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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리산 반달곰 해마다 출생…어디로 가야 하나?

[취재파일] 지리산 반달곰 해마다 출생…어디로 가야 하나?
전남 구례 산동면 지리산 자락이 노란 산수유 꽃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신호다. 산 아래 마을에 산수유와 매화가 봄을 불러올 때쯤 높고 가파른 지리산의 겨울잠을 깨우는 것은 반달곰 가족이다. 해발 1천 100m 고지에 둥지를 틀고 사는 반달곰은 새 생명과 함께 봄을 몰고 온다.

한 달 전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반달곰연구팀은 가파른 산비탈을 오른 지 3시간여 만에 반달곰 동면굴을 발견했다. 어미 반달가슴곰이 보내오는 위치추적 신호를 안테나로 잡아 찾아간 것이다. 어두컴컴한 바위굴 안에는 갓 태어난 새끼 곰 2마리가 어미에게 착 달라붙어 있었다. 새끼 곰은 빼꼼히 굴 밖을 쳐다보며 앙증맞은 모습으로 첫인사를 했다. 3kg이 조금 넘는 몸무게로 보아 지난 1월 말쯤 태어난 것으로 추정됐고 건강 상태는 좋았다. 어미 곰은 2007년 러시아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처음 방사한 올해 12살 된 반달가슴곰이다.
[취재파일] 지리산 반달곰 해마다 출생…어디로 가야하나?
동면 바위굴에서 반달곰 새 식구를 본지 이틀 만에 연구팀은 바위굴이 아닌 산속 노지에서 새끼 곰 2마리의 출생을 확인했다. 반달곰은 보통 바위굴에서 겨울잠을 자지만 아름드리 고목에 생긴 나무 굴이나 조릿대 숲도 동면장소 중 하나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바람과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면 겨울잠을 잘 장소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일명 '탱이'라고 불리는 노지에서 새끼를 출산한 어미 곰은 서울대공원에서 데려와 2008년 지리산에 방사한 개체로 확인됐다. 두 쌍의 새끼 곰을 비롯해 지리산 야생에서 올봄 태어난 반달곰은 모두 8마리에 이른다. 야생이나 다름없는 자연적응훈련장에서 태어난 새끼 3마리까지 포함하면 11마리의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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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 출산한 어미 곰 6마리 가운데 3마리는 지리산에 방사한 곰 사이에서 자연 출생한 방사 곰 2세대 개체로 확인됐다. 지리산 숲속에서 3년 연속 손자 곰이 태어난 것이다. 지난 2007년 러시아에서 들여와 방사한 어미 곰 1마리는 올해까지 5회나 출산을 해 지금까지 모두 6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방사한 지 11년째 되면서 자녀 곰을 넘어 손자 곰까지 안정적으로 자연증식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지리산이 반달곰의 서식지로 자리를 잡았다는 반증이다.

지난 2007년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한 뒤 지금까지 야생에서 태어난 반달가슴곰은 44마리에 이른다. 방사 2년만인 2009년에 2마리를 시작으로 해마다 2~4마리씩 출생을 했고, 2014년 8마리, 2015년 5마리, 2016년 7마리, 지난해 4마리가 태어났다. 지리산에서 태어난 반달곰 44마리 가운데 4마리는 폐사했고, 1마리는 다리를 다쳐, 다른 1마리는 자연적응을  못해 종복원기술원으로 데려와서 지금 현재 38마리가 활동하고 있다. 어미까지 포함해 지리산 반달가슴곰 숫자는 56마리다. 오는 가을쯤 자연적응장에서 태어난 새끼 3마리를 방사하게 되면 59마리로 늘어난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반달곰 복원사업을 시작하며 목표로 한 '최소 존속 개체군' 수는 2020년까지 50마리였다. 최소 존속 개체군은 특정 생물종이 최소 단위로 존속할 수 있는 숫자다. 반달곰 복원사업의 1차 목표를 2년 앞당겨 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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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 식구가 늘어나면서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숙제가 생겼다. 지리산권역에 한정돼 있는 서식지를 어디로 언제 어떻게 넓혀야 하는가다. 지난 2016년 연구용역결과에 따르면 지리산에 살 수 있는 반달곰의 알맞은 개체 수는 78마리다. 먹이조건과 위험요소 등 서식환경을 고려해 나온 것이다. 반달곰의 출산 개체 수로 본다면 데드라인까지 2년 남짓밖에 안 남았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오는 9월까지 지리산 밖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서식환경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또 5월부터 지자체, 시민단체, 지역주민과 함께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도 만든다. 지역주민뿐 아니라 등산객을 상대로 안전수칙 홍보 및 교육을 하고, 등산로에 현수막 설치와 반달가슴곰 출현 정보 제공, 호루라기 등 안전용구 지급을 통해 곰과의 충돌을 예방하고 공존 활동을 벌여나가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연구결과에 따르면 단독 생활을 하는 반달곰의 행동반경은 수컷의 경우 40㎢로 알려져 있다. 참나무림 분포와 도토리 생산량, 동면장소 등이 중요하다. 지리산의 먹이자원이 부족하고 영역 다툼이 일어날 경우 지리산 권역을 벗어나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6월 중순 반달곰 한 마리가 지리산에서 90km나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이 곰은 포획돼 지리산에 풀어줬는데 또다시 김천까지 이동했다가 강제로 지리산 권역으로 붙들려왔다. 반달곰이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해 갔는데 지리산에 가두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환경부는 안전사고위험을 내세웠다.
[취재파일] 지리산 반달곰 해마다 출생…어디로 가야하나?
이 곰은 아직 까지 지리산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3번째 지리산을 벗어나 가출(?)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환경부가 백두대간으로 반달곰 서식지확대를 서둘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반달곰의 거주권을 제한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과거 반달곰이 설악산과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았던 것처럼 반달곰이 살 곳은 오롯이 반달곰이 선택하도록 맡겨둬야 한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공존할 방안을 찾아가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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