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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44 :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8.07.01 07:46 수정 2018.07.01 17: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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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들 마음속에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구인이던 우리와 달리 먼 우주에서 온 듯 보이는 그들은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워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 적응에 실패해 나 홀로 행성 안에 갇혀버리거나 우주로 떠나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게 되기를, 그렇게 되도록 지구인들이 조금만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봐 주기를."

누구에겐 친근하고 재치 있는 표현, 부드럽고 위트 있는 농담 같은 말이 누구에겐 비수가 돼 꽂힙니다. 하루에도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받을까요. 연초에 읽은 책의 제목처럼, 말이 칼이 되기 십상입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상에서도 흔하게 누굴 놀리듯 말하는 그런 말, 아마 한 번도 동네 바보 형이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요. 저도 이번에서야 생각해봤습니다.

첫머리에 읽은 글은 책의 프롤로그 한 대목입니다. 지구인은 저 같은 필남필부들이고, 어린 왕자는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류 작가의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 같은 이들입니다. 조금만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지켜봐 달라는 게 작가의 소박한 주문입니다.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몸이 힘들다. 남들은 출산 후 몇 년만 고생하면 졸업하는 갓난아이 뒷바라지를 10년 동안 하고 있으니 체력이 달린다.... 하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오히려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아들은 모자란 행동으로, 솔직한 감정으로, 주변 사람에게 '빵' 하고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다. 행복을 선물한다."

"말썽꾸러기 사내아이 엄마들은 나처럼 고개 숙인 죄인으로 살지 않았다. 나만 그렇게 살았다. 나 스스로가 내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너무 매몰돼 필요 이상으로 남을 의식하며 고개를 숙인 채 살았다.... 나는 같은 반 엄마들을 만나면 "죄송합니다"가 아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 아들 때문에 피해가 많지요?"가 아닌 "오늘 급식 시간에 짜장면을 먹었나 봐요"라는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강력히 요청한다. 인지 문제가 있는 발달장애인을 바보 취급하며 웃기는 존재로 묘사하는 걸 중단해달라고. 마음껏 비웃어도 되는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흰색 콧물을 그려 넣고 어눌한 발음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것도 보기 싫다고. 당신들이 '동네 바보 형'이라며 놀리는 건 분장을 한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아들이라고."


얼마 전에 동네에서 한 부부와 딸, 세 가족이 걸어가는 걸 봤습니다. 1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딸이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활짝 웃으면서 말을 건네는 걸 별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저를 힐끔 보더니 얼굴을 약간 찌푸리는 것이었습니다. 반발짝 옆에는 딸의 어머니, 그 아버지의 아내인 듯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 얼굴도 어두웠습니다. 그 가족 중에 혼자 발랄하고 신나고 즐거운 건 딸이었는데 장애가 약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 시선을 불쾌하게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그럴까요. 그 장애가 있는 아이의 웃음만은 참으로 해맑고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했습니다. 그냥 보는 듯 마는 듯 그렇게만이라도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요?

*출판사 푸른숲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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