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북·미 대화 무산 누구 책임? 마주 앉혔다면 성공했을까

[취재파일] 북·미 대화 무산 누구 책임? 마주 앉혔다면 성공했을까
지난 3일, 이른 아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청와대 관계자였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받았습니다. 간밤에 한·미 정상 간 통화가 있었으니 잘 챙겨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입기자 SNS 방에 관련 브리핑도 올라왔습니다. 한·미 정상 통화는 통상 엠바고(보도 시점을 정해 놓는 취재원과 기자 사이의 약속)를 걸고 사전에 브리핑하는 게 관례였던 만큼 의아함은 더 컸습니다.

● 2월 2일 한·미 정상 통화 '베일을 벗다'

평창 올림픽 개회를 일주일 앞두고 의례적으로 이뤄진 정상 간 통화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미심쩍은 면이 많았습니다. 올림픽 협력 차 이뤄졌지만 그 날 통화의 핵심은 한반도 해법 논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을 계기로 열린 남북 대화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 하길 희망한다며, 특히, 펜스 부통령의 방한이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대화'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북·미 대화'를 고려해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은 유능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말도 함께 건넸다고 했습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한나절 만에 급반전됐습니다. 펜스 부통령 측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동선도 겹치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북·미 대화가 쉽지 않을 수 있음을 내비친 겁니다.
북미대화타진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로 드러난 당시 정황은 이날 한·미 간 통화가 미국이 북·미 대화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음을 말해줍니다. WP는 중앙정보국 CIA를 통해 북측의 회담 의사를 파악한 미국이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백악관 집무실 회의에서 대화에 응하기로 최종 결정됐다고 전했습니다.

한·미 정상 간 통화가 한국 시간으로 자정 가까운 2일 밤, 그러니까 미국 시간으로 2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이뤄진 걸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아침에 문 대통령과 통화한 뒤 이를 토대로 참모들과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미 대화를 최종 결정을 했다고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한나절 만에 신중 모드로 돌아선 건 미국이 북·미 대화를 하기로 결정하자 불필요한 메시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 중재 위한 피 말리는 노력…허탈감만

청와대는 WP 보도 이후 북·미 대화 추진 과정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 사실 확인 대신 다음과 같은 짤막한 말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하여튼 문 대통령이 서로 대화를 꺼리는 (북·미) 양쪽을 주도적으로 설득했다. 문 대통령의 '운전대론'이 그냥 말만 있는 운전대론이 아니다. 실제 적극적이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원 등 외교안보라인이 총동원돼 공들였던 북·미 대화는 성사 직전 북한 측의 돌연 취소 통보로 무산됐습니다. 당시 언론에 이런 상황을 말할 수 없었던 청와대 관계자들도 꽤나 답답했나 봅니다. 그때 귀띔 좀 해주지 그랬냐는 기자의 푸념에 한 관계자는 "내가 그때 계속 속상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미국 통상 압박 과감한 대응조치
● 북·미 대화 무산 책임 北? 美?

미국이 언론을 통해 회담 무산 사실을 공개하면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북·미 대화의 무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입니다. 한쪽에서는 미국 책임론을 제기합니다. 회담을 하기로 해 놓고 얼굴을 맞대야 할 상대에게 그렇게 맹비난을 퍼붓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겉으로만 북·미 대화에 응하는 척 해놓고 실제로는 북한이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여 책임을 떠넘긴 것 아니냐는 음모론적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 책임론을 제기하는 쪽의 논리는 좀 다릅니다. 일단, 북한 측이 회담을 불과 2시간 앞두고 취소를 통보한 만큼 1차적 책임은 명백히 북한 쪽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연일 계속된 펜스 부통령의 대북 강경 메시지가 회담 무산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담 전 기싸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생각이 다른 양측이 만나는 만큼 사전에 자기 측 논리를 공고히 하는 건 회담 전략일 수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측 책임도 있을까요? 정반대로 내달리는 미국과 북한 양측을 어떻게든 마주 앉히고자 동분서주했던 우리 청와대와 정부에 대해 책임론을 언급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피 말리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고 보면, 앞으로의 회담 준비를 위해서라도 지난 과정을 복기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북미대화 난관
● '마주 앉기'보다 시급한 건…우리 중재안은?

서로를 적이라고 굳게 믿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악담까지 주고 받았습니다. 이들을 중재하는 건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악감정까지 섞였다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두 사람을 화해시키겠다고 무작정 마주 앉히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싸움을 더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재하는 쪽의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간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우리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평창이라는 '기적' 같은 기회를 살리려다 보니 양측 입장까지 조율하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간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북한 대표단에게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며 북·미 대화를 촉구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정상회담만큼, 아니 그보다 몇 배 더 여건 조성이 필요한 게 북·미 대화 아닐까요? 언뜻 보기에도 남북보다 접점을 찾기 힘든 게 북·미 사이이고 보면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중재 노력이 '마주 앉기'라는 형식보다 '내용 조율' 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북핵에 대한 중재안을 만들어 양측을 설득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북핵 문제 중재안이 뭔지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청와대는 북핵 문제를 핵심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