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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은행 채용비리' 밀양 화재 와중에 슬쩍 배포한 금감원

2달간 공들인 조사 결과…최흥식 원장은 왜 주목받지 못하는 금요일 오후를 택했나

[취재파일] '은행 채용비리' 밀양 화재 와중에 슬쩍 배포한 금감원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전 언론사가 특보체제를 가동하던 26일 금요일 오후 4시를 넘겨 금융감독원이 예정에도 없던 5페이지 짜리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제목은 "은행권 채용 비리 검사 잠정 결과 및 향후 계획"

금감원이 11개 국내 은행의 채용 비리 실태를 두 달 간 조사해 내놓은 자료였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취업준비생들을 포함한 전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A은행은 전 사외이사 자녀가 서류 전형에서 840등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최종합격시켰다. 한 최고경영진의 친인척은 서류, 실무 면접 등에서 최하위권이었으나 임직원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받아 역시 좁은 취업문을 통과했다.

B은행은 필기, 1차 면접 최하위였던 사외이사 지인을 전형 공고에도 없던 '글로벌 우대' 사유로 통과 시킨 후 임원 면접에서도 후한 점수를 줘 합격시켰다.

C은행은 소위 명문대 출신 지원자 7명을 합격시키기 위해 불합격 대상인데도 임의로 점수를 올려 합격시켰다. 대신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 7명은 반대로 점수를 깎아 탈락시켰다.

D은행은 인사 담당 임원이 자녀의 임원 면접에 면접위원으로 참석해 합격시켰고, 다른 은행은 계열사 사장, 현직 지점장 등 직원 자녀를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줘 합격시켰다. 아예 2개 은행은 내규로 임직원 자녀에게 필기시험 15% 가산점을 주도록 명시했다. 15% 가산점은 사실상 합격을 보장해주는 특혜다. 금감원은 이런 사례 22건을 확인해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사회적 공분을 자아낼 이런 자료를 금감원은 공교롭게(?) 밀양 화재 참사가 발생한 오늘 오후에 배포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기사를 볼 수 있고, 24시간 뉴스가 소비되는 시대이니 금요일 오후에 이런 사실을 공개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언론계에서 금요일은 특수한 날이란 점을 감안하면 금감원의 자료 배포 시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당장 토요일에는 조간신문들의 지면이 대폭 줄어든다. 게다가 요즘은 주말 섹션이 활성화돼 정부부처 발표 기사가 들어갈 공간은 그리 크지 않다. 또 인터넷으로 기사가 나간다 해도 열독률은 아무래도 평일보다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료 배포 시간도 신문사들의 기사 마감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26일은 경남 밀양의 병원 화재, 정현의 호주 오픈 4강전 등에 전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자료가 가급적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입장이라면, 최악의 시점이라고 할만했다.

금감원 공보국장에게 물었다.

- 금요일 오후에 불쑥 자료를 배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해당 부서가 배포를 요청해서 기자단 간사단과 논의해 배포한 것일 뿐이다. 해당 부서에서 어떤 의도가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 더 많은 매체에 충실히 보도되게 함으로써 더 많은 국민이 알게 하는 공보의 원칙에는 어긋나는 것 아닌가?
= 그런 얘기를 했는데도 해당 부서에서 배포를 해달라고 해 어쩔 수 없었다

- 공보국이 자료 배포 연기를 요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우리는 이행 부서가 아니어서 막을 수가 없다

- 최흥식 원장의 결정으로 이 시점에 자료가 나온 것인가?
= 틀린 것은 아니다. 모든 자료가 (원장의) 결재를 거쳐서 나간다.

당국의 '금요일 사랑'은 검찰에서도 잦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부실 수사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 같은 사건 발표나 관계자 소환은 유독 금요일에 많이 이뤄졌다 . 2016년 진경준 검사장 수사 결과 발표,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녀 감찰 발표, 2013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 수사 결과 발표가 모두 금요일이었다. 금감원이 이런 검찰의 관행을 배우기라도 한 것일까.

일자리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관심사다. 문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장관들을 질책했다. 아무리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애를 쓴다고 한들 이런 채용비리가 만연하면 일자리를 10만 개 더 만들어 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금감원의 이번 조사 결과 발표는 그간 기재부를 중심으로 파헤친 공공기관 채용비리와 달리 '민간' 분야에서의 채용비리가 얼마나 곪아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2개월간 금감원 실무 직원들이 힘 들여 조사해 밝혀낸 그런 의미 있는 자료를 왜 금요일 오후에 배포해 빛을 바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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