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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MB 재판 ③ -'MB는 정말 재판을 포기했나?'

[취재파일] MB 재판 ③ -'MB는 정말 재판을 포기했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금씩 잊히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전직 대통령 구속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5월 3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됐지만, 검찰 조사를 거치며 웬만한 것들이 다 나와 별로 새로울 게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 논리가 팽팽하게 맞붙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진실에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20여 년 이상 제기된 이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의 진실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 재판 실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한산했다. 아니 휑했다. 지난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3회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311호 법정은 100여 석의 좌석 중 1/3도 차지 않았다. 일반인 방청객은 10명 남짓, 그나마 나머지 자리들을 기자들이 채운 결과였다. 하루 전 이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오는 1회 정식 재판 방청권 경쟁률도 미달됐는데(0.66대 1), 이 전 대통령이 나오지도 않는 공판준비기일에 방청석이 한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3회 공판 준비기일 변호인석엔 새 얼굴이 등장했다. 앞선 2번의 공판준비기일에 강훈·김병철 변호사와 함께 했던 피영현 변호사 대신, 조해인 변호사가 변호인석에 앉았다. 새 얼굴이 등장했지만, 역시 피고인 측 입장을 주로 대변한 것은 강훈 변호사였다.

● 증거 조사 방식을 둘러싼 약간의 갈등

2차례 공판준비기일을 거치며, 주요한 재판 방식 등은 이미 결정됐다. 이 전 대통령 측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재판에 사용하는데 동의하면서, 이 전 대통령 재판에서 '증인'이 출석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려워졌다. 대신 증인에 대한 검찰의 주신문, 변호인의 반대신문, 검찰의 재주신문 등의 지난한 과정이 생략되는 만큼 재판 진행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공판준비기일엔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조사할지가 핵심이었다. 사건의 실체가 궁금한 국민들의 입장에선 '뭣이 중헌디' 싶겠지만, 사법부로부터 '유죄'를 받아내 수사 결과를 증명해야 할 검찰과 '무죄'를 받아내야 하는 피고인 측에겐 증거 조사 방식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재판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범주화되는 재판 방식과 순서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측의 입장을 사전에 예상한 듯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의 증거 조사 관련 법 조항을 법정 화면에 띠웠다.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 조사를 하면서 검찰의 의견도 덧붙여 마치 해당 증거가 유죄의 증거라는 예단을 재판부가 갖게 할 수도 있다는 피고인 측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검찰에 주의를 당부했다. 또, 재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변호인 측에는 증거에 대해 변호인 측이 수시로 의견을 내 줄 것을 주문했다.

● MB 1심 선고 빠르면 8월 말쯤 나온다

재판부는 초반에는 주 2회, 이후에는 주 3회씩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17일 공판준비기일에서 정한 일정대로라면 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 결과는 이르면 8월 말이나 9월 초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1심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줄이 확정되면서 관심은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전 대통령 측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재판에 사용하는데 왜 모두 동의했느냐로 다시 모아졌다. 형사 재판에서, 그것도 무죄를 주장하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검찰 증거에 모두 동의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범죄 혐의를 구성하는 사람의 진술을 탄핵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증거 못지않게 주변인들의 진술이 범죄 혐의를 구성하는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피고인 측은 더더욱 그런 진술을 한 증인을 법정으로 불러 해당 진술을 적극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증인 신청을 포기했다. 이 전 대통령이 "불리한 진술을 내놓고 있는 과거 참모들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증인 신문이 아닌 증거와 법리로 다퉈달라"고 변호인들에게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의 주문에 변호인단도 난감해 하는 기색이다. 검찰 증거에 모두 동의하자는 이 전 대통령의 이야기에 변호인단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었다고 한다. 결국 피고인의 주문에 따라 증거와 법리로 다투기로 입장을 정한 변호인단이지만, 마땅한 반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재판부를 통해 청와대 출입 기록이나 금융 자료 등을 확보해야 하지만, 해당 증거가 남아있을 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의 한 변호인은 "재판부가 증거 서류 확보에 많이 협조해 줘야겠지만, 증거가 제대로 있을 지, 제대로 된 증거가 올 지 예단할 수 없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 'MB는 정말 재판을 포기했나?'

이런 상황이 되자 '이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재판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유무죄에 대한 다툼보다는 형량을 낮추는데 힘을 쏟으면서 사면을 바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신속한 재판을 요구하는 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입장은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이런 관측에 대해, 설사 이 전 대통령 측이 그렇게 입장을 정했다고 하다라도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건 이번 정부에서 사면은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다만, 특별법까지 제정해 단죄했던 전두환씨를 정권 말기에 특별사면했던 김영삼 정부처럼, 정치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 전 대통령 측의 전략이 나름의 재판 전략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놓은 참모들을 법정으로 불러내 다투는 것 보다는 검찰이 제출한 진술 조서 등에 기초해 다투는 것이 그나마 이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궁여지책을 선택한 셈이다.

진술조사와 피의자 신문 조서에 활자화 된 내용을 참모들이 법정에서 그대로 진술하면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할까. 활자화 된 내용을 보는 것 보다 더 신뢰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과거 참모와 주변인들이 혐의를 적극 부인하는 자신을 접하고, 검찰 조사 때보다 더 불리한 내용을 진술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이다. 오랜 핵심 참모였던 김백준 전 기획관이 자신의 검찰 소환 조사 날 법정에서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남은 수사와 재판 일정에 참여하겠다"고 자신을 저격한 기억도 생생할 것이다. 김 전 기획관은 검찰 조사를 받는 동안, 사건 내용을 파악하려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접촉을 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0분 남짓 예정된 모두 진술…MB는 무슨 말을 할까?

이 전 대통령 측의 검찰 증거 전체 동의는 빨리 재판을 받고 사면을 받기 위함이냐, 아니면 상대적으로 덜 불리한 방식을 택한 재판 전략이냐. 이 전 대통령의 본심은 23일 열리는 첫 재판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23일 재판에 당연히 출석할 것이고, 재판 당일 읽을 모두 진술문을 직접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량은 10분 정도가 될 것"이라며 적지 않은 내용이 담길 것임을 예고했다.

다만, 아직 입장문의 방향과 내용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참모들의 조언을 받는 과정에서 용어와 톤, 방향 등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강훈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검찰을 공격하는 용어를 쓸지 여부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공격하며, 공소 사실의 대부분이 과거 측근들의 허위 진술이라거나 측근들의 책임이라고 이 전 대통령이 말한다면 '검찰 증거 모두 동의'라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은 '재판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며, 정치적 입장을 내놓는다면 선처와 사면을 바라는 입장일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강훈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의 모두 진술은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가 담기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혐의 인정 형태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입장문의 내용과 방향은 전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마음에 달렸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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