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 시점과 형식은 적절했나?

대법관들의 오만한 입장 발표에 부쳐

[취재파일]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 시점과 형식은 적절했나?
정가와 관가, 법조계 등에는 '금요일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중요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피하고 싶은 이슈를 금요일에 발표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과거와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 소수의 기자들만 출근하고 국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주말 동안 해당 이슈에 대한 논의가 냉각돼 '여론화'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발표자의 의도 때문입니다.

사건 관련자를 전원 무혐의 처리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이 있었을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 발표,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특별조사단의 발표 모두 금요일에 있었습니다. 반드시 그날 발표해야 할 시급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대법원장의 발표 시점, 형식은 적절했나?

'금요일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회자되는 것은 메시지는 메시지 내용뿐 아니라, 메시지를 발표하는 시점 나아가 형식까지 메시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임을 방증합니다.

지난 금요일(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문을 법원 내부 게시판과 기자들에게 공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법원을 넘어 사회적 혼란까지 발생한 사안에 대해 대법원장은 금요일에 문서라는 형식을 통해서 최종 입장을 내놓은 겁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 시절에 발생한 일입니다. 기자회견 형식을 취해 입장을 내놓았을 때, 마치 현재의 상황이 김 대법원장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오인될 것을 걱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걱정에 여론이 주말을 통해서 냉각되기를 바라고 금요일에 입장을 내놨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직 대법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입니다. 대법원장이라는 왕관을 쓰고 있는 것은 김 대법원장입니다. 전임 원장이 '사상 초유', '믿기 힘든' 불행한 유산을 남겨줬지만, 그것을 감내하고 해쳐나가야 하는 것은 현 대법원장입니다. 대법원장이라는 왕관은 영광스러운 순간만이 아니라, 억울하고 불행한 순간도 해쳐나가라고 씌워주는 겁니다. 일부 인사들이 영광스러워만 보이는 왕관을 피하는 것은 이런 왕관이 주는 무게 때문일 겁니다.

이런 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발표 시점과 형식은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느끼셨을 충격과 분노'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해서는 국민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어야 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했던 시기의 사법부 수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김 대법원장은 현직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국민들께 고개를 숙였어야 했습니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방안을 국민들께 직접 설명하고, 양해와 협조를 당부했어야 했습니다. 비판을 피하기 위해 '금요일'에 발표한 것 아니냐는 외관상의 의심을 피했어야 합니다.

● '일동'이라는 방패 속에 숨은 오만함

이런 시점과 형식의 부적절함이 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문 내용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입장문에서 "'재판 거래' 의혹은 상상할 수 없다는 개인적 믿음"을 굳이 언급해 해당 입장문이 국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이 아닌 법원 내부에게 하는 메시지처럼 읽히게 한 부분이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수사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회의 결과 등에 비춰볼 때 진일보한 측면이 있습니다. 수사 대상 기관의 수장이 '형사 조치'를 고민해 왔다는 자가당착적 부적절함은 있지만, 수사 협조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전국법원장 회의 결과 등에 비춰볼 때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합니다.

지난 금요일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 이후 나온 '대법관 일동' 명의의 입장문이었습니다.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 전원은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와 관련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고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데 대하여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당황스러운 점은 2가지입니다. 대법관 일동에 포함된 대법관 중에서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판 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는 점, 그리고 현재 의혹의 발단은 대법원 스스로가 제공했다면서 마치 국민들이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본 부분입니다. 의혹 대상이 된 판결에 관여하지도 않았으면서, 문제가 된 재판의 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건 무슨 근거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행정처 심의관이 검토한 내용이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 있는 양 문제를 제기'했다는 표현에서는 오만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에 당당하다면, 의혹의 중심에 선 대법관들은 개인 명의로 당당히 입장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시기에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낸 고영한 대법관이나 차장을 지낸 권순일 대법관은 왜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당당하게 나서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대법관 일동'이라는 집단의 방패 뒤에 숨어서 '의혹은 근거 없다'느니 '사법행정과 재판'은 분리되어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됐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나온 대법관들의 입장문을 보면, 법원 내 '국민의 눈높이'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미뤄 짐작하게 합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상을 판결을 통해 최종적으로 담아내야 할 대법원이 갈라파고스화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