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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차라리 대진침대 피해자가 부러워요"…어느 '라돈 라텍스' 사용자의 울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라돈 라텍스'

[취재파일] "차라리 대진침대 피해자가 부러워요"…어느 '라돈 라텍스' 사용자의 울분
“저희는 차라리 대진침대 피해자들이 부러워요. 거기는 리콜이라도 해주잖아요.”

SBS의 ‘라돈침대’ 보도 이후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매트리스 수거가 아직도 다 안돼 대진침대 사용자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체국 물류망을 이용해 수거 속도를 높이라고 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라돈 라텍스’ 사용자들입니다.

라텍스 제품에서 라돈이 나온다는 사실은 한 제보자의 우연한 라돈 수치 측정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제보자 A씨는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나오는 원인이 이른바 ‘음이온 파우더’로 알려진 모나자이트 가루라는 SBS 보도를 보고 안방에 놓인 ‘음이온 라텍스’에 눈길이 갔습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라돈 측정기를 라텍스 제품 위에 올려봤던 A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집안에서 항상 낮은 수치를 기록하던 측정기가 라텍스 제품 위에서는 요란한 경보음을 울려댔기 때문입니다.
라돈 라텍스
문제가 된 제품은 지난 2012년,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A씨가 여행 가이드 손에 이끌려 간 라텍스 매장에서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100% 태국 천연 라텍스에 음이온 성분까지 들어 있어 특히 아이들에게 좋다는 판매사원의 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마침 아이 계획이 있었기에 2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음이온 라텍스 매트리스 세트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6년 가까이 두 아이와 함께 그 위에서 생활했습니다.

취재진이 A씨의 집을 찾아 매트리스 위에 라돈 측정기를 올려놓자 63pCi/L(2,331Bq/m³)가 나왔습니다. 매트리스를 치우자 나온 수치는 0.3pCi/L(18.5Bq/m³).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나온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국내 다중이용시설 실내 라돈 기준치는 148Bq/㎥, 주택 실내 기준은 200Bq/㎥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실내 공기 중 라돈에 대한 기준치입니다. 제품에서 나오는 라돈에 대한 기준치는 현재 없습니다. 그럼 대체 매트리스에서 어느 정도의 라돈이 나와야 되는 걸까요?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아이들이 코를 대고 잠을 청하는 매트리스에선 라돈이 전혀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라텍스 매트리스에서 나오는 라돈이 얼마나 인체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위해 A씨의 제품을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보내 정밀검사를 의뢰했습니다. 연간 피폭선량은 7mSv. 안전 기준치인 1mSv의 7배에 달하는 피폭선량이 나왔습니다. 제보 받은 또 다른 브랜드의 라텍스 제품도 정밀검사 결과 6.1mSv/y가 나와 역시 안전 기준치를 한참 초과했습니다.
 
라텍스 제품에서 나오는 라돈의 원인은 대진침대와 마찬가지로 모나자이트 가루였습니다. 라텍스 배합 과정(믹싱)에서 이른바 ‘음이온 파우더’라고 알려진 모나자이트 가루를 넣는 방식으로 ‘음이온 라텍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모나자이트가 음이온 방출 효과를 내는 원료 중 가장 단가가 싸고 효과가 좋아 많이 쓰인다는 현지 관계자의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라돈 라텍스
이처럼 음이온 라텍스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나오고, 안전기준치를 훌쩍 넘는 방사선 피폭선량이 나온다는 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라돈 라텍스’ 사용자들의 카페가 개설됐고 회원수는 현재 1만 4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수많은 라텍스 사용자들이 직접 라돈 측정기를 구해 수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방금까지 가족들과 함께 잠을 청했던 라텍스 매트리스와 베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사태에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언제든 교환, 반품해주겠다는 보증서는 유명무실해진지 오랩니다. 상담전화 너머 직원은 “방송에 나온 결과는 ‘간이 측정기’에 의해 이뤄졌으므로 신뢰할 수 없고, ‘공인기관’에 제품을 맡겨 정확한 결과를 받으면 그 때 대응하겠다.”라는 대답만 반복합니다. 하지만 SBS가 정밀측정을 의뢰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바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의 공인기관입니다.

정부는 ‘라돈 라텍스’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SBS 보도 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직접 사들고 온 ‘직구’형태이기 때문에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생방법)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관계 부처와 조치할 수 있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라돈 라텍스’가 세상에 알려진 지 20일이 넘도록 정부 부처 그 어느 곳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달 21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라돈침대 문제를 언급하며 앞으로 범정부적인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라돈침대 관련 정부의 미숙한 대처에 국민적 비판이 쏟아진 뒤였습니다. 직접적인 소관 부처가 애매한 ‘라돈 라텍스’야 말로 범정부적 대처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이, 라텍스 위에서 아이를 재웠던 사용자들은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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