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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구 '수돗물 파동', 직접 가 보니

- '수돗물 파동' 불거진 대구 당일치기 현장 르포

[취재파일] 대구 '수돗물 파동', 직접 가 보니
지난주 내내 전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지만 대구 경북 지역에선 또 다른 이슈가 화제였습니다. 바로 '대구 수돗물 파동'입니다. 지난 6월 21일, 대구방송(TBC)이 낙동강 상수원에서 발암물질이 일부 포함된 환경호르몬,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집중 보도하면서 불거졌습니다. 대형 마트에서 카트 가득 생수를 사재기하는 모습이 전국에 방영되고 급기야 환경부 차관이 직접 대구로 가 수돗물을 직접 마시며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아직 파장이 다 가라앉진 않은 분위기입니다. 기자도 지역 분위기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지난 26일 기차를 타고 대구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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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적이는 약수터…하나같이 "불안해요"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대구 근교의 한 약수터를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위치한 이 약수터는 대구 시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지역의 명소입니다. 오래 전부터 소문난 약수를 나름 정수 시설까지 갖추고 무료로 제공해 대구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인데, '수돗물 파동' 이후로는 사실상 '특수'를 맞았습니다. 주말도 아닌 평일 한낮, 그것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 이곳을 찾았는데도 주차장은 들고나는 차들로 분주했고 사람들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생수병을 들고 많게는 수십 병씩 물을 담아 박스에 실어 나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 약수터만 봐왔던 기자의 눈에는 상당히 진기한 장면이었습니다.

약수터를 찾은 시민 여러 명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승용차 트렁크 가득 물병을 채우는 한 남성에게 "이렇게 많이 담아갈 필요가 있냐"고 물으니 "대구 바닥에 생수가 불티나게 팔린다 아입니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느 분은 "적어도 물이 깨끗해진다는 1~2주 동안 먹을 물은 있어야 한다"며 분주히 물을 날랐습니다. 지금은 마트에 생수가 들어오지만 "주말에 물을 구하지 못해 고생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약수터 앞에서 군것질거리 등을 파는 상인들은 평소보다 최소 3~4배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바로 며칠 전 주말에는 넘치는 인파와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도 했습니다.

나이와 성별, 각자 사는 동네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들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불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부터 약수터를 자주 찾았다는 분들도, 이번 일로 처음 약수터를 찾았다는 분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 수돗물을 끓여먹었다는 한 중년 남성은 "씻을 때는 수돗물로 씻더라도 먹는 물은 영 불안해서 안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달서구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도 "뉴스를 보고 놀랐다"며 "겁이 나서 계속 물을 담으러온다"고 불안감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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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동쪽은 '평온', 서쪽은 '난리'…불안감도 서고동저(西高東低)

약수터 취재를 마친 뒤 가장 가까운 수성구로 가 동네 마트를 찾았습니다. 생수가 바닥나거나 사재기가 한창인 모습까진 아니더라도 "물 때문에 난리"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곳저곳을 돌아봐도 "여기는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수돗물이 공급되는 취수장이 달라 해당 지역은 괜찮다는 말이었습니다. 취재진에게 각별히 친절했던 수성구 파동의 한 마트 여사장님은 "여기는 동네 주민들끼리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한다"면서 "이쪽은 괜찮다더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 시누이가 서구에 사는데, 그쪽은 난리란다. 거기로 가봐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실제로 과불화화합물이 일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된 정수장은 낙동강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매곡·문산 정수장입니다. 여기서 물을 공급받는 곳은 대구 중구와 서구, 남구, 달서구 전역과 북구 및 수성구, 달성군 일부 지역입니다. 취재진이 먼저 찾은 수성구 파동은 가창댐을 상수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관계가 없다는 얘깁니다. 이런 정보가 지역 언론이나 대구시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공개됐고, 주민들도 이에 따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대구 전체가 수돗물 때문에 난리가 났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 수정: 수성구의 경우 수성1~4가, 황금1동(일부), 황금2동, 범어1~4동, 만촌1동(일부), 만촌2·3동, 중동, 고산2동(일부:시지,노변), 만촌동 일부 지역은 낙동강 물을 공급받고 있고 나머지 지역은 운문댐과 가창댐을 상수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다시 차를 달려 마트 사장님이 알려준 서구로 갔습니다. 서구의 한 주택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촉'이 왔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양손에 생수병을 사들고 골목을 오가는 시민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비산동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최치호 씨는 "주말에는 없어서 못 팔았다"며 "손님 절반이 빈 손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마트 한켠에는 새로 들어온 생수가 쌓여 있었지만, 여전히 냉장고 곳곳은 비어있었습니다. 최 씨는 "지금도 공급이 원활하지는 않다. (생수가 부족해서) 차가 못 들어온다더라"고 전했습니다. 생수 판매량도 제품별로 편차가 커서, 제주산 유명 생수는 여전히 구하기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내친김에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를 따라 가정집도 찾아갔습니다. 비산동에 사시는 김하자 할머니의 집은 마당 없이 바깥문을 열면 1, 2층 복도로 이어지는 구조의 다세대주택이었는데 바깥문을 열자마자 계단에 생수병이 잔뜩 놓여 있었습니다. 집 안에 놓을 자리가 부족해서 문 바깥에까지 생수를 쌓아놓은 겁니다. 김 할머니는 쌀을 씻을 때도 마지막은 꼭 생수나 다른 데서 떠온 약수로 헹군 뒤 밥을 안친다고 했습니다. TV 뉴스 대신 동네 미장원에 갔다가 "언니, 그 소식 들었나?" 하고 관련 소식을 알게 됐다고 하니, 온 동네에 수돗물이 '핫 이슈'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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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의연한 시민…적극적으로 정보 찾고 대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곳곳을 직접 돌아보며 인상 깊었던 점은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카트 가득 생수를 사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됐고 "불안하다"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잔뜩 써놓고서 이렇게 말하면 조금 모순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대구 시민이 마냥 불안해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파동 이후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와 대책을 알린 정부나 다른 매체의 조치 탓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직접 접할 수 있게 된 것과도 관계가 커 보였습니다. 앞서 수성구를 비롯한 대구 동부 지역 주민들이 "우리는 상수원이 달라 괜찮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 그 예입니다. 대구시와 대구상수도사업본부는 홈페이지에 상수원에 따른 수돗물 공급 범위를 상세히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 파동 이후 일(日) 단위로 상수원 과불화화합물 수치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동 단위로 표기된 수돗물 오염물질 농도를 찾아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언론 매체에선 마치 대구 전역에서 생수 대란이 일어난 것처럼 비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지역 매체가 과장보도를 했다기보다 사태 초기 곳곳에서 사재기 현상이나 생수 품귀 현상이 빠르게 보도되면서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생수를 구매하거나 각자 적절한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페놀 수돗물 사태 등 과거 수돗물 파동을 여러 번 겪은 대구 시민들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물론 혼란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닙니다. 보도 이후 정부는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된 구미공단의 배출원을 차단하고 원인물질 사용을 금지했다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과불화화합물이 배출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배출원을 차단하더라도 상수원에서 각 가정으로 흘러드는 물이 모두 교체되거나 흘러나가기까지 어느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앞서 취재진이 만난 김 할머니도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또 마셔도 된다카던데,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5일 안병옥 환경부 차관이 매곡정수장을 찾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수돗물을 마시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지만 대구 시민의 불안감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어 보였습니다.
대구 수돗물 '환경호르몬' 다량 검출
● '정치적 음모론'까지…투명하고 적극적인 소통해야

사태 이후 파장이 워낙 컸던 탓인지 대구에서는 지역 언론과 정관계를 중심으로 해당 보도에 대한 뒷말이 무성했다는 말도 들려왔습니다. 환경부가 이미 지난 5월 과불화화합물을 '수돗물 감시 항목'으로 지정해 관리를 강화하고 있고, 또 유해성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데 위험을 과장하고 시민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과불화화합물에 대해서는 호주와 스웨덴, 캐나다가 의무기준치가 아닌, 권고치를 두고 있습니다. 대구 수돗물의 과불화화합물 농도는 호주보다는 높지만, 스웨덴, 캐나다보다는 낮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심지어 취수원 이전과 관계된 '정치적 음모'라는 말까지 들려왔습니다.

환경부가 지난 2012년부터 전국 상수원을 대상으로 과불화화합물 농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온 것은 맞습니다. 2012년부터 4년동안은 거의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낮게 검출됐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갑자기 이 수치가 높아졌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 상하수도연구과의 박주현 연구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갑자기 높아진 게 이상해서 살펴보니 구미공단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지난해부터 구미공단 일부 업체에서 과불화화합물을 어떤 다른 원료의 대체물질로 사용했고 그로 인해 배출량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환경부가 지난달(5월) 과불화화합물을 감시 항목으로 신규 지정한 것도 이 같은 배경 탓입니다. 환경부는 당시 낙동강을 비롯한 전국 모든 지역 상수원의 과불화화합물 등 감시항목 관련 수치를 공개하고, 높게 검출된 곳에 대해서는 저감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낙동강 지역 수치가 지난해부터 갑자기 높아진 이유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은 당시 따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현재 낙동강의 과불화화합물 수치가 스웨덴과 캐나다 등 외국 권고치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지난 2012년부터 4년 동안의 평균값보다 훨씬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더구나, 어떤 화학물질 때문에 과불화화합물이 배출되는지는 아직 확인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대구 시민의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대구 수돗물 파동을 단순히 지역 문제로만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추후 다른 곳에서도 재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환경호르몬 과불화화합물은 자연 상태에서 배출될 수 없는 인공 물질입니다. 물이나 먼지가 묻지 않게 하는 성질이 있어 프라이팬을 코팅하거나 등산복 같은 방수 기능이 들어간 아웃도어 의류에도 널리 쓰이고 나아가 반도체 공정에도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영욱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용이 일찌감치 금지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과불화화합물에 대해선 세계보건기구(WHO)도 권고치가 아닌 기준치를 마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일로 말미암아 경각심을 갖고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접 둘러본 대구 수돗물 파동에 대한 시민의 불안감은 생생하고, 또 충분히 '근거가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직접 만난 대구 시민 대부분은 불안해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알려진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나 시 당국이 해야 할 일은 보다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무엇보다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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