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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② : 한국 퓨전재즈록의 태동과 진화…'불가능'의 추구

[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② : 한국 퓨전재즈록의 태동과 진화…'불가능'의 추구
(연휴용)[人터뷰+]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②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과의 연작 심층인터뷰 두 번째 순서에서는 그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과 음악을 통해 추구하는 것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박진원 논설위원) 30년전 데뷔 앨범이 나왔을 때 기존의 가요 음반들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형식의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리의 악사>를 비롯한 연주곡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한국에서 퓨전 재즈록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김종진) 저희가 한참 즐겨 듣던 음악이 그때 미국, 유럽의 뮤지션들이 계속 새롭게 시도했던 그 물결 속에 있는 음악들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퓨전 크로스오버의 황금기였다고 생각됩니다. 그걸 계속 들으면서 한국에도 이런 연주를 해주는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곡을 발표할 실력이 있는 분들은 충분했는데 실제로 그런 앨범을 발표하는 분은 없었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아, 우리라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만든 앨범이었어요.
 
연주곡이 타이틀곡으로 쓰이게 된 것은 이제 저희가 연주자라는 아이디를 표명한 거죠. 원래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저는 코러스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김현식 씨가 노래를 못 부르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제가 부르게 된 거예요.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는 하지만 원래는 나는 연주자다, 기타리스트다. 그게 바로 아이디였던 거죠. 그리고 아이디만 있어도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패스워드는 어떤 것을 넣어야 되는가, 우리끼리 한참 만들면서 패스워드의 조합을, 우리가 진짜 뮤지션이라는 것을 거기에 넣어야 된다.
 
그리고 또 이게 하나의 그냥 기록으로만 끝날 게 아니라 후배 뮤지션들도 이렇게 음악을 해도 충분히 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로 남겨야 된다고 해서. 사실은 그런 음반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가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꼭 해야 했고, 그리고 후회가 없습니다.
 

▷ 당시에 그런 작업을 통해 후회 없는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건데 그렇게까지 크게 히트할 줄 알았습니까?
 
▶ 지금 생각하는 히트에 대한 생각과 그때 생각하는 히트의 가치가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 세상에는 인기를 얻고, 음원 판매가 잘 되고, 그게 금전적인 가치로 환원이 됐을 때 히트 된다고 하는데 그때는 돈과 상관이 없이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진정한 히트라고 생각을 했어요. 잘 만들면 금전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은 있었어요. 그런 의미로 봤을 때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하하.
(연휴용)[人터뷰+]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②
▷ 1집에 이어 2집, 3집을 내면서 녹음을 하는 방식, 녹음을 하는 장소, 음반 프로듀싱 등 여러 면에서 기존의 음반제작 방식과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분야, 영역을 개척해보겠다는 뜻이 강했던 것 같은데 그 때 갖고 있던 생각이 궁금합니다.    
 
▶ 외국의 앨범들과 비교를 했을 때, 우리 한국의 앨범들은 약간 그 구성에 스토리를 담는 방식이 독특한, 한국만의 방식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건 여러 가지 음악의 성향들이 그냥 섞여 들어있는 거죠. 저는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들었던 라디오의 영향이라고 생각을 해요. 라디오를 한 시간 들으면 굉장히 다양한 음악들이 나왔었거든요. 또 하루 종일 들으면서 가정 음악실, 그런 클래식 소품도 나왔고, 국악이 들리기도 했고, 그리고 록을 틀어주는 DJ, 그리고 트로트가 들리기도 했었고. 정말 우리는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우리가 앨범을 낼 때도 분명히 어떤 뭐, 음악의 색깔이 강한 것을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집에서 쭉 듣고, 거리에서 들었던 바로 그 영향에 의해서 하나의 한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을 넣고, 진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속에 음악으로 담는 그런 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저희 1집, 2집, 3집, 계속 이어지는 일종의 그런 색깔들이죠.
 
그런데 이제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기존에 없었던 어떤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것은 우리 한국에도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투자해주는 제작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뮤지션들은 그런 것을 바라는데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니까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하자.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예술에 대한 어떤 개념하고도 관련이 되어 있는데요. 저희는 적극적으로 예술을 하고 싶었어요. 상업 음악이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그 예술. 심미적인 어떤 것을 파고들었는데 그 예술이라는 것에는 뭐가 들어 있는가? 그 예술을 규정짓는 어떤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냥 아름다움으로 끝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불가능’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축구 호날도 선수가 무회전 킥으로 딱 차서 쫙 코너에 딱 들어갔어요. 그랬을 때, 사람들은 ‘어? 저 불가능한 것을 해냈어, 엄청나게 연습을 해서 저걸 해냈어, 예술이야’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바로 그런... 우리가 지금 해내지 못한 것들? 누군가는 하겠지, 정복해주겠지만, 아직은 정복하지 못한 산에 올라가는 모습, 그리고 그걸 찍고 내려오다가 설령 실족하더라도 다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예술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죠. 그리고 그 예술적인 삶을 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사람들의 마음은 감동, 마음이 울려서 조금 딱딱한 게 풀어지죠. 그렇게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이 예술의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저희 인생을 거기에 오롯이 바치고 싶었어요.
 
 
▷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적으로 어떤 분들의 영향을 받았습니까?
 
▶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 집에 세를 살러 들어와 주신 나이트클럽 뮤지션이 있으셨어요. 나이트클럽에서 기타를 치는 아저씨인데, 그분을 따라서 그 나이트클럽에도 가서 그 아저씨 기타를 닦아주기도 했고, 기타 줄을 가는 것을 도와드리기도 했고. 생각해보니까 제가 맨 처음에 봤던 무대는 객석에서 올려다본 무대가 아니라 그 무대에서 내려다 본 객석의 모습이었어요.
 
▷ 그때가 몇 살쯤이셨어요?
 
▶ 그게 초등학교 5학년 때였으니까 열두 살이었네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그 프로 뮤지션의 삶으로 시작을 했던 기억이에요. 그 아저씨한테 받은 영향이 가장 크고요. 그 이후에 제가 고등학교 때, 독일에서 유학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또 진짜 외국 사람들의 음악을 가르쳐줬어요.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상상만 했죠. 그리고 지금처럼 뭐, 인터넷이 발달한 게 아니니까 확인 할 방법이 없었어요. LP를 들어도 또는 카세트테이프를 들어도 ‘이렇게 쳤을 거야’라고 상상만 했는데 그 친구가 와서 ‘맞아, 이렇게 친 거야. 소리는 이렇게 내는 거야’ 그러면서 그 친구가 정말 저한테 큰 영향을 미쳤고.
 
그리고 또 제가 더 공부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 재즈 1세대 베이시스트이면서 세계적인 이론가이신 이판근 선생님한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타리스트 한상원 씨, 그리고 베이시스트 송홍섭 씨도 저의 멘토들이세요. 그런데 그 전에도 분명히 저는 영향을 받았거든요. 그건 바로 저희 집에서 항상 음악을 틀어주신 아버지, 그리고 통기타를 쳐준 저희 형, 네. 
(연휴용)[人터뷰+]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②
▷ 뮤지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 외국 아티스트나 음반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나이트클럽 뮤지션에게 직접 영향 받은 얘기는 매우 인상적으로 와 닿네요
 
▶ 학창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아메리칸 탑 40>(American Top 40, 매주 빌보드 싱글차트 1~40위 히트곡들을 소개하던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DJ 케이시 케이섬(Casey Kasem) 진행, 당시 AFKN에서 매주 토요일 방송) 뮤직을 들려주면 엘튼 존(Elton John), 그리고 카펜터즈(The Carpenters) 곡들을 많이 들었고요. 그리고 그 당시 라디오에서는 베이시티 롤러스(Bay City Rollers) 같은 십대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엄청 많이 들려줬는데 그런 것들이 다 좋았어요. 제가 중학교 때, 몇 명의 친구들과 토요일마다 AFKN에서 <아메리칸 탑40>를 듣고 녹음해서 서로 주고받고 했었는데 그 친구들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야, 비틀즈(The Beatles)가 베이시티 롤러스보다 훨씬 좋아, 한 번 들어보자’고 하면서 집에 가서 들려주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저는 친구들의 영향을 좀 많이 받은 편이에요. 고등학교 때, 제가 영국의 대중적인 팝, 록음악에 한창 빠져있었을 때, 어떤 친구는 아트록(Art Rock)이라든지, 그런 것을 막 들으면서 그런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고요.
 
▷ 작곡은 어떻게 하십니까? 곡을 먼저 쓰십니까, 시를 먼저 쓰십니까? 악상이 먼저 떠오릅니까? 건반에서 작업을 하십니까? 기타로 작업을 하십니까?
 
▶ 머릿속에 너무 많은 음악이 있어서 좀 복잡한 편이에요. 제가 말이 어눌하게 나오는 것도 제 말과 말 사이에 계속 음악이 들려서 그 음악을 듣느라고 말을 느리게 하는 정도인데 그러다 보니까 그냥 음악이 나와요. 그런데 제가 이론 공부를 못했을 때는 기록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런데 악기를 배우고 이론을 배우고 난 다음에는 멜로디가 이렇게 나오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는 코드를 붙이는 방법, 그런 것을 알게 됐고, 기타적인 코드 진행이 있고 키보드적인, 피아노적인 코드 진행이 있는데 요즘은 그게 다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각각 거기에 맞게 하죠.
 
그런데 정말 제 기억에 제대로 나온 곡은 항상 멜로디와 가장 중요한 노랫말이 같이 나왔던 기억이에요. 예를 들자면, (직접 노래 흥얼거리며)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이 구절은 멜로디와 노랫말이 동시에 나왔어요. 또는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이 구절도 그 멜로디와 가사가 동시에 나왔어요. 그러고 나면 그걸 모티브로 이제 생각을 발전시켜서 그 앞뒤에 이 노랫말이 나오게 된 이야기를 찾아내는 거죠.
 
 
 
[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③에 계속      

▶ [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① : 데뷔 30주년…암 투병 중인 전태관과 기념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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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③ : '형의 기타'와 '어머니의 기타'
▶ [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④ : 소릿골에 새겨진 발자취 (1집~4집)
▶ [人터뷰+]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⑤ : 은반에 새겨진 발자취 (5집~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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