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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럴 거면 다음에 하지 그랬어요

'짜고 친' 서울시 일회용컵 단속 첫날, 웃지 못할 풍경

[취재파일] 이럴 거면 다음에 하지 그랬어요
어제 (8월 2일) 서울 종로에선 커피전문점 일회용컵 사용 단속이 처음 이뤄졌다. 환경부와 각 지자체가 3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일회용컵 단속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환경부는 플라스틱 일회용컵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업주에 대해서는 최대 2백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 '첫 단속'이 조금 이상했다. 서울시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단속 일정을 공지했다. 오후 4시 반에 급하게 모인 언론사 취재진과 종로구청 공무원이 커피전문점 고작 두 군데를 돌고 단속은 끝났다. 왔다갔다 이래저래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심지어 해당 커피전문점에는 단속 사실이 미리 공지됐다. 일회용컵 단속은 불시 점검이 원칙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촬영 카페 미리 섭외했다"···짜고 친 일회용컵 단속 현장 (출처: 중앙일보)

이유는 있다. 8월부터 일회용컵 사용 과태료 부과를 예고했던 환경부는 지난 1일 전국 지자체 담당자들과 회의를 열고 단속 가이드라인을 점검했다. 계도기간에 나온 현장의 불만과 애로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가이드라인이 나온 게 1일 오후 5시 20분쯤이다. 회의에 참가한 광역지자체 담당자들이 돌아가 실제 단속권한이 있는 기초단체(군·구청) 담당자들과 지역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게 그 다음날(2일)이다. 그러니까 실제 단속권한이 있는 구청 공무원들은 어제서야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은 셈이다. 언론의 요청이 쏟아지자 부랴부랴 오후 늦게 서울시에서 종로구청으로 하여금 단속을 하게 했다. 그게 오후 4시 반 정도다.
2일 종로구청 단속반 직원이 취재진 앞에서 매장 단속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다보니 단속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사전에 연락받은 커피전문점에는 일회용컵이 싹 치워져 있었고 점검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졌다. 담당 공무원이 점장과 마주 앉아 "매장에서 음료를 드시는 분에 한해서 지금 일회용품 제공하시는 경우가 있으신가요?" 라고 물었고 점장은 "아니요, 머그잔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담당 공무원에게도 '억지로 떠밀려나온 티'가 팍팍 났다. 단속 도중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위반 사례는 당연히 '0건'이었다. 현장에선 "이게 무슨 의미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게 다 언론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서울시 관계자는 "언론의 요청과 문의가 빗발쳐서 급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회용컵 단속 정책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봐 온 기자의 관점에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이렇게 급하게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당위성과 실효성 논란에 시달려온 일회용컵 단속인데 시작부터 보여주기식이라는 꼬리표를, 그것도 자진해서 달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충분히 준비하고 다음에 제대로 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안의 의미와 영향력을 감안하면 그래도 될 사안이었다. 그런 뚝심과 신중함은 어느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서울시 담당 팀장은 하루 종일 전화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 구청 직원에게는 언론 때문에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서울시가 언제부터 그렇게 줏대 없는 조직이었나. 고생하는 건 언제나 말단 직원들이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일회용컵 사용 억제에 찬성한다.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사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뭐라도 해서 줄이는 게 맞다. 문제는 방식이다. 현장의 불만이 적지 않다. 단속 과정에서 반발도 나올 것이다. 이러다 예전처럼 돌아가겠지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논란과 우려를 의식했다면 과정 하나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시작부터, 그것도 첫날에 보여주기 식 단속은 부적절했다. 대충 그림이나 만들어주려 했다면 법 집행의 무게를 스스로 낮춰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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