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브룩스 사령관의 배려…위기 넘긴 한·미 동맹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05.27 10: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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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브룩스 미 육군 대장. 한미 연합사령부의 사령관이자 최초의 흑인 주한미군 사령관입니다. 그제(25일)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평택대 남북한통일문제연구소와 한국 안보협업연구소 주최의 세미나 인사말을 통해 "북미 회담은 단지 지연될 뿐, 기회를 잃는 것은 아니므로 나는 우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 시점에서 말만 놓고 보면 미국 당국자라기보다는 청와대나 통일부 관료 같았습니다.

그는 이어 한미 동맹을 두고 "심한 추위나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남산 위 소나무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남산 위의 소나무'는 또렷한 한글로 발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산 위의 소나무는 애국가 2절 첫 구절에 나옵니다. 브룩스 사령관은 일찍이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 2016년 4월 30일 한국에 부임했습니다. 현재는 애국가 1~4절 가사의 의미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전언입니다.

자주 만나는 한국 장교들은 한국 이름과 한국 직위로 꼬박꼬박 부릅니다. 연합사 관계자는 "한국에 대한 배려가 참 깊은 장군"이라며 "미군 참모들에게도 한국인을 만나면 반드시 한국어로 자기 소개와 인사를 하라고 시킨다"고 귀띔했습니다. 파견국에서 임무 수월하게 하려고 맘 먹고 낯선 외국말 좀 외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브룩스 사령관이 한미 동맹을 지탱하기 위해 보여준 헌신은 한국에 대한 배려가 진심이었다는 걸 방증합니다.

● 위기의 한미 동맹과 브룩스 사령관

나라 형편이 피면서부터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은 애증의 대상처럼 여겨졌습니다. 일부 좌파 세력은 주한미군을 제국주의 점령군로 치부했고, 종종 주한미군 장병들은 불미한 사고를 내서 스스로 위신을 깎아내렸습니다. 요즘 같은 시절, 듣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주한미군은 안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 문정인 외교안보특보 말마따나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겠지만 현재 정전체제에서의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은 소금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 한미 동맹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그런 일 없다고 주장하고 한발 더 나아가 송영무 국방장관은 "한미 동맹에 1mm의 틈도 없다"고 단언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한미 중 어느 쪽의 탓이라고 책임 돌리기는 어렵지만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한미 동맹은 위태위태했습니다.

미국은 Maximum Pressure 즉 최대의 압박 전략으로 북한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봉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대북 유화정책으로 북한과 화해를 모색했습니다. 양립할 수 없는 최대의 압박과 유화책 사이에서 완충역을 자임했던 인물이 브룩스 사령관이었습니다.

한반도 작전을 마친 미 해군 핵 잠수함이 한국의 항구에 기항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적대 관계가 아니고서는 용납할 수 없는 대우였습니다. 빡빡하게 짜여진, 방대한 미군 전력의 한미 연합훈련 계획과 전략 자산 전개 계획을 수시로 바꾸거나 축소해야 했습니다.

북한을 물리적으로 짓눌러 백기투항을 받아낼 요량이던 미국의 심기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미국이 대북 압박 강도를 조절한 데는 브룩스 사령관의 역할이 컸다"며 "브룩스 사령관이 한국을 깊이 이해하지 않았다면 남북 대화 국면은 기대도 못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른 군 관계자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연기 논의가 이어지자 브룩스 사령관도 많이 실망했다"며 "그럼에도 수용하고 한미 마찰을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폐막식 국민의례 중 거수경례하는 브룩스 사령관●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한미 동맹은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 조항이 없습니다. 한미 양국이 대응 방안을 협의하고, 각각 헌법에 따라 절차를 이행하도록 돼 있을 뿐입니다. 조약이라기보다는 느슨한 협약(entente)에 가깝습니다.

한미 동맹에서 주한미군의 위치는 이 지점에서 부각됩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한반도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으로 인해 자동개입 효과가 발생합니다. 현재는 주한미군 대부분이 한강 이남으로 옮겼지만, 그럼에도 외부 세력의 공격에 미군의 즉시 대처가 가능합니다.

물론 미군에 의지하지 않고 자주국방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주국방이라고 해서 국군 홀로 나라 지키는 건 아닙니다. 미군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 벌일 때 단독 작전 안 합니다. 반드시 연합군을 구성해서 합니다. 명분을 위해서 또 실리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불편해도 주한미군이 앞으로 한동안 필요한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은 공짜가 아닙니다. 동맹은 일방적인 퍼주기 관계가 아닙니다. 미국이 아무 대가 없이 안보를 제공해주면 고맙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동맹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한미 동맹처럼 국력이 차이가 현저한 국가들 사이의 동맹에는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이라는 국제 정치의 법칙이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강대국이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는 정책의 자율성에 제한이 생기는 식입니다.

진보의 시대에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의의를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극우 태극기 세력처럼 미국을 추앙하는 광기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극좌들처럼 '주한미군 철수' '미국 반대'를 외칠 일도 절대 아닙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반도 안보의 핵심입니다.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지형에 맞게 진화해야 합니다.

브룩스 사령관은 자칫 큰 흠집이 날 뻔했던 한미 동맹을 슬기롭게 지켰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9월 브룩스 사령관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했습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재직 중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은 사례는 브룩스 사령관이 처음이었습니다.

브룩스 사령관이 올 하반기 한국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주한미군 사령관직을 그만두면 전역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역 후에도 한미 동맹의 가교로 활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브룩스 전통'이 후임 사령관에게도 이식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