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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