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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차이나패싱과 중국의 자신감…그 사이에 숨겨진 위험

영화 '강철비'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스토리를 잘 표현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영화 내용 중 너무 나갔다 싶은 설정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넘버원(영화 속에선 명시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나라 땅으로 내려온 상황 말입니다. '뭐 영화니까'라는 생각으로 봤습니다. 근데 그 영화 속 상황이 현실화될 거 같습니다. 다음 달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판문점 평화의 집이 분명히 우리 지역이니까요. 세상일 함부로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되새깁니다.

북핵 이슈가 급반전하고 있습니다. '압박과 제재' 일색이던 분위기에서 '대화와 타협'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방향 전환도 놀랍지만, 속도는 더 놀랍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불과 며칠 사이에 내달렸습니다. 유례없는 이런 상황을 보며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신중론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고차원 방정식인 북핵 문제를 당사자들이 펜 들고 풀어보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월드리포트] 中 차이나패싱과 자신감…그 사이에 숨겨진 위험-김정은 문재인 시진핑
중국도 이런 반전 상황은 예상 못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초반 당황하는 듯하더니 금방 입장 정리를 하더군요. 중국 외교부는 "남북한 대화분위기 조성과 북미회담 성사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연일 반복했고, 시진핑 주석이 1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만난 자리에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사실 시 주석이 이날 정 실장을 만난 건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중국 최대정치 행사인 양회가 진행 중이었고, 특히 이날은 시 주석이 인민해방군 대표단과 만나는, 중국 내부로선 굉장히 중요한 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우리 대표단을 만났다는 건 시 주석이 그만큼 남북 간, 북미 간 진행되는 사안에 관심이 높다는 얘기겠죠. 이날 정 실장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왕 이 외교부장에 '샌드위치' 포위를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찬을 함께 한 양제츠 국무위원과 4시간을 보냈고, 만찬을 함께 한 왕 이 외교부장과도 2시간은 넘게 함께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정 실장에게서 자신들이 알고 싶은 정보를 최대한 뽑아냈다는 얘깁니다.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외교계 최고위 인사들이 이렇게 전방위로 나선 상황 자체가 중국의 우려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이 소외되는, 이른바 차이나패싱에 대한 우려 말입니다. 차이나패싱에 대한 우려를 감지할 수 있는 건 비단 이 상황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이 북핵문제 해법으로 제시한 '쌍중단'을 난데없이 홍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내용인데, 중국은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이 성사된 건 북핵 당사국들이 중국의 쌍중단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북핵 분위기 전환은 중국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UN 안보리 대북제재에 적극 참여했던 결과라고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역할을 알아달라는 얘기인데, 다른 말로 그만큼의 지분을 바란다는 얘기와 통할 수 있겠죠. 중국이 북핵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하는 것도 북핵 이슈에서 절대 소외되지 않겠다는 또 다른 표현으로 들립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중국 시진핑 주석
중국이 이렇게 차이나패싱에 대한 조급함을 흘리는 건 최근 상황을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일단 최근 북중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수준입니다. 북중 간 인적 물적 교류가 사실상 끊겼다는 말이 공공연합니다. 북한이 UN 안보리 결의안 이행에 적극적인 중국에 매우 섭섭해한다는 소식은 여러 루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지난해 11월엔 시 주석의 특사로 간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끝내 김정은 위원장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특사로 간 정의용 실장 일행은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부인 리설주, 동생 김여정까지 만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본 시 주석의 속마음은 어땠을까요? 현재로선 북중 간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고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동안 과거 혈맹관계였던 시진핑 주석은 '낙동강 오리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대외적으론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향후 전개될 북핵 해결 과정에 중국의 역할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각종 관영매체들과 학자들을 통해 밝히고 있는 자신감의 근거는 대략 이렇습니다. 우선 과거 6자회담 주최국으로서의 중재 경험을 내세웁니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낼 당시 회담 주최국으로서의 중국의 역할이 지금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그 근저에는 북한과 한국이 컨트롤이 불가능한 미국을 중국만이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습니다. 중국이 남북,북미 회담을 다자회담으로 확대해가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주장은 중국의 이런 중재 역할이 있어야 북핵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의미인 거죠.

여기에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이 여전하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입니다. 지금은 냉랭하지만, 혈맹도 아닌 정상국가 관계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중국은 북중 간 이런 정치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더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북한 경제가 얼마나 중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지가 UN 대북제재 결의안 이행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됐다는거죠. 

중국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북한 경제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얘깁니다. 북한 경제를 옥죌 수 있다는 중국의 자신감은 우리와 미국에게도 내세우는 큰 무기입니다. 북한과의 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경제적 압박을 병행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누가 북한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중국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북중철교, 단둥-신의주 철교 폐쇄
이런 여러 이유를 근거로 중국은 북핵 문제에 차이나패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꼭 중국이 그리는 그림대로일지는 의문입니다. 일단 북핵 국면이 중국이 역할을 담당할 여지가 생기는 다자회담 구도로 전환될 것인가부터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로선 북한도,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조차도 남북, 북미 회담 이후 상황 전개를 예단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오히려 과거 6자 회담 시절과는 지금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인식이 외교가에서 더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다자회담 구도 전환 가능성이 닫힌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남북한과 미국은 다자회담 효용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원하다는 관측도 중국에겐 악재일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핵폐기 대가로 북미 수교를 현실화하고,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직접적인 경제교류로 방향을 선회한다는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이게 현실화되기 위해선 수많은 걸림돌이 놓여 있지만,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북한 경제가 반드시 중국에만 목매야 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심지어 존망이 걸린 국제 관계는 결코 단순할 수 없습니다. 특히 북핵 문제는 수십 년에 걸친 고차원의 난제이며,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주변 국가에까지 미치는 파장을 미치는 예측 불가한 국제 이슈입니다. 우리 입장에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반도 비핵화라는 결과겠죠. 하지만 어떤 나라에겐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얼마나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얘깁니다.

중국도 공식적으론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바람직한 결과에 방점을 두는 듯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속내가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특히 북핵 프로세스가 중국이 원하는 방향과 달리 흘러갈 경우엔 어떻게 태도가 바뀔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정부가 시진핑 주석에게 일관되게 지지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바라건대 북핵 문제만큼은 반드시 중국에게서 대국의 풍모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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