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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의 섣부른 '숭의초 수사결과' 발표…'면죄부' 논란

지난해 6월 1일 서울 숭의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학폭위가 다른 여러 학교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창구가 돼왔지만, 1966년 개교한 이 학교에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수련회장에서 학생 여러 명이 이불 아래있는 친구를 폭행하고, 물비누를 먹도록 유도했다는 사건이었다. 이날 학폭위에 올라온 피해자는 한 명, 가해자는 세 명. 그런데 당초 피해자가 주장한 가해자는 네 명이었다. 한 명이 빠진 것이다. 이른바 재벌 손자로 알려진 그 아이였다. 재벌 손자의 잘잘못도 가려 달라는 피해자 측의 강한 요청에 의해 결국 열하루 뒤인 6월 12일, 재벌 손자 A군에 대한 숭의초 역사상 두 번째 학폭위가 열렸다.

● 피해 아동에게는 엄격했던 숭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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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학폭위는 결과가 그날 바로 나온다. 숭의초의 경우도 2차 학폭위가 열린 6월 12일 곧바로 결과가 나왔다. 누가 얼마나 가해를 했는지 판단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분과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피해아동의 부모는 이 학폭위 결과를 마음 졸여 기다렸다. 이미 숭의초 교장은 첫 번째 학폭위가 열리기 이틀 전, 피해자 부모에게 '우리는 교육청 하나도 안 무섭다. 재단이 무섭다', '학폭위 끝나면 애 데리고 나갈 거 아니냐' 등 폭언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던 터. 학교장의 이런 태도로 미루어 학폭위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던 피해자 부모 입장에서는 학폭위 결과에 따라 아이가 전학을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부모는 이날 저녁 학폭위를 담당하는 생활지도부장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등기로 결과 통지서를 보낼 테니 직접 받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일 교장선생님 결재가 나면 등기우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생활지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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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초조하게 기다리던 피해자 엄마는 등기로 부친 학폭위 결과통지서를 우체국에 직접 찾아가 찾아올 요량으로 '혹시 숭의초에서 부친 등기가 있느냐'는 확인 전화를 숭의초 인근 우체국에 몇 차례 했다. 나중에는 우체국에서 이상하게 생각을 할까 봐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이날도 학폭위 결과는 받아볼 수 없었다. 오후가 돼서야 숭의초 생활지도부장에게 '익일 특급'으로 학폭위 결과를 부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해자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기다림이 계속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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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일 특급'으로 부쳤다던 등기는 이날도 도착하지 않았다. 생활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차피 등기로 부쳤으니, 그냥 결과만 구두로 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역시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면 등기 접수번호라도 알려 달라고 물었지만 그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나서야 겨우 등기 접수번호를 알게 됐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집 근처 우편취급국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혹시 등기가 도착했는지 물었지만 결국 이날도 학폭위 결과를 받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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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인 이날 오후 4시쯤이 돼서야 드디어 숭의초 로고가 인쇄된 흰색 편지 봉투가 등기로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등기를 뜯어보자 딱 한 장짜리 학폭위 결과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내용. 따라서 가해자에 대한 처분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피해자 부모는 학폭위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떤 논의를 통해 나온 결과인지 알아보기 위해 학교 측에 당시 회의록을 요청했다. 피해자 부모는 6월 14일 학폭위 회의록을 공개해 달라는 민원신청을 했고,5일이지난 6월 19일에서야 회의록을 받아볼 수 있었다. 회의록은 개인정보는 유출하면 안 된다는 규정대로, 아이들과 학폭위원, 참석 교사의 이름과 직책 등이 철저히 지워진 상태였다.
숭의초
● 숭의초, 재벌 며느리에게는 '특혜'에 가까운 편의 제공

앞서 설명했듯 같은 '수련원 폭행' 사건이었지만 재벌 손자는 뒤늦게 따로 학폭위에 회부됐다. 다시 말해, 같은 사건을 다루었지만 A군은 1차 학폭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숭의초는 A군은 포함되지도 않았던 이 1차 학폭위의 회의록을 A군의 어머니인 재벌 며느리에게 통째로 이메일을 통해 전송해주었다. A군이 당사자인 2차 학폭위 회의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 심각한 건 규정상 유출하면 안 되도록 돼 있는 아이들의 이름 등 신상정보를 하나도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노출한 채 회의록을 보냈다는 것이다. 피해자 측에는 철저히 지켰던 법규를 재벌 며느리에게는 지키지 않은 것이다.

법규까지 위반하며 재벌 며느리에게 특혜에 가까운 편의를 제공한 건 다름 아닌 생활부장이었다. 피해자 어머니에게는 그토록 엄격하게, 간단한 학폭위 결과조차도 '등기로 받아보라'며 가르쳐 주지 않으려던 교사가, 재벌 며느리에게는 학폭위에서 무슨 논의가 오갔는지 상세히 기록돼 있는 회의록을 통째로 이메일로 보낸 것이었다. 본인과는 상관없는 다른 아이들의 학폭위 회의록까지도 말이다. 같은 제자인데도 피해 아동과 재벌 손자를 차별한 셈이다. 결국 이런 사실은 교육청 감사에 드러나 지적된 데 이어, 경찰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상태다.

● 경찰, 그런데 "학교 폭력 축소·은폐는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숭의초 교장·교감,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축소·은폐한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난해 7월, 숭의초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던 서울시교육청은 정반대로 숭의초의 교장·교감,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축소·은폐했다고 발표했다. 이 교사들에 대해 해임 등 중징계도 요구해 놓은 상태다. 숭의초는 지난해 교장과 교감을 잠시 직위 해제하기도 했다. 이런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를 경찰이 뒤집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이런 발표를 한 걸까?

● 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 보고서'를 살펴보니…"학폭 축소·은폐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8일간의 특별감사를 통해 숭의초가 수련회장에서 있었던 학교폭력 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결론 내렸다. 교장과 교감, 생활부장, 담임교사 등 학교 폭력 처리 과정에 관련된 교원들과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들, 피해 아동과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들의 부모 등 관련자를 모두 면담했다. 그 결과 명백한 규정 위반을 여러 건 발견했다.

우선, 피해 아동이 가해자로 지목한 재벌 손자를 당초 학폭위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지적됐다. 심지어 재벌 손자가 가해자로 포함될 만한 여러 정황이나 진술서 등이 있었는데도, '재벌 손자는 폭행 현장에 없었다'는 일부 학생들의 진술서만을 근거로 가해학생이 아니라는 일방적 결론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숭의초 학교 폭력, 특별감사
그런가 하면 재벌 손자가 심야에 다른 학생을 아동용 야구방망이로 폭행을 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이에 대한 학교폭력위원회는 아예 열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외에도 수련회장에서 폭행이 발생한 것을 인지한 담임이 학교장 등에 보고하지 않았던 점,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면서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의 절차 위반도 드러났다.

지금까지 언급한 부분은 교육청이 밝혀낸 부분으로, 교육청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숭의초가 학교폭력을 은폐 축소했다고 판단했다.

● 사라진 아이들의 진술서…수사로 밝혀냈어야 하는 부분들

하지만 교육청이 수사기관은 아니다. 그런데 감사를 하다 보니 수사권을 동원해야 밝혀낼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됐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초기진술서 6장이 사라진 것이었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초기진술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어른들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아이들의 경우는 오염되기 전의 초기 진술서가 중요하다. 그런데 폭행사건 목격자 아이들이 작성한 초기진술서 18장 가운데 6장이 사라진 것을 교육청이 발견했다. 이 초기진술서들은 사건 직후 담임교사가 받아놓은 것이었다.

교육청이 추궁하자 이 최초진술서를 직접 받은 담임교사는 자신은 학폭위 절차가 시작되고 난 뒤 아이들의 초기 진술서 18장을 있는 그대로 생활부장에게 넘겼다고 주장했다. 반면 생활부장은 담임교사에게 건네받을 때부터 진술서는 18장이 아닌 12장뿐이었다고 답을 했다. 담임이나 생활부장 둘 중 한 명은 사실이 아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초기 진술서가 사라진 것이 고의에 의한 것인지 규명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 거짓말 탐지기 동원했다더니…'확인 불가'에도 그냥 넘어간 경찰

그렇게 지난해 7월 시작된 경찰 수사는 결국 해를 넘겨 며칠 전 수사 결과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재벌 며느리에게 학폭 회의록을 넘긴 혐의로 교장과 교감, 생활부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것이었다. 혐의가 있어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재벌 손자 A군의 학교폭력 사실을 은폐·축소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라진 초기 진술서 6장의 행방도 밝히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수사 과정이 의아하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 그 결과 생활부장은'진실' 반응이 나왔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사라진 초기진술서 6장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생활부장의 주장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담임교사는? 담임교사는 '확인 불능'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확인 불능'이란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탐지기가 밝혀낼 수 없다는 뜻으로, 대상자가 심하게 떠는 등 그때그때 바이오리듬에 따라 종종 나오는 결과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확인 불능'이 나온 담임교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 종결했다고 한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 이외에도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보도자료에는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했다'며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법적 근거로 인정되려면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하는 거짓말탐지기 조사 외에 별다른 수사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경찰 "학교폭력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 대해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아이들 가운데, 재벌 손자를 제외한 나머지 3명에 관련된 사안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3명은 당초 숭의초가 재벌 손자 A군과 함께 가해자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차후 열린 서울시 재심에서 그 판단이 뒤집혀 가해 학생으로 인정된 아이들이다. 교육청도 이 3명의 학교폭력에 대해서는숭의초가 은폐·축소한 사실은 이미 명백히 밝혀냈기 때문에 수사의뢰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통해 규명하지 못한 부분만 밝히면 됐는데, '학교 폭력 은폐·축소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함으로써 마치 학교폭력 은폐·축소 자체가 없었다고 오인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경찰에 질문을 하자, 경찰은 "이번 수사 발표가 학교 폭력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학교 폭력이 있던 것은 맞다. 다만 우리가 수사를 한 부분은 당시 사건 전체에 대해서가 아닌 교육청에서 의뢰가 들어온 특정 부분에 한해서만 진행된 것이었고, 그중 일부는 혐의를 밝혔지만 끝내 밝히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발표를 한 것 뿐"이라고 답했다.

이제 이 사건은 검찰이 살펴보고 있다. 과연 경찰에서 넘어온 대로 재판에 넘겨질지, 아니면 보강수사를통해 다른 혐의가 추가될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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