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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진핑이 깨버린 中 정치 불문율

베이징대 출신 수재 리커창은 한때 대권 레이스에서 시진핑에 앞서 달렸습니다.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린 건 17차 당대회 폐막 다음날인 2007년 10월 22일이었죠. 상무위원 서열 6번째는 시진핑의 자리였고, 리커창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결국 2012년 리커창은 시진핑에 밀려 국무원 총리로 '차이나 넘버2'가 됩니다. 그래도 그 뒤 5년 동안 리커창 총리는 적어도 경제 분야만큼은 자신이 책임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정치·군사는 시진핑, 경제는 리커창'으로 나누며 두 사람의 성을 딴 '시리(習李) 체제'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리커창 총리가 지난해 19차 당대회부터 올해 양회를 거치는 동안 존재감을 잃고 있습니다. 양회 개막연설 때 땀 흘리는 모습, 멍한 표정으로 시 주석과 악수하는 모습 정도만 기억날 뿐입니다. 시 주석이 자신의 50년 친구 류허와 다시 등장한 왕치산에게 재경·통상을 맡기면서 리커창 총리의 경제 실권마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시리 체제'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입지가 줄어든 리커창 총리는 이제 시진핑 주석과는 상하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절대권력을 구축한 시진핑 주석이 주룽지, 원자바오로 이어지는 중국 정치의 불문율 '실세 총리'를 지워버린 겁니다. 
시진핑과 리커창
집권 2기를 맞은 시진핑 주석은 올해 양회를 통해 사실상 대관식을 치렀습니다. 헌법에 자신의 이름을 삽입해 권위를 높였고, 국가주석 연임제도 없애 2022년 이후 장기집권을 위한 장애물을 없앴습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조언대로 군 최고 수뇌부도 최측근으로 채웠고, 당원·비당원 공무원은 물론 기업인 같은 민간인도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사찰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절대권력 구축을 위한 시 주석의 인적, 제도적 완비는 중국 현대 정치의 여러 불문율과 충돌할 수 밖에 없는 행보였습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중국에서 선배들이 다져온 불문율을 깬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닐 테지만, 시 주석은 과감하게 이런 불문율을 하나하나 청소해나갔습니다. 2인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 주석의 결심은 리커창 총리의 위상을 떨어뜨렸고, 그 결과 실세 총리라는 중국 정치의 불문율은 시 주석 시대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시 주석이 깨버린 두번째 키워드는 '칠상팔하(七上八下)'입니다. '67살이면 올라가고, 68살이면 내려간다'는 뜻의 칠상팔하는 공산당 최고수뇌부인 상무위원의 연령제한룰입니다. 2002년 이후 지켜온 이 원칙을 근거로 많은 사람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 정치인의 윤곽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A는 다음 당대회때 68살이니 상무위원에 탈락할 것이고, B는 67살이니 진입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시 주석은 18기 상무위원이었던 왕치산을 국가 부주석으로 재등용함으로써 칠상팔하 원칙을 깨버렸습니다. 1948년생인 왕치산은 올해 71살인 만큼 칠상칠하 원칙에 따른다면 정계 은퇴 수순이지만, 시 주석은 이제 평당원에 불과한 그를 사실상 2인자로 발탁했습니다.
왕치산과 시진핑
시 주석 입장에선 왕치산을 각별히 챙겨줘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왕치산 부주석은 시진핑 주석 집권 1기 5년 동안 당 중앙기율검사위를 이끌면서 반부패 작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부패관료 청산은 시 주석 정적 축출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겠죠? 태자당 출신과 하방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도 한 왕 부주석은 사석에선 시 주석과 형님동생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사실 지난해 왕 부주석은 이런 저런 얘기에 시달렸습니다. 하이난 항공과의 정경유착설, 해외 호화주택 보유설 등 각종 루머가 터져 나왔었죠. 이런 왕치산을 시 주석이 칠상팔하 원칙을 깨면서까지 발탁한 것은 시진핑 측근 정치의 공식 선언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1953년생인 시 주석으로선 20차 당대회 이후 본인의 거취에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칠상팔하 원칙은 마땅히 사려져야 할 폐습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시 주석이 칠상팔하를 깨버린 건 꿩 먹고 알 먹는 격일 수 있어 보입니다. 
 
'집단 지도체제'는 중국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과오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불문율입니다. 1인 우상화 권력의 정점이었던 마오쩌둥 체제 속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이란 뼈아픈 역사를 반성하고자 덩샤오핑 이래 굳어진 통치 시스템이죠. 많은 중국인들은 집단 지도체제야말로 서구 정치제도에 대항하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특장점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인의 자랑인 집단 지도체제의 수명은 30여 년 만에 다한 것 같습니다. 시 주석이 다시 1인 체제로 회귀시키며 집단 지도체제는 역사속으로 묻힐 판입니다. 굳이 헌법을 개정하고, 측근을 등용하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집단 지도체제의 종식 분위기는 상무위원들이 시 주석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시 주석이 연설하는 동안 군대 훈련병처럼 차렷 자세로 서 있다 말 한마디 없이 들어가고,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이란 말을 무한 반복하는 상무위원들에겐 더 이상 '차이나 세븐'이란 칭호가 어색합니다. 
중국 상무위원
시 주석은 지난 2007년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면서 차기 후계자로 낙점받았습니다. 리커창 총리와의 경쟁 막후엔 후진타오 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의 불꽃 튀는 협상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시 주석은 5년 뒤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대권을 안정적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지금 권력자가 한 대를 건너 자신의 후계자를 지목하는, 이른바 격대지정(隔代指定)은 시 주석 본인도 혜택을 받은 중국 정치의 불문율입니다. 당연히 지난해 19차 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시진핑 다음 후계자가 누굴지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결과는 아무도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이 격대지정 불문율 역시 지워버린 겁니다.

포스트 시진핑으로 유력하다던 쑨정차이는 부패 혐의로 밀어냈고, 후춘화의 상무위원 진입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후춘화는 전인대를 통해 부총리로 이름을 올렸지만, 지금 상황에서 후 부총리가 시진핑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시 주석 최측근인 천민얼도 여전히 지방정부 서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 주석이 격대지정룰을 지키지 않는 것은 본인 스스로 후계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걸로 해석이 가능할 듯 합니다. 시 주석의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적어도 후계자를 세워놓고 2022년 이후에 막후로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니 말입니다.

모든 불문율이라는 게 항상 유지되는 건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거고요. 다만 불문율을 깨야하는 상황에선 그 이유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불문율이 형성된 그 배경을 뛰어넘는 납득할 만한 이유 말입니다. 시 주석의 불문율 깨기는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의 우려를 자아냅니다. 누가 봐도 불문율 깨기의 목적이 시 주석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려는, 그 한 가지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시 주석의 권력 강화를 14억 인민을 위한 강력한 리더십을 위해서라는 관영매체들의 해명 아닌 해명만으로는 중국 정치 불문율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로 납득하기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사진=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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