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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병역법 위헌심사 처음 제청했던 박시환에게 듣다

"하급심의 거센 파도가 대법원을 압박 할 것"

[취재파일] 병역법 위헌심사 처음 제청했던 박시환에게 듣다
▲ 박시환 전 대법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병역법 제5조 1항에 대해서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에 군사훈련이 없는 대체복무제가 없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입영 통지를 받고도 입대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김이수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은 일부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인 6명을 확보하지는 못 했다.

다만, 강일원 재판관과 서기석 재판관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은 대체복무제가 없는 현실과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해석 때문이라는 보충 의견을 냈다. 처벌 규정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 뿐만 아니라 단순 병역 기피자들도 처벌하기 위한 포괄적 규정인 만큼 해당 조항은 합헌이지만,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 처벌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나아가 대체복무제가 마련되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체복무를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 되기 때문에 처벌할 일이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병역법 처벌 조항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4명의 재판관과 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의 한정 위헌성 의견을 포함하면 재판관 6명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법원이 처벌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헌재의 선고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사실상 인정됐고,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기 전까지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졌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기까지의 공백기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할지 말지를 대법원이 확정짓게 된다.

● 박시환 전 대법관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환영"

헌재의 선고,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대법원의 판단. 지금 이 상황을 누구보다 남다른 감정으로 지켜봤던 사람이 있다. 헌법재판소에 처음으로 병역법 처벌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사를 제청했던 박시환 전 대법관이다. '독수리 5남매의 일원','사법파동의 주역' 등의 수식어가 붙는 바로 그 박시환 전 대법관이다. 박 전 대법관에게 헌재 선고를 지켜본 소회와 향후 진행될 대법원의 판단에 대한 기대 등을 들어봤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리고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상당한 정도 진전된, 환영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형사처벌 법규(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서도 전부 위헌이나 일부 위헌 결정이 나왔을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좀 아쉽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박시환 전 대법관은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형사단독판사 때인 2002년 1월 29일, 법관 중 처음으로 병역법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 근거가 된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해 달라는 것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하는 게 당연시 되던 시절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사실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를 했거나 문제의식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살펴보던 수준이었는데, 관련사건 기록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벌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사례 중에 여호와의 증인 가족 중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병역을 거부해 형을 살고 왔고, 큰 아들은 얼마 전에 형을 마쳤고, 둘째 아들은 교도소에 있고, 고등학생인 셋째 아들은 형을 살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어머니의 심정을 적은 글이 있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파렴치범도 아닌데 문명국가에서 처벌을 하는 것만이 최선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고민과 검토를 해 봐야하지는 않겠냐는 생각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법관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7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리며 빛이 바랬다.

"아쉬움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생각이나 신조, 철학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의 고민과 생각을 하찮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도 당사자들의 고민과 신념을 존경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여부 선고(사진=연합뉴스)
임기 말 전원합의체 회부 시도…속 쓰린 유죄 선고

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울림은 컸다. 헌재 결정이 내려지기 거의 직전인 2004년 5월 21일, 이정렬 당시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등 2004년에만 3건의 무죄 선고가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5년에는 관행처럼 유죄선고가 이어졌고, 2005년 11월 당시 변호사이던 박시환은 대법관으로 취임했다. 대법관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판례 변경을 시도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애를 많이 썼습니다. 제가 위헌 제청을 하고 3년쯤 있다가 대법관이 됐지 않습니까. 제가 스스로 위헌 제청했던 사건을 아무렇지 않게 유죄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사건들을 전원합의체에 올려 판결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여러모로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 전원합의체 판결이 2004년에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분위기를 좀 살펴봐야 했고, 또 당시 대법관 구성을 보면 보수적인 분들이 많이 있어서 가능성이 안 보이기도 했습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여론의 변화와 대법관 구성을 살피면서 기회를 엿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퇴임하던 마지막 해에 미뤄뒀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들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전원합의체로 한번 가져가 봤습니다. 그런데 반대가 너무 많아서 그냥 철회하고 종전 판례대로 유죄 판결을 한꺼번에 다 처리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원합의체에 올려서 소수 의견으로라도 강하게 쓸까 했는데, 그렇게 하면 제가 뜻을 외부에 알리는 기회는 갖게 되는 것이겠지만, 다시 한 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유죄라고 못을 박는 결과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 의사에 반하는 판결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속이 쓰렸습니다. 밖에서는 이런 사정을 모르니까 병역법 조항에 처음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했던 사람이 한꺼번에 왜 유죄 선고를 하냐고 항의성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 헌법재판소
● "하급심의 거센 파도 대법원 압박할 것"

2004년 3건, 2007년 1건이었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무죄 선고는 최근 급증했다. 지난해만 44건, 올해 상반기만 22건의 무죄 선고가 있었다. 박 전 대법관은 최근 하급심의 잇따르는 무죄 선고가 대법원의 판례를 변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사법부는 상급심의 확립된 판례에 반하는 판단을 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풍토가 있는데, 판례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 한 건도 아닌 최근 수십 건씩 나오는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입니다. 젊은 법관들이 대법원의 판례를 수긍하지 못 하겠다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공공연히 집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데, 이런 일이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는 없었습니다. 하급심의 거대한 파도가 대법원을 압박하고 있는 겁니다. 대법관님들도 상당히 부담될 겁니다. 하급심 판사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따를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런 목소리를 무시하고 다른 결정을 내렸을 때 법관들이 반발하지는 않을지, 대법관님들은 고민스러울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거센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조만간 대법원의 결정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헌재의 선고 이후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소수의 사람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부터, 유죄 선고까지 받으면서 해당 종교를 믿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헌재의 선고 이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헌재 결정에 대해 반발 또는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구는 군대 가서 고생을 했는데, 누구는 종교 등의 이유로 군대를 안 가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수밖에 없잖아요. 때론 상대의 생각을 도저히 용납 못할 수도 있고,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는 겁니다. 특정 생각을 그대로 둘 때 사회에 큰 혼란이 생기거나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방안을 같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벌이나 제재는 그것이 안 될 때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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