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문정인 특보의 입…B-52 찍고 한미동맹으로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05.20 10:05 수정 2018.05.21 14: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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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B-52와 한미 동맹을 입에 올렸다가 거센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공식석상에서 “B-52가 한반도로 오려던 계획을 바꿨다”고 발언했고,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는 “장기적으로는 한미 동맹이 필요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B-52 발언은 그 자체로 부적절했고, 한미 동맹 발언은 뜻은 통할지 몰라도 때를 잘못 골랐습니다.

한두번이 아닙니다.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부단하게 하다가 청와대의 경고를 받은 게 언제라고 또 설화(舌禍)입니다. 북한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도의 화법을 썼다면 모르겠지만, 딱히 그런 고차원적 의미가 읽혀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미 공조를 어지럽히고 북한의 오판을 부르지 않을까 우려될 뿐입니다.

● 한미 군 당국 숨기던 'B-52 훈련 계획' 누설
B-52 전략폭격기지난 16일 대한민국 안보계의 두 ‘설화 제조기’가 만났습니다. 문정인 특보와 송영무 국방장관. 둘은 오찬을 했습니다. 앞서 북한이 B-52와 한미연합 맥스선더 훈련을 들먹이며 남북 고위급 회담 계획을 일방적으로 무기 연기했고, 송 장관은 급히 빈센트 브룩스 연합사령관을 만나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오찬 자리에서 송 장관은 문 특보에게 “B-52가 한국방공식별구역 카디즈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듣고 그냥 혼자 담아두면 될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정인 특보는 송 장관과의 오찬 직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주최 강연에서 ‘B-52 회군’을 누설했습니다. “송 장관이 브룩스 사령관을 만나 내일(17일) 미군 전략폭격기 B-52를 한반도에 전개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정확한 팩트를 일목요연하게 풀어냈습니다.

국방부는 그날 저녁 “맥스선더 훈련은 전투조종사 기량 향상을 위한 훈련이기 때문에 B-52는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밝혀 문 특보 발언 진화에 나섰습니다. 국방부 해명은 맥스선더 훈련과 B-52가 관련 없다는 뜻이지, B-52 훈련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B-52는 문 특보 발언 다음 날 한반도 쪽으로 날아왔습니다. 문 특보의 예언(?)대로 카디즈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고 카디즈 밖에서 일본 전투기와 훈련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실 몇몇 기자들도 B-52의 훈련 계획을 일찍이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북, 북·미로 이어지는 대화 정국 유지 차원에서 기사를 안 썼습니다. 한미 군 당국도 B-52의 카디즈 비행 계획을 취소하면서 공개하지 않기로 서로 협조를 구했습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발끈하니까 B-52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연출되면 북한에 끌려다니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정인 특보의 가벼운 입이 못된 선례 하나 만들었습니다.

● '한미 동맹' 발언…맥락 뺀 보도에도 할 말 없는 文

‘B-52 설화’ 다음 날인 17일 보도된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문정인 특보는 “단기적, 중기적으로 한미 동맹은 필수불가결하다”라고 전제한 뒤 “장기적으로는 한미 동맹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장기적이란 남북미 평화체제가 굳어지고 난 뒤 동북아의 다자간 지역 안보체제를 구축할 때입니다. 즉 남북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과 함께 서로를 침략하지 않기로 조약 맺고 무기체계도 그에 맞춰 다들 감축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현재의 유럽을 생각하면 됩니다.

역사에 존재한 적 없던, 동북아의 완전한 평화 시대가 오면 한미 동맹은 존재의 이유가 없어집니다. 한미 동맹의 공통의 적인 북한, 중국과 평화 조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미 동맹은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즉 장기적으로 동북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한미 동맹은 없어져야 한다는 문 특보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교과서같은 주장입니다. 다만 언제쯤 그런 시절을 맞을지, 역사적·감정적으로 얽혀있는 동북아에서 그런 때가 도대체 도래는 할 지 예측조차 어렵습니다.

국제정치 학자로서는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의 외교안보 특보로서 남북미 대화 정국이 펼쳐진 살얼음판 위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 보수 언론들이 국제정치학적 맥락은 성기게 설명하고 “한미 동맹은 없어져야 한다”에 방점을 찍은들 문 특보는 유구무언입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보수언론의 비판은 누구보다 문정인 특보가 가장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문 특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데 문 특보는 아랑곳 않고 입을 열어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오롯이 문 특보 책임입니다. 문정인 특보가 공식석상에서 설 때마다 여러 사람 피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