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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⑤ : 심의 흔적이 안 남은 예산 117개 "어떻게 심의된 겁니까?"

예산 편성과 집행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예산에서 '투명성'이 원칙으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재원이 국민 세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투명성이 전제돼야 예산의 효율적 배분, 즉 국가 재정정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경험에서다. 국가의 실패한 재정관리로 경제위기는 물론 IMF 사태까지 경험한 적 있는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백재현 소위원장: 소소위 구성하는 건 여러분 동의하신 거지요?
'소소위'를 3당 간사 간에 구성해서 보류 사업과 감액 사업을 진행하겠다, 이 말씀 드립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1차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2017년 11월25일) 회의록 中>

 

어김없이 '소(小)소위'가 등장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소위원회의 소위원회라는 이른바 '소소위'. 법적 근거도 없고, 소소위는 회의록도 남지 않는다. 밀실심사, 졸속심사, 깜깜이 심사, 심지어 '예산 적폐'라는 지적까지 나오지만, 국회는 관행이라고 말한다.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 예산회의록 전수분석①/②/③/④국회의원의 예산 도깨비 방망이> 시리즈의 마지막 5편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흔적'을 찾기 힘든 예산을 추적했다. A4 용지 4,703장 분량의 국회 상임위, 예결특위, 예결소위 회의록을 전수 분석해 회의록에서 편성 근거를 파악하기 어려운 사업, 또 소소위로 넘어간 예산 등을 집중적으로 파악했다.
 

[마부작침] 예산안
※ 국회 문제예산 회의록 보기 http://mabu.newscloud.sbs.co.kr/20180117news/

●회의록에도, 심사보고서에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국회발 신규사업 51개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각 사업 성격에 따라 국회 상임위원회를 거친 뒤, 예결특위 심의와 본회의 투표를 거쳐 확정된다. 한정된 자원의 최적 배분을 위해 단계를 두고 국회는 예산을 심사한다. 이 과정에서 예산 증감액 및 신설 이유를 투명하게 하고자 회의장에서 논의된 국회의원과 부처 관계자의 발언을 회의록에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돼야할 예산의 편성 근거와 출처를 파악하기 힘든 사업은 수두룩했다. 회의록엔 흔적이 없는데 신규 편성된 예산들이다. 대표적으로 '국회발 신규사업'에서 이런 예산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당초 정부안엔 없는데, 국회 논의 단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예산이다. 그런데도, 공개 회의장에선 논의된 적도 없는 예산이 많다는 것이다.
 
<②국회발(發) 신규사업 74%는 '지역구 사업'> 기사에서 보도했듯 국회발 신규사업은 모두 447개, 1조 2,580억 원의 규모다. <마부작침> 추적 결과, 447개 사업 가운데 국회 상임위 및 예결특위 회의록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사업은 148개나 됐다. 다만, 이 중 회의록엔 없었지만, 회의장 밖에서 논의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은 있었다. 즉, 공개 회의장에선 논의되지 않았지만, 각 상임위에서 예산 심사 후 의결해 발행하는 '예비심사보고서'에 언급된 사업은 66개로 분석됐다.

148개 사업 중 66개를 제외한 82개 사업은 회의록은 물론, 예비심사보고서에서도 어떻게 논의된 것인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일부 부처 예산은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을 못해 회의록은 존재하지만 '예비심사보고서'가 없는 경우도 있다. 교육부, 문체부, 문화재청,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다섯 부처들로, 이들 부처 소관 사업(31개)을 제외하면 51개 사업으로 분석됐다.
 
바꿔 말해 51개 국회발 신규 사업은 회의장에서는 물론, 예비심사보고서에도 언급되진 않았지만, 최종 예산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는 예산이다.  국회 관계자는 "예산 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회의록과 예비심사보고서에 없더라도 국회의원과 부처 사이 주고받은 '서면'으로 결정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의원과 소관 부처 사이 주고받은 '서면 및 답변'이 전부 공개되지 않았고, 서면을 주고받았다고 하더라도, 신규 사업을 편성하면서 회의장에서 공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면 및 답변'은 파악 기준에서 제외했다.
 
●흔적 찾기 힘든 51개 중 52.9%가 국토부 소관... 92.2%가 지역구 사업
 
<예산회의록 전수분석①/②/③/④> 기사에서 보도했듯 회의록에 언급됐더라도 졸속 처리된 예산은 많다. 하지만, 51개 사업은 이런 흔적조차 찾기 힘든 사업들로, ‘밀실 깜깜이 심사’로 지적 받는 ‘소소위’에서 결정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업들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업은 왜 공개적으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을까. 51개 사업을 소관 부처로 분류하면, 도로 항만 건설 등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 소관이 가장 많았다. 모두 27개로(52.9%)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환경부 소관이 9개(17.6%), 기획재정부 소관이 8개(15.7%)다. 3개 부처 소관 사업이 전체(51개) 중 86.2%에 해당할 만큼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부작침]예산

이유는 간단했다. 대부분이 ○○지역 도로 건설, ○○지역 하수관로 정비, ○○지역 관사 신설 사업들로, 지역과 밀접한 사업을 주관하는 부처에 몰려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51개 사업의 성격에도 잘 드러났다. 51개 사업 중 '기술금융전문교육 프로그램'과 '세계 DMZ포럼개최' 등 4개 사업을 제외한 47개(92.2%) 사업에 '지역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편성 근거와 이유 등 흔적이 남지 않는 사업 대부분이 지역구 사업이라는 뜻이다.

●상임위에서 보류, 증액, 감액했지만...결과는 '반대'? 그런데, 흔적은 없다
 
51개 사업 외에도, 증감액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업들도 취재 결과 드러났다. 국회발 신규사업 뿐만 아니라 당초 정부안에 있던 사업도 해당한다.
[마부작침]예산

대구광역시 하수관로 정비 사업 예산은 소관 상임위에서 '보류'됐지만, 최종 예산에 3억 원이 포함됐다.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소위원장)의 보류 발언 이후, 환노위에선 더 이상의 논의는 없었다. 환노위 예비심사보고서에도, 예결특위 회의록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법적 문제로 부처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던 예산이 누구의 제안으로 어떻게 왜 뒤집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근거를 남기지 않는 소소위에서 논의된 걸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부작침]예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사업'의 경우엔 행안부의 요청으로 증액하기로 결정된 사업이었다. 당초 정부안에 편성됐던 예산 10억 원으로 사업 시행이 어려워 상임위 논의를 거쳐 3억 원을 증액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최종 예산엔 반영되지 않았고, 예결특위에선 논의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상임위에서 증액, 감액, 보류하기로 결정한 뒤, 예결특위에서 흔적 없이 결론이 달라진 사업은 모두 18개로 분석됐다. '소소위'에서 상임위 결론을 바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SBS<마부작침>은 이런 식으로 회의록상 근거를 찾을 수 없는데 결론이 바뀐 예산을 광범위하게 추적했다.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한 예산심사보고서 결과와 달라졌지만, 예결특위에서 논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예산 13개, 예결특위(소위 포함)에서 언급된 예산과 결론(증액 또는 감액)이 달라진 예산 3개, 예결특위(소위 포함)에서 보류된 뒤, 추가 논의 없이 편성된 예산 21개를 파악했다. 이 외에도 상임위에선 일반 예산(특별회계)으로 편성됐지만, 최종적으론 '기금'으로 바뀌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예산 3개도 발견했다. 일반 예산일 경우 예산 목적 외 사용이 금지되는 반면, 기금의 경우 상대적으로 자율적 사용이 가능하다.

[마부작침]예산


이런 식으로 회의록상 근거를 알 수 없이 '상임위 및 예결특위 결론(보류,증감액)'이 바뀐 건 58개다. 국회발 신규사업 중 흔적이 없는 51개 사업을 포함하면 모두 109개, 71조 8,783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공개적으로 소소위로 넘기자고 밝힌 8개 사업을 합치면 117개, 85조 6,985억 원 규모다. 밀실 심사로 이뤄지는 '소소위'에서 논의된 뒤 확정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더욱이 아직 추적 못한 사업이 더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식으로 '깜깜이 처리'된 예산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마부작침]예산




※  깜깜이 처리된 신규 사업 전체보기 ☞ http://bit.ly/2EHQOJg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총체적 부실...악순환의 연속
 
회의장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예산, 상임위의 결론이 뒤집힌 이유를 알 수 없는 예산 등 '불투명한 사업'은 예산 악순환의 시작이다. '소소위' 역시 이런 불투명한 예산 처리의 큰 축이다.
 
국회 내에선 소소위를 두고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타협과 협상 여지를 찾기 힘든 국회의 현실과 짧은 심의 기간을 감안했을 때 소수의 의원들이 모여 담판을 짓지 않는 이상 예산안 처리가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예결특위 회의록에 나오는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의 "현실적으로 방법이 많지 않다"는 발언,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의 "예결 심의의 오랜 관행이 있으니까, 관행을 존중하자"는 발언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마부작침]예산

하지만, '관행'이라는 말로 불투명한 예산 처리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하다. 단적으로 '소소위'는 국회법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위원회다. 국회법 57조상 위원회가 둘 수 있는 건 소위원회일 뿐, '소위의 또 다른 소위', 즉 소소위에 근거는 법률상 찾을 수 없다. 특히 교섭단체 예결특위 간사(윤후덕 더불어민주당, 김도읍 자유한국당,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 3명 등 극소수 의원이 최종 국가 예산 428조를 결정한다는 건 상식과 원칙에도 맞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록이 남지 않는 소소위에서 민원성 예산 편성, 사업성 낮은 예산 편성, 근거 없는 증감액이 이뤄져도 견제는커녕, 누가 어떤 이유로 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부작침]예산

뿐만 아니라, 예결특위(소소위 포함)에선 상임위에서 결정된 예산을 뒤바꾸면서도, 법과 절차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회법 84조엔 '예결특위가 상임위에서 삭감한 예산을 증액 또는 새로운 사업을 설치할 경우엔 상임위 동의를 얻어야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예결특위(소소위 포함)에서 결론을 바꾼 사업 중 상임위의 동의를 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불투명한 예산 심의를 막지 않으면, 다음 해 예산에서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는 예산 심의 외에도 '결산 권한'을 가지고 있다. 헌법 99조에 따라 '감사원은 세입·세출의 결산을 매년 검사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또 국회법 84조 2항은 '국회는 결산 과정에서 위법 또는 부당한 사항이 발견되면 관련 부처에 변상과 징계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회의록 전수분석①/②/③/④> 기사에서 연속 보도했듯 법적 근거가 없는 예산, 불용 처리를 알면서 편성한 예산, 그리고 논의의 흔적조차 없는 예산, 즉 이런 불투명한 예산 편성이 국회에서 이뤄지면서 결산 권한은 무용지물이 됐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행정부 산하 감사원을 국회 산하로 이관해 결산 기능을 강화하면 낭비 예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국회 예산 심의가 불투명한 이상, 이관을 해도 아무런 실익도 소용도 없다는 지적이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회 예산 심의에 총체적 부실이 반복되다 보니, 결산에서도 이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예산 지출 후 성과가 낮거나 낭비가 됐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더라도, 책임 당사자가 국회의원이거나, 회의록상 흔적이 없어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배 교수는 "예산 편성 심의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안자를 명시하거나, 소소위를 포함해 전 과정을 공개해야 주먹구구식 예산 편성을 막을 수 있고, 차후에 결산을 할 때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분석가 (hyeminan@sbs.co.kr)
디자인/개발: 임송이
인턴: 김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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