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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나이 60세, 매일 새벽에 글을 쓴다

공부하는 김 기자 - ②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공부 프레임'이 주목하는 최근 한국 사회의 책 읽기, 글 쓰기 열풍을 그 뿌리부터 열매까지 모두 꿰뚫고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공부하는 김 기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민간독서운동에 헌신해 온 출판계의 터줏대감,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을 만났다. 그는 독서뿐 아니라 최근의 글쓰기 열풍과도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 그가 2005년에 낸 <글쓰기의 힘>은 우리 사회에서 글쓰기 관련 책이 쏟아지는 물길을 열어놓았다고 평가된다. 한 소장은 또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다소 부담스런(?) 제목의 책에서 글쓰기를 통해 삶을 바꾼 20여명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 소장은 혼자 공부하는 '혼공' 보다는 함께 공부하기의 장점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는 학습공동체 '숭례문학당'이 독서와 글쓰기 관련 책들을 펴내는 데도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출판계 경력 36년의 한 소장은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 역대급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출판기획자이며 20여권의 책을 쓴 저자, 평론가다.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글을 쓰고 강연에도 분주한 한 소장은 일주일에 하루는 일정을 비워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그 충전의 틈을 내어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처음에는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런데 책과 교육, 공부 얘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가 최근에 발견한 주물공장 노동자 작가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인간> 시리즈의 성공은 한국 문학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베테랑 출판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듯 했다. 이 사건은 문학뿐 아니라 '공부'라는 관점에서도 흥미롭다.    

●  노동자 소설가가 일으킨 '사건'  

김 기자) 새해 벽두부터 출판계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네요. 소설 공부를 한 적이 전혀 없는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을 3권 시리즈로 출판하게 된 과정이 궁금한데요?  
 
한 소장) 김동식씨의 소설을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발견하고 제게 소개한 사람은 김민섭 평론가입니다. 그때 처음 읽어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기존 문학의 흐름과 관계없이, 새로운 세상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독특한 소설로 보였습니다. 이 소설은 그림이 없는 만화 같기도 합니다. 설명도 묘사도 없이 그냥 한 줄씩 툭툭 던지는 거죠. 근대 문학의 가치와 형식을 모두 무시하는 글인데, 읽고 나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반전이 있습니다. 글을 혼자서 쓰지 않고 인터랙티브(Interactive)하게 썼다는 점에서도 새롭습니다. 작가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떠오른 스토리를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에서 많이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쓴 글이 3백편이 넘습니다.  

 김민섭 평론가가 "20편쯤 추려서 책 한 권 내면 어떠냐"고 하길래 제가 "내는 김에 3권으로 내자"고 했습니다. 모험을 한 셈인데, 책이 서점에 진열도 되기 전에 주문이 밀려드는 거예요. '오늘의 유머' 독자들이 인증 릴레이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세상이 바뀐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지요. 등단제도를 통과해야 작가로 인정받고 책을 내는 시대와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 거죠. 
책 '회색인간' 시리즈
김 기자) 노동자 작가의 책을 내면서 시대의 변화를 새삼 확인한 셈이네요?
 
한 소장) 그렇지요. 거대 서사가 사라진 시대에 새로운 이야기의 싹이 터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기성 문단이 어떻게 반응할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김동식 작가는 노동이 힘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던 것 같아요. 자기는 중학교를 중퇴했는데 고졸이라고 소개되어서 "거짓말 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고 하더군요. 검정고시를 합격했으니 고졸학력이 맞는데 말이죠.

이 겸손한 친구를 어떻게 작가로 키울지를 고민하면서 함께 1박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다음날 오늘의 유머 독자와 사인회가 있었는데, 사회자가 "여행이 어땠나?"고 물어보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자기는 여행이라는 걸 평생 처음 해봤다는 거죠. 이런 사람의 글을 10대부터 70대까지 함께 좋아하고, 여성 독자들이 선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초연결사회가 되니까 텍스트도 달라지는구나.
 
● 글쓰기의 르네상스  

김 기자) 오래전부터 민간독서운동을 하면서 책 읽기, 글쓰기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내셨는데, 요즘 우리 사회 글쓰기 열풍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 소장) 제가 10여년전에 쓴 <글쓰기의 힘>에서 "살아남고 행복해지기 위해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요, 지금은 글쓰기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마다 소셜 미디어에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죠. 글쓰기 책도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고요. 그런데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독서에 대한 책도 인기를 끌고 있죠. 저는 함께 읽고 함께 글 쓰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봤죠.
 
김 기자) 숭례문학당에서 엮은 책을 여러 권 출판하셨더군요. 학습공동체 모임 운영에도 관여하시는 겁니까?
 
한 소장) 아뇨. 저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정도죠. 연대하는 입장이라고 할까요? 숭례문학당에 나오는 사람은 다양합니다. 교수, 교사, 건축가도 있죠. 그런데 혼자서 공부를 하자니 뭔가 2%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모임에 나온 겁니다. 교사들의 경우 교과서만 가르쳐봤지 제대로 토론을 해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모임에 나와서 토론하면서 자기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죠. 토론뿐 아니라 함께 읽기, 쓰기, 걷기 같은 다양한 모임이 있습니다. 그러다 공부의 결과물이 나오면 제가 책을 만들어 줬습니다. <이젠, 함께 읽기다> <이젠, 함께 쓰기다> 같은 책들이 10여권 나왔어요. 어떤 책은 1만 부 이상 팔렸지만 어떤 책은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있죠. 여하튼 모임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3백명 정도 모였다가 지금은 3천명이 됐습니다. 앞으로 3만명이 될 수도 있겠죠. 사실 독서 모임은 찾아보면 많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독서동아리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 합니다.
 
● 독서와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찾다  

김 기자)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은퇴 이후에 뭐 할까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한 소장께서는 독서와 글쓰기를 추천하시는 것 같아요?
 
한 소장) 퇴직을 한 뒤에 독서동아리 모임에 나와서 공부에 대한 열정에 새로 눈을 뜨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성공적으로 새로운 삶을 찾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도 했죠. 세 분의 퇴직 경위는 다 달라요. IMF 외환위기 직후에 '조퇴'(조기퇴직)하신 분, 회사가 망해서 '졸퇴' (졸지에 퇴직) 하신 분, 그리고 60세에 '정퇴' (정년퇴직) 하신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퇴직 후의 불안과 고민을 '함께 하는 공부'로 극복하고 삶이 바뀌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부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 무척 어색했다고 해요. 지금은 글쓰기와 강연으로 저보다 더 바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죠.  
 
책 '이젠 함께 쓰기다'
김 기자) 새해를 맞아서 독서나 공부를 결심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조언을 해주신다면?
 
한 소장) 저는 일단 젊은 사람들에게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라고 권하고 싶어요. 거기에 있는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읽으면 됩니다.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고, 재미없으면 놓으면 되겠죠. 끌리는 책을 읽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될 겁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특정한 책을 추천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나이 든 분들도 독서에 관심이 많으신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좋겠죠. 한걸음 더 나아가, 나만의 영역을 새로 개척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분야 책 1백권을 읽으면 전문가가 됩니다. 그런데 혼자 전문가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관심분야가 비슷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만, 타인과 연결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58년 개띠의 공부… 하루 2~3시간만 잡니다

김 기자) 늘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어놓고 끊임없이 배우시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공부하세요?
 
한 소장) 요즘은 잠을 하루 2~3시간만 자고 있습니다. 새벽 2시쯤 일어나서 6시까지 책 읽고 글 쓰고 블로그 관리를 합니다. 그리고 아침상을 차려서 어머니와 식사를 하고 사무실에 나옵니다.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은 새벽에 다 하고 나오는 셈이죠. 오늘 같이 약속을 비워둔 날은 나와서 졸기도 하죠.
 
낮에는 강연이나 토론회에 나가는 일이 많습니다.  요즘 한 달에 20여차례 강연을 하고 있어요. 이동 중에 책을 읽습니다. 지방에서 강연을 하게 되면 기차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죠. 강연에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다 보면 저도 배우는 게 많습니다. 가르치면서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셈이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 기자) 1958년생으로 올해 만 예순이신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세요?
 
한 소장) 제 2,30대 청춘은 '창작과 비평'에 바쳤고, 4,50대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제 60대에는 출판업의 사업적인 성공모델을 보여주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10년 이상 못하니까 당신들이 빨리 접수하라고. 은퇴하기 전에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 후배들에게 물적 성장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래야 마음 편안하게 은퇴할 수 있겠죠.

● 공부, 따로 또 같이  

인터뷰를 마치고 서교동 골목길을 걸어 나왔다. 작은 동네의 변화에서도 세상의 빠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공부의 의미와 방법도 변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모바일과 텍스트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에 주목하는 한기호 소장은 함께 책 읽고 글 쓰기를 권한다. 그의 얘기는 오랜 경험과 축적된 데이터가 뒷받침하는 설득력을 가진다. 숭례문학당 같이 큰 곳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주변에서 독서 동아리를 찾아보면 유익할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급할 필요는 없다. 한 소장이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며 책 쓰기를 권하는 데에는 책의 세계에서 살아온 출판인의 입장이 작용하고 있을 거다. 그 경험을 참고하되, 스스로 자기에 맞는 길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함께 읽고 쓰는 방식의 장점을 인정하더라도, 혼자 하는 공부가 더 맞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의 사례는 '공부 프레임'의 포용 범위를 더 넓히라고 촉구한다. 다음에는 '혼공'의 고수를 만나보려고 한다.

* 이 글의 참고 도서
-김동식 소설집 :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아빠, 행복해?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글쓰기의 힘
-이젠, 함께 읽기다.
-이젠, 함께 쓰기다
-글쓰기로 나를 찾다.


[공부하는 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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