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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1㎢ 안에 감시자만 300명…커져가는 대륙의 인간감시망

[월드리포트] 1㎢ 안에 감시자만 300명…커져가는 대륙의 인간감시망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에 사는 71살 왕 모 여인은 동네에 새로 이사 온 한 젊은이가 수상했습니다. 매일 출근도 안 하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동네 젊은이들과 수다를 떨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한 건 그 젊은이가 매일 배달음식을 시키는데, 주문량이 엄청나다는 점입니다. 왕 여인은 이 젊은이가 매번 적어도 7,8인분을 시킨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순간 이상하다는 촉을 느낀 왕 여인은 경찰에 이 젊은이를 신고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젊은이는 성매매를 알선하는 사람이었고, 집 안엔 성매매 여성들이 6명이나 살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현장을 덮쳐 15명을 붙잡아 3명을 구속했고 12명에게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왕 여인은 포상을 받았습니다.

베이징시 차오양구의 한 상가에서 쇼핑을 하던 27살 이 모씨도 길거리에서 수상한 남자 3명을 목격했습니다. 이들이 여성 한 명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즉각 이들 3명의 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즉시 출동한 경찰에 붙잡힌 이들은 3인조 소매치기였습니다. 이들의 몸에선 훔친 휴대폰 7대가 발견됐습니다.

한 눈에 범죄인을 구별해내는 명탐정 셜록 홈즈급 촉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모두 차오양췬쫑(朝陽群衆) 단원입니다. 차오양췬쫑은 베이징시 차오양구 공안당국이 운영하는 일종의 범죄인 감시단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범죄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보면 즉각 경찰에 신고하는 단체인 겁니다. 앞서 언급한 성매매나 소매치기 뿐 아니라 전동자동차 절도, 마약사범 등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들은 바로 경찰에 신고합니다. 이 신고로 인해 범죄자가 발각되면 1건당 300위안(약 5만원)에서 500위안(약 8만4천원) 정도 포상도 받습니다.

차오양췬쫑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입과 활동이 가능합니다. 참여 정도나 공산당원 여부에 따라 보통 5가지 정도의 유형으로 활동을 한다는군요. 어떤 사람은 아예 제복을 입고 활동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팔에 완장을 두르고 활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차오양췬쫑인지 전혀 티를 내지 않고 활동합니다. 때문에 특별히 티 내는 사람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누가 차오양췬쫑인지 모르는 경우가 보통이겠죠.

그런데 최근 차오양구 공안당국이 베일에 가려졌던 차오양췬쫑의 규모를 밝혔습니다. 공안당국에 공식 등록한 차오양췬쫑의 숫자는 2017년 말 기준으로 14만명이 넘는다는군요. 얼핏 느낌으로도 엄청 많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이걸 차오양구 전체 면적과 인구로 대비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면적이 470.8㎢인 차오양구엔 350만명이 살고 있으니까, 1㎢ 당 300명의 감시원이 활동하는 거고, 차오양구 거주민 25명 중 1명이 차오양췬쫑으로 활약하고 있는 셈입니다. 차오양구 공안당국은 지난해 차오양췬쫑으로 활약하는 사람들로부터 2만건이 넘는 정보를 제공받았고, 이 중 8,300건의 범죄 정보를 통해 370건을 사건화했으며, 25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범죄 단속 결과에 고무된 공안당국은 차오양췬쫑 전용 모바일앱을 개발했습니다. 보다 쉽게 신고할 수 있게 한 거죠. 같은 말이지만 공안당국으로선 더 많은 범죄 제보를 받겠다는 의도고요. 효과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차오양췬쫑 가운데 경찰과 비교적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이 7만명에 육박하고, 신고 건수도 한 달에 2만 건으로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1년에 2만건인 신고 건수과 단순 비교해보면 12배나 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쯤되니 인터넷상에서는 차오양췬쫑이 CIA(미국),KGB(러시아),모사드(이스라엘), MI6(영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5대 정보기관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습니다.

베이징 공안당국은 차오양췬쫑으로 활약하는 시민들의 이런 투철한 신고 정신에 고무돼 있는 듯합니다. 베이징시 차오양구 이외의 다른 구에서도, 예를 들면 '시청따마', '하이딩왕요우', '펑타이췐다오뚜웨이' 등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범죄 신고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만큼 범죄 검거율이 높아지니, 공안당국으로선 이런 분위기를 계속 활성화 시키고 싶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범죄 검거 성과만 놓고 본다면, 이런 감시단을 계속 확대 운영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우리나라도 범죄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하지만 범죄 신고에 이어지는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개인의 인권침해는 간과해선 안 될 문제입니다. 포상을 받겠다는 목적성 심리를 깔고 있는 시민이 단순한 느낌이나 촉만으로 범죄 신고를 한 뒤 공권력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는 충분히 개연성이 큽니다. 특히 이런 인권 침해 개연성은 한 달에 2만건에 달하는 폭발적인 범죄 신고 증가량에 비례한다고 봐야겠죠. 차오양췬쫑이 활동해 온 지금까지 앞서 소개한 왕 여인이나 이 씨의 범죄 신고처럼 성공적인 범죄 소탕으로 이어진 사례만 있었을까요? 결코 그럴 리가 없겠죠.
미 연방통신위 인터넷 망중립 정책 폐기
요즘 베이징시뿐 아니라 중국의 많은 지역에선 인터넷 기술의 초광속 발달로 인한 감시 통제사회에 대한 경고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도심 속 수많은 감시카메라는 물론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인식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산당이 모든 독점하고 있는 중국 특색의 사회 구조는 현대판 빅브라더 사회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킵니다. 가뜩이나 중국 인민 입장에선 어디 숨쉴 곳조차 찾기 힘든데, 한 집 걸러 한 사람씩 인간 감시단까지 활동하는 상황인 셈이죠. 공안당국은 인간 감시단의 규모를 훨씬 더 늘리겠다는 거고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개인의 인권 침해를 예방하거나 구제할 대책은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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