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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의원 해외 출장 파헤치기 ② - 누구를 위하여 해외 출장을 떠나나? (끝까지 판다)

[취재파일] 국회의원 해외 출장 파헤치기 ② - 누구를 위하여 해외 출장을 떠나나? (끝까지 판다)
지난달 17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국회의원 시절 간 해외 출장과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돈으로 간 해외 출장은 정치자금 수수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밝힌 게 사퇴의 배경이 됐습니다. 실제로 당시 많은 국회의원들이 김 전 원장 출장을 비판했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정의롭고 공정한 금융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다고 하던 김 원장이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갔다 왔다."라며, "직접 사퇴 결심을 하지 않으면 '뇌물성 갑질 외유 출장 진상조사단'을 구성할 것"이라고 따졌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뇌물성 갑질 외유 출장'을 다녀온 적이 없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SBS 탐사보도팀은 피감기관이 비용을 댄 국회의원 외국 출장 내용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해 분석해봤습니다. 결과는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일정 절반이 '문화탐방'

지난 19대 국회 때인 2013년 3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4명(정우택·이헌재·권은희(19대 당시 새누리당 소속)·박완주)이 피감기관인 한국전력 돈(3천1백만 원)으로, 4박 6일간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을 다녀왔습니다. 출장 목적은 한전이 건설 중인 원전과 발전소 시찰이었습니다.

저희 SBS 탐사보도팀이 확보한 당시 출장보고서를 보면, 현지 일정 나흘 가운데 원전과 발전소 시찰이 각각 하루씩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이틀은 즉, 현지 일정의 절반은 '문화 탐방'이었습니다. 목적지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요르단 암만'이었습니다. 이들 의원은 이곳에서 경험했다는 '문화 탐방’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선 최고층 빌딩 그쪽에 잠깐 들렀고, 요르단 암만에서는 난민캠프에 갔던 일정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하루씩의 문화 탐방인데, 방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혈세 3천여만 원을 써서 간 해외 출장이라고 하기에는 현지 일정과 관련 출장 기록이 조악하다고밖에 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 출발 불과 1주일 전 피감기관에 출장 협조 요청
끝까지 판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한전에 출장 협조 공문을 발송한 날짜는 '3월 18'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장 출발일은 엿새 뒤인 '3월 24'일이었습니다. 출발 일주일 전쯤 피감기관에 공문을 보내 해외 출장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국회 자체 예산으로 가는 출장도 최소 2주 전에 의원들에게 공문을 보낸다는 점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을 촉박하게 압박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출장에 대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국회로 직접 찾아가고,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고, 보좌진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당사자들의 얘기를 직접 듣는 건 몹시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이현재 의원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지방 일정이 있어서 답변이 어렵다."라고 해 전해왔습니다.

정우택 의원과 어렵게 통화가 됐는데, 정 의원은 "그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어서 간 걸로 기억한다."라고 답했습니다. (※ 하지만 당시 출장은 3월이었고, 국정감사는 7달이나 뒤인 10월이었습니다.) 또, "국회에는 외국에 나가는 예산이 없다. 나만 간 게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같이 갔으니 그쪽에 물어봐라."라고 말했습니다. 현지 일정의 절반을 차지한 '문화 탐방'에 대해서도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는 대답을 그만하겠다."라며 질문이 끝나기 전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또 다른 출장자인 권은희 전 의원(19대 당시 새누리당 소속)에게도 연락해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권 의원은 "출장을 갔다 온 건 맞지만, 당시는 국회에 막 들어와 선수가 높은 다른 의원들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던 때라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국회 복지위 소속 의원 2명, 식약처 예산으로 미국 출장
개헌 국회 국회의사당 의사당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에 출장 비용을 요구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 10월, 19대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최동익, 박윤옥 의원이 보좌관과 비서까지 데리고 4박 6일 일정으로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출장 비용 3천7백만 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지원받았습니다.

당시는 식품의약안전처가 시중에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을 전수 조사한 결과, 불과 5%만 진짜 백수오가 함유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던 때였습니다. (※ 대부분 제품에는 가짜 백수오로 알려진 '이엽우피소'가 들어 있었는데, '이엽우피소'는 재배 기간이 짧고 가격은 3분의 1 정도로 저렴합니다.)

두 의원은 '가짜 백수오' 사건 이후 '미국의 건강기능식품 관리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식약처에 출장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식약처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국회 복지위에서 가자고 해서 가게 된 거다. 그분들은 우리를 감사하는 위치에 있고, 우리는 반대로 그걸 받는 위치이다."라고 당시의 곤혹스러웠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 일정 대부분이 미국 현지 기관 '견학' 수준

이렇게 혈세 3천7백만 원을 들여 떠난 해외 출장이었지만, 미국 일정 닷새 중 건강기능식품과 직접 관련된 건 '5시간 30분'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미국의 관련 기관을 '견학'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미 식약처와 미 국립보건원 등 여러 기관을 다녀왔지만, 출장보고서를 보면 일정 대부분이 굳이 미국에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현지 기관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방문자들에게는 원론적인 얘기만 할 뿐 연구실을 보여주거나 수행 중인 연구에 대해 직접 논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출장을 박윤옥 전 의원(당시 새누리당 소속)도 "현지 기관에서 연구실 같은 현장을 보여주고 그런 건 아니었다. 담당자가 나와 굉장히 제약을 많이 했다. 옆에도 못 가게 하고 사진도 못 찍었다."라고 말했습니다.

● 실제 출장을 갔었는지 의심하게 하는 답변

심지어 같이 출장을 다녀온 최동익 전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은 실제 출장을 간 게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답변을 했습니다. 현지에서 어디를 방문해 무엇을 봤는지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워싱턴 D.C.에 있는 존스홉킨스 한국학연구소(USKI)에 갔다. 거기서 '38노스(북한 전문매체)나 북한 핵 실험 등 관련해 논의했던 걸로 기억한다."이었습니다.

최 전 의원은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가 아닌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출장 목적도 '미국의 건강기능식품 관리 현황 확인'이었습니다. 출장비용도 식약처가 부담했는데, 정작 최 전 의원은 "북한 전문매체와 북한 핵 실험에 대해 논의했다."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식약처 보고서에는 '메르스 사태 등이 대한민국 경제 등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 누구를 위하여 해외 출장을 떠나나?

취재 과정에서 피감기관 실무자들과 얘기하고 출장보고서를 분석하며, 저는 국회의 요청을 받은 피감기관이 얼마나 큰 부담과 압박감을 느꼈을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일 안에 촉박하게 해외 현지 기관을 섭외하고, 현지에서 소화할 일정과 동선을 계획하고, 또 '모시고 갈' 의원들에게 전할 자료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하나하나가 몹시 어렵고 힘든 업무입니다. 더욱이 피감기관 관계자들 대부분은 그 출장이 국민이 낸 혈세로 이뤄진다는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들이 해외 출장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대접받으며 해외에 편하게 다녀온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원들 스스로 먼저 돌아볼 수 있으면 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해외 출장을 떠나나?" 국민이 준엄한 목소리로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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