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강경윤 기자의 사건 비하인드] #미투운동으로 연예계 망하지 않는다

[강경윤 기자의 사건 비하인드] #미투운동으로 연예계 망하지 않는다
"벌써 10년도 더 된 얘기예요.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사건이지만 뒤늦게 말했다가 저만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거 아닐까요?"

익명의 제보자는 막내 스태프로 일하던 시절 유명 배우 A씨에게 겪었던 끔찍한 성추행을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제보자는 "혹시 A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면 저도 용기를 내볼게요."라고 주저했다.

제보자의 예상대로 A씨에 대한 폭로는 곳곳에서 나왔다. 마치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지는 폭로들이었다. 제보자가 털어놨던 A씨에 대한 일화와 상당부분 일치했다. A씨는 10년 동안 놀랍도록 변치 않았다. 한결같았다.

사실 성추행을 저지르는 ''괴물'은 연출가 이윤택이나 배우 조민기 등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진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건 대단치 않더라도 적든 크든 권력의 자투리라도 쥔 누구나였다.

#미투운동의 본질은 '연대'다. 가해자가 어떤 정치성향을 가졌던, 어떤 막후의 권력을 가졌던, 어떤 성별을 가졌던 그 행동을 고발해 사회적 연대를 해 진실을 규명하는 게 이 운동의 핵심이다.

#미투운동의 참가자가 낸 용기는 두 번째 참가자의 용기의 씨앗으로 심어진다. 사회는 그 연대를 지지하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미투운동이 어디까지 가겠나'란 비관적 전망이 고개를 든다. 문화계 종사자들은 "이러다가 10% 남고 다 사라지겠다."며 부정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본보기로 몇 명 '망신' 당했으니 이제 그만하자는 반응도 적잖다.

수년째 피해를 가슴에 품었다가 꺼내놓은 #미투 글에는 성희롱적 발언이 눈에 띄기도 하고, "초성만으로도 명예훼손 고소가 가능한 걸 알고 있느냐."와 같은 으름장이 여러 차례 게시돼 글 작성자들을 위축시킨다.

언론이 지나치게 피해자들에게 집중하는 것 역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히는 일이다. 조민기 교수의 캠퍼스 성추행을 처음 실명으로 고발했던 배우 송하늘과 배우 조재현에 대한 첫 #미투 고백을 한 최율까지, 언론은 가해자들 보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믿을만 한가'에 파고들었다.

검사 서지현의 고백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의 최대의 적은 "이만하면 됐다", "그만해라"는 사회적 분위기다. "이러다가 연예계 다 망하겠다"고 무심결에 내뱉는 말이 곧 폭력이고,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말이다.

#미투운동으로 연예계는 망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고백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용서를 빌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2009년 배우 장자연이 힘없이 스러졌을 때 사회에 "가해자를 조사하고 처벌하라"고 더 큰 목소리를 나왔다면 어땠을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주목하고, 뒤늦었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줘야만 우리는 '괴물'과 이별 할 수 있다.

(SBS funE 강경윤 기자/사진=김현철 기자)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