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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0년 노동 변호사' 김선수 대법관 후보에게 듣다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8.07.03 17: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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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수석을 했지만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를 꿈꿨다.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30여 년 노동을 변호했다. 세 차례 고배 끝에 대법관 후보가 됐다. 대법관 후보 임명제청 당일(2일), 김선수 대법관 후보를 만났다. 김선수 변호사가 일하는 곳은 전망 좋은 높은 빌딩에 있는 번듯한 대형로펌과 달랐다. 한 두 평 남짓 사무실 안에 책과 서류가 빼곡했다. 저서 <노동을 변호하다>도 보였다. 기자와 카메라 장비가 들어가니 사무실이 가득 찼다.
취재파일 김선수 대법관 후보 인터뷰-판사, 검사 출신이 아닌 변호사 출신 첫 대법관입니다. 민주화운동을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을 지내기도 하셨고요.
=변호사로서만 활동한 제가 대법관으로 제청된 건 그동안 법원이 조금 폐쇄돼 있던 부분을 조금 더 사회에 열린 자세로 대응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제가 해야 될 역할들이 더욱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변호사님이 대법관 후보가 된 것에서 오는 상징성이 큽니다. 이번에 대법관 제청된 이유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번에 대법원장께서 저를 제청해 주신 건 대법원 구성이 다양화되어야 된 거 아니냐는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변호사로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해서 활동했던 부분들을 감안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지금 법원이 여러모로 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중책에 부름을 받아서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대법원에서 토론이 활성화되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관점이 발굴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저를 이렇게 불러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선수 변호사가 대법관 후보가 되자 자유한국당에서는 반대하고 나왔다. 김 변호사가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 심판에서 변호인단에 참여한 것을 문제 삼았다. 자유한국당은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어긴 헌법 침해 세력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낮은 대법관 후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논평을 냈다.

=아직 인사청문회와 국회 동의절차가 있는데, 저에 대해서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문회 준비 잘해서 그러한 우려도 충분히 해소해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법관이 되면 어떤 역할을 하겠다 마음 먹으신 게 있다면.
=기본적으로 이 사법제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사법서비스의 공급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국민이 서비스의 수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한 것은 사법서비스란 관점에서 수요자인 국민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하는 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겠죠. 법원이 판결함에 있어서 사법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관점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법원의 노동 관련 판결이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는 기업 친화적인 판결들이 쏟아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동안 노동 판결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관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건 맞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논의가 활성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단독으로 결정되지는 않고, 여러 대법관들이 토의를 통해 결정이 이뤄지긴 합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관점, 노동자의 인권과 권익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동료 대법관들이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주화 시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건들을 맡아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시다면.
=1990년에 화가 홍성담 씨가 간첩 혐의로 기소가 됐었습니다. 그때 변호사 접견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자백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해서, '변호사 접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 검사작성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이런 판단을 받아냈습니다. 결국 간첩 부분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요. 변호사의 접견권을 헌법상 권리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노동사건에 있어서는 서울대학교병원에 1천명 정도 되는 근로자들이 3년치 미지급수당을 받지 못했는데요. 요즘에는 '통상임금 수당 소송'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1990년과 1988년에 소송을 제기해서 3년여 동안 재판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받고, 3년 치 수당을 계산하고 이런 것들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 서울민사지방법원 노동전담부가 1989년 9월부터 만들어졌습니다. 법원에 노동전담부를 만드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최근 대법원 판결을 '재판 거래'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대법원이 전화위복으로 삼아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그런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1986년,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김선수는 <고시계>에 합격 수기를 남겼다.

"사법부의 임무가 법의 평등한 적용이라고 할 때 '법' 자체는 이미 항상 공평타당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법' 자체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될 수 없는 그러한 영역인가?
......
개인적인 정의감정을 말하는 '양심'을 거대한 관료조직 속에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관료조직의 요구와 개인적 양심 사이에 충돌이 생길 경우에 어떻게 하면 개인적 양심을 굴절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거대한 관료조직 앞에서 개개인은 미력한 존재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개인으로서 머물러 있는 한 우리의 양심은 알게 모르게 관료조직의 요구 속에 용해돼 버리는 것은 아닐까?
......
한국사회에 있어서 법조인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이며, 또 법조인의 현실은 어떠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이념상의 요청인 사법부의 독립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유지돼 왔는가? 또한 최근에 발생한 재판거부 사건, 법관 인사파동, 대법원장탄핵안 제출사건 등은 어떻게 이해하여야만 할까?"


민주화가 되기 전 '사법부의 독립' 훼손을 우려하던 20대 청년 김선수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30여 년을 돌고 돌아서 다시 '사법부 독립'이 의심받는 지금, 대법관 후보 김선수는 이제 답을 해야 할 위치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