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끝까지판다] "북한군 투입설 배후는 전두환이었다" 5.18 미 국무부 전문 탐사보도 (풀영상)

▶ [끝까지판다①][단독] "전두환, 최종진압 작전 결정"…美 비밀 문건

<앵커>

SBS 탐사 보도팀은 지난 1년 동안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또 여러분께 전해드렸습니다. 5·18 38주년이 되는 이번 주에는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에서 SBS 탐사 보도팀이 확인한 새로운 사실들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14일)은 먼저 최종 진압 작전은 누구의 지시였는지 또 광주의 북한군 투입설을 처음 퍼뜨린 사람은 과연 누군지에 대한 내용인데 비밀 전문이 지목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한 명이었습니다. 전두환 씨였습니다.

장훈경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전두환 씨는 80년 5월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전두환/SBS 인터뷰 (2003년 2월) : 군은 지휘 계통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지. (중앙)정보부 부장이 아무리 세도 작전 지시하면 절대 안 움직입니다. 군대라는 건 지휘 계통에 의해 딱 움직이는 거요.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요.]

지난해 낸 회고록에서도 80년 5월 27일 최종 진압 작전은 이틀 전인 25일, 작전이 결정되고 난 뒤에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SBS가 확인한 5.18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은 최종 진압 작전의 책임자로 전두환 씨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미국 시각 5월 25일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대사관 등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이 군사 작전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보고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마지막 협상 시도가 실패하면 진압 작전이 시작될 예정인데, 이 경우 합참의장이 미국에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5·18 기간 중에도 한국 문서에는 거의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등장을 안 하죠. 왜냐면 그동안 제5공화국을 지나면서 대부분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 문서에는 그대로 지금 남아 있는 거죠. 그런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다음 날인 한국 시각 26일 오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가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뒤 국무장관에게 긴급 전문을 보내 27일 0시쯤 진압 작전이 시작된다고 보고합니다.

이 보고 이후 미국 시각 5월 26일 오전 7시 머스키 국무장관이 전파한 '한국 상황 보고서'입니다.

전두환 장군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광주 진입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합참의장이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27일 0시부터 계엄군 투입을 한다고 알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 전두환 씨가 주장하는 부분들은 자신이 했던 역사적 책임, 사법적 심판을 피하기 위한 거짓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봅니다).]

신군부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오던 미국의 정보망은 전두환 씨의 결심으로 최종 진압 작전이 결정되고 수행된 과정을 구체적이고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김준희)    

------------------------------------------------

▶ [끝까지판다②] "'5·18 북한군 투입설' 전두환이 첫 언급"

<앵커>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주에 북한군이 투입돼 폭동을 선동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거짓 주장은 지금도 일부 극우 인사들이 계속 퍼뜨리고 있는데, 저희가 미국 국무부의 비밀 문건을 분석해봤더니 북한군 투입설을 공식석상에서 처음 거론한 인물도 전두환 씨 였습니다.

박세용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 있다" "북한 특수전 요원이 개입한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전두환 회고록 1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법원이 지난해 허위 사실로 인정해 회고록에서 삭제하라고 결정한 부분입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전 씨 회고록에 모두 18번 등장합니다. 대부분 지만원 씨 같은 극우 인사 주장을 인용한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SBS가 확인한 미 국무부 비밀 문건에는 이 주장을 전 씨가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5.18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전 씨가 1980년 6월 4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는데 광주에 관한 질문을 받자 "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의 침투 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답한 걸로 보고됐습니다.

전 씨는 또 "5.18의 책임은 김대중에게 있으며 그를 기소해서 이걸 입증하겠다"고 강조한 걸로 적혀 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마치 북한군들이 실제로 들어온 것처럼 그때 당시에도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죠. 그때 전두환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 자체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인데.]

북한군 투입설은 80년대 중반 신군부가 5.18의 진상을 왜곡하기 위해서 안기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유포한 걸로 드러났는데 그 시작은 전두환 씨였던 겁니다.

그러나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로 확인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미 국무부 비밀 문건에도 "5.18은 공산주의가 배후에 있지도 않았고 북한군 투입 사실도 없다. 이건 확실한 사실"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전두환 씨 발언에 관한 국무부 문건 내용에 대해 전 씨 측은 "대통령이 되기 전 일이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정성훈)

------------------------------------------------

▶ [끝까지판다③] '전두환이 최종진압 작전 지시', 왜 중요한가?

<앵커>

5·18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해서 보도해 드리고 있는 장훈경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Q. 5·18 당시 美 국무부 비밀문서는 어떤 자료? 

[SBS 장훈경 기자 : 1980년 5·18 전후로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고받은 비밀 전문인데, 비밀 해제가 돼 열람할 수 있게 된 자료입니다. 최근 광주지검이 5·18 당시 헬기 사격의 객관적 증거로 "실제 발포가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 문건을 제시했는데, 같은 국무부 자료에 포함됐던 겁니다. 국내의 5·18 관련 기록들은 그동안 사라지거나 왜곡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런 조작이 불가능한 미국 국무부 문서는 진상 규명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Q. 전두환 최종 진압 작전 지시, 왜 중요한가?

[SBS 장훈경 기자 :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 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하면서 최종 진압 작전을 결정에 대한 내란목적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죠. 이때 근거가 전 씨가 작전 이틀 전 계엄사령관,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회의에 참여한 신군부 인사들이 최종 진압 작전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지게 된 겁니다. 분명히 결정 주도자가 있을 텐데 그건 못 밝혔고 사법적 책임도 정당히 지우지 못한 거죠. 전 씨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에는 자신이 참여했던 회의는 최종 진압 작전이 결정이 된 이후여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까지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 진압 작전을 전두환 씨가 결심하고 그에 따라 작전이 수행됐다는 미 국무부 문건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