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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 'Me Too' 사례들도 충격적…그래도 잠잠한 이유

[월드리포트] 일본 'Me Too' 사례들도 충격적…그래도 잠잠한 이유
그제(지난 5일) 아사히신문 11면에 실린 '#Me Too(미투)' 전면 기획기사입니다. 지면 왼쪽에는 일본 여성 7명의 의견이, 나머지 지면에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실려 있습니다.

교토의 한 여고생은 '성적 피해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기껏해야 치한 정도라고 여겼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읽고 불안해졌다. 성적 피해에 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 30대 여성은 과거 연애시절 남자친구와 강제로 성관계를 했던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겪은 성적 피해를 언급하며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보다 그냥 '나도 죄가 있어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사를 읽고 개인적으론 너무 '피해자 여성들이 더욱더욱 조심하자'는 내용 중심인 듯해 불편했습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 갖힌 일본 여성들의 고통도 우리 여성들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 세계경제포럼(WEF)가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에 따르면 일본은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114위, 한국은 그보다 낮은 118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자신의 성폭행 피해사실을 공개한 일본 프리랜서 기자 이토 시오리 씨.
하지만, 일본의 #Me Too 운동은 미국, 유럽, 한국에 비해 크게 저조한 상황입니다. 사실 #Me Too는 우리보다 일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 프리랜서 기자 '이토 시오리' 씨(위 사진)가 2015년 유명 TV해설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기자회견을 가진 겁니다. 올 1월 서지현 검사가 2010년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보다 훨씬 전의 일입니다.
과거 직장 내 성적 피해를 공개한 일본 유명블로거 이토 하루카 씨.
이후 지난해 12월엔 유명 블로거 이토 하루카 씨가 2009년 일본 광고사 '덴츠' 재직 당시 남성 상사의 집에 혼자 불려가고 성적 요구도 받았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두 여성의 #Me Too 투쟁으로 지난해 12월 17일 일본 트위터에서 #Me Too 관련 글은 무려 5만 건을 넘을 정도로 폭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채 한 달을 가지 못했습니다. (아래 그림 참고)
일본 트위터 'Me Too' 언급 동향(NHK 시사프로 '클로즈업 현대' 홈페이지)
그렇다고 #Me Too 폭로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 1월 22일 NHK '#MeToo 퍼져가는 세계, 그래도 일본은' 프로그램에는 다음 두 명의 사례자가 나왔습니다.

[#사례1] 5년 전 광고회사 직원이었던 20대 여성. 연말 고객사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망년회가 열렸다. 회사에서 미니스커트 산타 복장을 입도록 했다. 고객사 사람은 몸을 더듬었고 사장에게 "이대로 이 얘 데리고 갑니다"라고 했다. 사장은 "그러세요. 부족한 선물입니다만…"이라고 답했다. 몸이 안 좋다고 거짓말을 하고 도망쳐 집 화장실에서 새벽 5시까지 울었다. 이후 상사에게 상담하니 "그걸 '세쿠하라'(sexual harassment/성적 괴롭힘)라고 하면 안 된다. 고객에게 실례가 되고 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화(和)가 깨져 계약이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결국 퇴직했다.
일본 Me Too 사례 이미지(NHK 홈페이지)
[사례2] 20살 연극배우. 고교 2학생 때 남성 연출가에게 불려가 노래방에 함께 갔다. 거기서 연출가는 팔로 어깨를 감싸고 혼자 성적인 행동을 하면서 그걸 지켜보도록 요구했다. '정말 이런 남자가 있구나' 했다. 역에 도착해 승강장에 앉아 2시간 동안 울었다. 지난해 12월 #Me Too를 보고 용기를 내 트위터에 당시 상황을 올렸다. 이후 비슷한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나왔다. 연출가는 결국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했다. 그런데, 트위터에는 '자업자득이다', '증거도 없으면서…','이름이나 알리려고…','뭐든지 다 세쿠하라냐?'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일본 Me Too 사례에 나온 인터넷 반응(NHK 홈페이지)
이처럼 일본의 #Me Too 상황은 간단치 않습니다. 언론은 주목하지 않고, 가해자는 변명만 하고, 피해자는 욕을 얻어먹는 상황인 겁니다. 좀 더 분석하면 다음의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말해도 변화가 없다
2012년 일본 법무부 산하 법무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성폭력 피해여성 가운데 18.5%만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성폭행 사건의 3분의 1만이 실제 재판까지 가고 이 가운데 17%만이 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습니다. 즉 아무리 #Me Too 투쟁을 해도 가해 남성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해고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 말해도 욕만 먹는다
일본 여성들이 머뭇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따돌림입니다. NHK의 사례처럼 '조직의 조화(和)를 깨뜨렸다'는 겁니다. #Me Too 선언을 한 이토 시오리 기자와 블로거 이토 하루카 씨는 모두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은 프리랜서였습니다. 여기에 넷우익, 즉 보수적인 남성 네티즌들이 득세하는 일본 인터넷에서 #Me Too 여성들은 더욱 심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게 됩니다.
 
3) 투쟁하며 직장에 남고 싶지 않다
지난해 4월 일본 소니생명이 직장여성 57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요, '관리직을 해보겠냐는 타진이 있으면 받아들이겠다'는 답은 19.8%에 불과했습니다. 그냥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는 답은 39.2%에 이르렀습니다. 현 직장 상황을 바득바득 유지하겠다는 답은 37.0%입니다. (복수 응답) 즉, 전체적으로 # Me Too 투쟁으로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직장여성이 적은 겁니다.
일본 소니생명 설문조사(2017년 4월)
4) 낮은 여성 인권 의식
워싱턴포스트의 쇼지 가오리 기자는 '왜 #Me Too 운동은 일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나'라는 기사(2월8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본에서 여성이 살아남으려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남성들에게 뭔가를 줘서 달래야(appease her menfolk) 한다고…" 일본 전직 국회의원 이케우치 사오리 씨는 AP뉴스 '가부장적인 일본사회에서 Me Too를 말하는 여성은 위험해질 수 있다'라는 기사(2월 28일자)에서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일본은 한국과 여러 나라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고 침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Me Too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나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가해 남성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있는지, 조직 내 피해 여성들은 잘 보호받고 있는지, 우리 딸들이 좀 더 안전하게 꿈을 쫓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등을 돌아보면 한국, 일본 모두 갈 길이 멉니다. 앞으로 #Me Too 운동이 두 나라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가해 남성 처벌만으론 이뤄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직장과 사회의 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새로운 성(gender)교육도 필요합니다. 두 나라가 이번 #Me Too를 계기로 좀 더 남녀 평등 사회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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