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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라돈 침대' 인체 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

국내 연구진, 라돈 등 유해물질 체내 추적 기술 개발

[취재파일] '라돈 침대' 인체 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
지난 5월, <라돈 침대> 사건을 최초 보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 간담회를 취재할 일이 있었습니다. 길게는 10년 가까이 문제의 침대에서 주무신 분들의 걱정이 크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사용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사용자들이 원자력병원 관계자에게 자신의 증상을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순서에는 흡사 '종합병원'에 온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폐암, 폐결핵 같은 폐질환 뿐 아니라 심장병, 뇌경색, 심지어 류마티스 관절염까지 자신의 증상을 토로하고 라돈 침대와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라돈 폐 이상여부 장기추적 필요
원자번호 86번, 라돈(Rn)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질병은 폐나 기관지 등 호흡기 관련 질환이 대부분입니다. 내부피폭의 경우 호흡기를 통해 인체로 들어가 분해되면서 기관지나 폐에 영향을 미치는 라돈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위와 같은 걱정과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 기관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체의 특성상, 어느 한 부위가 아프면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전혀 의외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폐에만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던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간(肝)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라돈 침대 사용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피해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라돈 침대에 의한 정확한 인체 위해성 입증이 중요합니다. (라돈의 유해성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널리 입증됐으니, 여기서는 라돈 침대에 의한 인체 위해성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주1) 사태 초기부터 환경보건 전문가들이 코호트 구축 등 장기 추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명확한 위해성 입증이 중요한 이유가 더 있습니다. 바로 적절한 피해 보상 때문입니다.

(*주1: 유해성은 실험실적 독성자료, 화학적 조성 등에 의하여 결정되는 화학물질 자체에서 기인하는 위험을 말하고 위해성은 특정 노출조건에서 유해성이 명백하게 나타날 확률을 의미합니다. 유해성이 큰 물질이라도 사용환경, 용도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위해성이 유해성을 더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돈침대 인체 위해성 입증 기술 개발
라돈 침대 사태 이후 소비자원을 통해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소비자는 6월 말 기준으로 2996명에 달합니다. 이와는 별도로 소비자 1800명이 별도로 대진침대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상액수는 절차나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법적 절차에 있어 보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인체 위해성을 의학적으로 입증하느냐 여부입니다. 특히 우리 법원은 이와 비슷한 경우 피해 인정에 대해 매우 엄격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명확한 의학적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피해 인정이나 보상 판정을 잘 하지 않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그토록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또 보상도 늦어진 이유는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발병 간의 의학적 연관성을 입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 차례의 비극을 겪은 탓인지 이번에는 조치도 조금 더 빠른 것 같습니다. 장기 추적 연구와는 별도로 국내 연구진이 라돈 인체 위해성 입증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7월 30일자 SBS 아침뉴스에서도 전해 드린 이 소식을 조금 더 상세히 전합니다.

▶ 내 몸속 '라돈' 얼마나 쌓였나…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

● 에어로졸 형태로 라돈 흡입…"체내 농도 및 이동 경로 파악"

연구진을 만나기 위해 전북 정읍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를 찾았습니다. 연구진은 앞서 지난 5월, 방사성동위원소 표지를 통한 인체 유해물질의 체내 추적 및 독성 연구에 관한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환경공학분야 국제 학술지 <Chemosphere>에 연구 결과를 게재했습니다. 국내 일간지인 <경향신문>도 지난 6월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말이 어렵지만 이들이 개발한 기술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라돈이나 가습기 살균제 물질 같은 유해물질을 에어로졸, 즉 작은 고체나 액체 입자 형태로 흰 쥐에 흡입시킨 뒤 이를 특수 영상장비 등으로 추적해 그 분포와 농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겁니다. 설명만으로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데, 이를 장비와 기술을 활용해 실험으로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기술과 장비를 갖춘 연구소는 전 세계적으로도 네 군데뿐입니다. 그동안은 유해물질을 구강으로 섭취·흡입시킨 뒤 해부하고 화학적으로 이동 경로와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확도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취재파일] '라돈 침대' 인체 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쥐
[취재파일] '라돈 침대' 인체 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쥐
실제 실험 절차를 지켜봤습니다. 우선 흰 쥐를 정육면체 형태의 체임버에 넣고 체임버 상단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유해물질을 에어로졸 형태로 분무합니다. 흰 쥐가 마시겠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흰 쥐를 꺼내고 마취시킵니다. 그리고 다른 실험실에 위치한 SPECT 영상장비에 집어넣습니다. SPECT는 우리가 건강 검진 때 흔히 보는 CT와 비슷하지만 방사성 동위원소를 비롯해 보다 더 다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비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이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연결된 모니터에 흰 쥐 몸 속 어디에 얼마나 유해물질이 쌓였는지 실시간으로 나타납니다. 신기한 건, 농도가 짙을수록 색깔이 강하고 밝게 표시되고 묽을수록 희미하게 표시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확인한 가습기살균제 물질 PHMG를 흡입한 흰 쥐 영상의 경우 폐 부분에 형광색에 가까운 밝은 보라색이 분포되어 있었고 간과 여타 다른 부분에는 그보다 조금 약하게 표지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물질이 폐뿐 아니라 간으로 전이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습니다.
[취재파일] '라돈 침대' 인체 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폐
이 기술이 특별한 건 바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유해물질에 방사성동위원소로 표지를 했다는 겁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유해물질이 영상장비(SPECT)에 나타날 수 있게 형광색 색소를 입혔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색소 역할을 하는 게 '방사성동위원소'입니다. 사실 이 실험을 처음 적용한 건 가습기살균제 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의 이동 경로 확인이었습니다. PHMG 자체로는 영상 장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감마선을 내뿜어 색소 역할을 하는 방사성동위원소 인듐-111을 PHMG 용액과 혼합해 쥐가 흡입하도록 한 겁니다. 인듐-111은 미량 흡입할 경우 인체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아 비슷한 용도의 의료 연구에 폭넓게 활용됩니다.

같은 원리로 PHMG 대신 라돈을 흰 쥐에게 흡입시키면 라돈의 체내 농도 및 이동경로 추적도 가능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다만, 라돈의 특성상 몇 가지 차이는 있습니다. 우선 라돈의 경우 PHMG의 경우처럼 '색소를 입힐 필요'가 없습니다. 색소 역할을 하는 인듐-111과 같이 라돈 자체가 방사성동위원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돈의 경우 인듐처럼 영상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라돈의 경우 베타·감마선이 아닌 알파선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확인 과정에선 라돈 역시 해부를 통해 체내 이동경로와 농도를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앞에도 서술했듯 구강 섭취 및 투여 과정을 거쳐 화학적으로 측정했던 기존의 실험 방식에 비하면 에어로졸 형태로 흡입시킨 뒤 곧바로 확인하는 신기술이 정확도와 신속성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이 더 우수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 "라돈 위해성 평가 종합시스템 만들겠다" 포부

라돈 위해성 입증에 대한 연구진의 생각은 명확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불필요한 공포나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취재진의 생각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라돈 침대 사태 이후 라돈을 비롯한 생활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거나 과도한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의 임상용 생명공학연구부장은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라돈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과학적인 팩트를 기반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면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임 부장은 또 "라돈이 어느 부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습니다. 과학적인 수치로 라돈의 인체 위해성이 제공되면 마치 라돈이 만병의 근원처럼 여겨지는 현상도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내다봤습니다.

연구진은 나아가 위해성 입증 기술을 바탕으로 한 라돈 위해성 평가 종합 시스템 구축을 장기적인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정확한 위해성 입증 기술이 개발되면 앞으로 개발될 라돈 저감 필터나 공기청정기 등 라돈 저감 시스템의 성능평가를 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개발되면 막연한 불안을 이용한 과도한 광고나 마케팅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연구 사업 신청 한 차례 반려…"빠르면 내년 말쯤 개발"

사실 연구진이 목표로 하고 있는 라돈 위해성 입증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추가적인 연구와 이를 위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연구진이 효율적인 기술을 찾은 건 맞지만 시스템이라고 부를 만한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장비와 시설, 또 일정량의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제목을 '라돈 위해성 입증 길 열렸다'고 지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지난 6월, 한 국가 과학연구 기금사업 공모에 신청서를 냈지만 한 차례 반려 당했습니다. 이유는 "이미 라돈의 유해성은 국제적으로도 다 입증된 것인데 더 연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취재진이 해당 관계자를 직접 취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이유는 더 들을 수 없었지만, 기자의 관점에서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이는 연구진의 몫이기 때문에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연구진은 재도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또 다른 연구기금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사업 신청서를 냈습니다. 해당 사업이 연구 과제로 선정될 경우 빠르면 내년 말쯤 일정 수준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습니다.

라텍스 제품 80% 라돈 의심 수거 대책 필요
● 길은 열렸다…조속한 위해성 입증 필요

이번 사태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일 대진침대 사용자들에게는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그래도 위해성 입증을 위한 길이 열렸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피해 보상을 위해서든, 제대로 된 책임 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해서든 명확한 위해성 입증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얼마간의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이는 최선의 길일 겁니다.

사족으로 기자가 전라북도 정읍까지 가서 만난 연구진에게 느낀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연구진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가진 것은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연구진의 생각은 기자가 그동안 만났던 일부 전문가들의 태도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것이었습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습니다만, 라돈 침대 사태 이후 일부 전문가는 라돈의 위험성에 비해 국민이 과도하게 불안해하고 언론이 이를 잘못 전달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는 이를 '전문가의 오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국민은 그렇게 우매하지 않습니다. 예외의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 '팩트의 무게'만큼 반응하는 게 시민과 언론의 속성입니다. 라돈의 위험성을 과장해선 안 되지만 축소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게 취재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핵심입니다. 책임을 돌릴 시간에 정확한 정보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면 사태는 지금보다 나았으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쨌든 길은 열렸습니다. 연구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많은 라돈침대 사용자들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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