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내 어머니와 그의 남자를 고소합니다"…10년 만에 털어놓은 악몽

[취재파일] "내 어머니와 그의 남자를 고소합니다"…10년 만에 털어놓은 악몽
▶ "내 어머니와 그의 남자를 고소합니다"…성폭력 방조한 母

얼마 전 SBS로 고등학생 때부터 몇 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제보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내연남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는데 어머니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A씨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하는 내내 기사를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너무 자극적이기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성폭력 상담가 등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습니다. A씨의 사례는 친족 성폭력에 해당한다며, 친족 성폭력 특성상 폭로가 어려워 피해자들이 오랜 기간 고통받는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어렵게 폭로해도,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피해사실을 덮고 넘어가거나,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취재 도중 A씨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친족 성폭력’이라는 큰 틀 안에서 A씨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 "처음 시작은 성추행이었어요."

27살 A씨는 약 10여 년 전 엄마를 따라간 찜질방에서 처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찜질방을 가자기에 따라나섰는데 그 자리에 엄마의 내연남 B씨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A씨는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B씨가 “성관계해본 적 있냐”고 물으며 찜질복 상의를 들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A씨의 신체를 쓰다듬고 만졌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B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녁식사자리라는 엄마의 말을 믿고 따라나선 게 화근이었습니다. ‘저녁식사’로 알고 간 곳은 식당이 아닌 모텔이었습니다. A씨는 처음 성폭행당한 모텔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A씨는 모텔에서 B씨가 갑자기 옷을 벗으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B씨가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성폭행을 당할 때 들은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적으로 트여야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A씨는 B씨가 A씨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찾아온 적도 있다고 떠올렸습니다. B씨가 학교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다가 A씨가 하교하자 A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오피스텔로 데려갔고 또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B씨를 보고 놀란 마음에 친구들에게 ‘큰아빠’라고 얼버무렸다며 B씨의 차가 세워진 위치까지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몇 번인지 모두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8년 간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막아달라고 부탁했어요."

A씨는 어머니에게 B씨의 성폭행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A씨의 호소는 외면당했다고 합니다. A씨는 처음 찜질방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어머니는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저씨가 나를 만졌다”고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어머니는 그랬냐고 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A씨는 B씨가 집에 찾아오면 어머니는 보리차를 내주고 마당으로 나갔다고 떠올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A씨는 B씨에게 이끌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점점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엄마가 내버려두는데 이게 나쁜 게 아닌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싫은데 이게 맞는 건가. 설마 엄마가 나한테 나쁜 짓을 시키겠어하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로했어요.”
 
● "그래도 엄마라서 미워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았어."

A씨는 취재진에게 엄마와 나눈 대화라며 녹취파일을 보내왔습니다. 녹취파일은 주로 피해자의 어머니가 피해자에게 고소를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엄마를 한 번 용서해주면 안 되겠냐는 말에 A씨는 “엄마는 나한테 그 얘기를 10년 전에 했어야 해. 그래도 엄마라서 미워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어”라고 토해내듯 말했습니다. “그래, 애썼다.” A씨의 울음 섞인 호소에 어머니가 내놓은 짧은 대답입니다.
 
● '왜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했을까.' 피해자에게 늘 돌아가는 질문.

성폭력 사건에서 항상 피해자가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느냐, 왜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 그러나 아동 성폭력 전문가인 김태경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어머니가 경제적인 도움이든 어떤 이유에서 행위자의 성폭력을 조력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아이 입장에서 거절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16살이라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는 미성년자이고, 특히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추가 피해에 더욱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 '친족성폭력' 폭로 어렵고 피해기간 길어

A씨를 상담한 김태옥 천주교 성폭력상담소 상담가는 A씨의 경우 ‘친족성폭력’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B씨는 어머니의 내연남으로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며 A씨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쌓고 가깝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김태옥 상담가는 ‘친족성폭력’처럼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어린 피해자들은 본인만 입 다물고 있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또 김태경 우석대 교수는 친족성폭력은 가정 내 비밀처럼 여겨져 암묵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A씨처럼 용기를 내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면 이는 피해자에게 ‘바깥에 알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 것과 동일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친족성폭력의 무서운 점은 폭로하기 어려운 구조뿐 아니라 폭로 후에도 피해자 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경우도 A씨가 고소를 마음먹자 A씨의 어머니는 A씨를 말리기 급급했습니다. ‘고소하면 세상을 떠나겠다.’ ‘지금까지 준 돈을 B씨가 돌려달라고 하면 길바닥에 나앉자는 거냐.’는 등 문자를 보내며 A씨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A씨는 올해 초 어머니까지 공범으로 추가 고소했습니다.
 
● 죽도록 항거했느냐가 기준이 되는 현실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성관계에서 중요한 건 ‘동의’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대다수 성폭력 사건 가해자는 저항하지 않았으니 동의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만성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된 경우 깊은 우울과 무력감을 느껴 저항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당해 오면 나중에는 거부할 힘조차 없어져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혼자 싫다고 한들 누가 들어주겠어요.”
 
● 8년간 지속된 피해…가장 고통스러운 건

인터뷰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A씨는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혼자였던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엄마는 외면하고 의지할 곳이 없었어요. 늘 혼자였던 것 같아요.”
 
● B씨, 합의 하에 한 관계

취재진은 B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B씨를 찾았습니다. 답변을 거부하던 B씨는 거듭된 취재진의 연락에 A씨를 성폭행 한 적이 없다며 A씨의 주장을 부인했습니다. 또 B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성년이 된 후 합의 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했습니다. A씨의 어머니 또한 A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경찰은 A씨의 진술과 녹취 파일 등을 근거로 B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