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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고 위기' 경비원들은 '누구의 책임'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취재파일] '해고 위기' 경비원들은 '누구의 책임'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전 날 쌓인 눈까지 모두 얼려버린 날, 서울 지역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취재를 했습니다. 경비원들은 하나같이 눈을 쓸고 있었습니다. 한 60대 경비원은 리어카가 없어서 삽으로 눈을 떠 포대에 담고, 잔디밭에 뿌리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했고, 또 다른 경비원은 아이들이 넘어지기 쉽다면 담당 구역이 아닌 길가까지 나와 얼음을 깼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치우는 작업은 경비원들의 업무가 아닙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감시 업무 외에 조경, 청소, 분리수거, 택배업무, 주차관리 등의 모든 일은 경비원의 동의를 구하고 추가 수당을 줘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비원들이 최근 대거 해고를 당하고 있습니다.
구 현대 아파트, 경비원 해고, 주민의 호소
특히 압구정 구현대 아파트 경비원들은 새해를 맞이하기 단 며칠 전 해고 통지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용역 전환을 하기 위한 전 단계인데, 용역 회사를 통해 일을 하게 되면 정년을 보장받기 힘들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1년마다 다른 아파트로 옮겨가거나,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는 거죠.

경비원 해고의 발단은 무급 휴식시간 때문이었습니다.

▶ [SBS 기사 링크] 24시간 주차관리…아파트 경비원들 "추가 임금 달라"

지난해 여름 경비원들은 "그동안 무급 휴식 시간에도 일했다"면서 수당을 요구하는 진정을 노동청에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고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비원들이 "진정 접수를 받은 노동청에서 현장에 거의 나오지 않고, 몇 번 대면조사를 한 게 끝"이라며 푸념할 정도였습니다.

그 사이 경비원들과 입주민들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 갔습니다. 경비원들이 주차와 택배 업무를 거부하는 파업까지 하면서, 입주민들은 불쾌함에 이어 불편함까지 느꼈을 겁니다. 여기에 정부에서 2018년부터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다고 예고하니, 오를 관리비까지 걱정할 만합니다. 입주민들은 처음엔 임금을 줄이기 위해서 무급 휴식시간 증가와 퇴직금 매년 정산을 요구하다가 얼마 뒤 아예 '용역 전환'을 선언해 버렸습니다. 경비원 문제에 직접적으로 얽히느니 용역회사를 선정해 귀찮고 골치 아픈 일에 더 이상 엮이기 싫었겠죠.

이 문제들은 모두 노동청에 올라가 있습니다. 노동청에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 중이라고 합니다. 최저임금 문제와 엮여 뜨거운 이슈가 되니, 강남지청에선 며칠 사이 여러 번 아파트 단지에 찾아와 현장 조사를 했다고 하네요.
아파트 경비원
여기에 더불어 고용노동부에선 '최저임금 인상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줄기차게 내놓고 있습니다. 경비원 해고가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듯합니다. 물론 경비원 해고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최저임금을 포함한,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국가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에 재를 뿌린 하나의 사례로 치부돼선 안됩니다. 또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기심'으로 보고 말 정도로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경비원들은 '누구의 책임'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작년처럼만 일할 수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길 원할 뿐입니다. 또 앞으로도 비슷한 어려움이 없길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인근에 위치한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에서는 2014년 입주민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비원이 분신 자살을 했고, 이후 경비원들을 전원 해고하고 용역으로 전환하려고 하자 경비원들이 굴뚝 농성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도 결국 용역 전환을 막지 못했습니다. 현재 신현대 아파트 경비원 모두는 용역회사를 통해 고용된 상탭니다.

누군가는 욕망하고 선망하는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벌어진 비극들은 현재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이상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제 누군가는 답해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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