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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해 앞두고 '귀산촌 아카데미'에 몰린 사람들

"'20년간 귀촌 80대에 다시 도심으로' 귀촌은 선택 아닌 필수"

      새해 앞두고 ‘귀산촌 아카데미’에 몰린 사람들…“20년간 귀촌, 80대에 다시 도심으로” 
귀산촌 아카데미
새해를 나흘 앞둔 12월 28일 저녁, 서울 여의도 귀산촌 아카데미를 찾았다. 도심에서 귀산 강좌를 들을 수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많은 사람이 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예상보다 더 붐볐다. 눈어림으로 140여명 정도, 큰 강의실이 꽉 찼다. 연말연시 바쁜 일정에도 왜 귀산 강좌를 들으려고 하는 지 몇 사람 얘기를 들어봤다.

- 57살 최 모씨 (현역 군인, 내년 전역)

“군인연금이 있지만, 전역 후 돈만 까먹으며 살 수는 없지 않는가? 노동을 통한 보람을 느끼고 쉽지만, 재취업한다고 해도 몇 년 가지 않을 것이다. 도심에서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투자를 많이 할 것도 아니고, 80세까지 보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고 있다. 귀농 강좌도 들어봤는데 아직은 길을 찾는 중이다. 은퇴 후 준비가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 40살 홍 모씨 (기업체 전기기술자, 부모님과 함께 참석)

“40살이라고 빠르지 않다. 30대에도 강좌에 참석한 사람을 봤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우,  50세에서 55세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나이 든 직원을 모두 정리한다. 주변 동료 가운데 40대에도 9급이나 무기계약직 공무원에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모두 느낀다.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쑥 가공업을 한다. 그래서 임업이 낯설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해답을 산림자원에서 찾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노후 준비는 언제해도 늦으면 늦었지 빠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40살 김 모씨 (대기업 재직, 부부가 함께 참석)

“대기업에 재직하고 있지만, 지금 회사 분위기로는 50살 정도면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 기관지가 안 좋기 때문에 귀산하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와이프도 지방 출신이어서 귀촌에 거부감이 없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가 생겨도 귀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올해 한국임업진흥원의 귀산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255명 가운데, 50대가 46%로 가장 많고 60대가 34%였지만, 3.40대도 13%가 넘었다.
 
귀산촌 아카데미
● “귀산의 장점은 ‘저비용 고효율’”

강의는 한국귀농귀촌진흥원 유상오원장이 맡았다. 왜 ‘귀촌’ 특히 ‘귀산’이 최근 주목 받는  이유부터  물었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TV프로그램 영향일까?

“귀농은 어느 정도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냐면 지난 2009년 정부의 귀농. 귀촌 종합대책 발표 이후 꾸준히 농촌 지가가 상승해 이제 싼 땅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됐습니다. 이에 비해 귀산은 저비용 고효율입니다. 산촌에선 에너지, 물, 식량에 드는 비용이 매우 적습니다.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임야도 농지보다 저렴합니다. 귀촌의 투자 포인트는 ‘얼마나 적게 투자하고도 생활이 가능한가?’입니다. 귀산은 이런 효율성면에서 귀농보다 메리트가 있습니다. 또, ‘힐링’이 됩니다. 사는 곳의 자연환경이 도심이나 농촌보다 낫습니다. 여기에다 산에 대한 동경도 있고, 대부분 등산을 좋아합니다.”

● “20년간 귀촌하고 80대에 다시 도심으로, 이젠 선택 아닌 필수”

유 원장 인터뷰 중, 특히 80대에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인생 3막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귀촌지’는 나중에 자녀 귀촌을 위해 남겨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50대나 60대에 귀촌하는 것은 나와 자녀, 국가에게 모두 도움이 됩니다. 귀산해서 소박하게 살며 작은 소득이라도 꾸준히 얻을 수 있으면 도심에 있던 자산을 축내지 않아도 됩니다. 개인적으론 건강에도 좋고, 국가적으론 인구 감소 시대에 국토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귀촌지의 경제 활동은 노동력이 떨어지는 80대가 되면 어렵습니다. 이때 다시 도심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농촌이나 산촌 생활은 자신의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자신이 일군 귀촌지는 처분할 수도 있고, 이제 은퇴 생활을 시작하는 자녀가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겁니다. 평균 수명이 80세까지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멀티 헤비타트 시대’ 즉 ‘다공간 거주시대’가 불가피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귀촌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 “실패하지 않으려면 ‘작사가’로 살아야”
귀산촌 아카데미
귀농 실패율은 정부 통계 10% 정도, 체감통계 25% 정도라고 한다. 귀산촌 실패의 통계는 아직 없지만, 귀산에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물었다.

“귀촌에 앞서 충분한 ‘선 교육’을 받을 것, 지역사회 적응에 노력할 것, 토지나 임야는 매입보다 임대할 것, 작고 소박하게 살 것 등입니다. 귀산교육은 한국임업진흥원이나 산림조합중앙회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 서울에 이어 내년엔 부산 대구 대전 등에도 도심에서 강좌가 개설됩니다. 살아보기 체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수업료를 적게 내려면 이런 ‘선 교육’이 필수입니다. 무엇보다 귀촌지에서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습니다. 적게 쓰는 쪽으로 ‘자린고비 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른바 ‘작.사.가’가 돼야합니다. 작게, 사소하게, 소박하게를 실천하며 월 1백만 원 정도로 생활비를 낮춰야 돈을 까먹지 않는 귀촌이 가능합니다.” 
귀산촌 아카데미
평균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자 재앙이다. 하지만, 재앙을 막기 위해 수억 원, 많게는 10억여 원의 돈이 필요하다는 금융회사의 금전적인 구호만 난무한다. 대신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절박함으로 무장하고, 미리 준비하기만 한다면 적어도 노후의 공포와 싸울 수는 있지 않을까? 서울 여의도 귀산촌 아카데미에는 연말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 도움말 주신 분 
 유상오 :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조경진 : 한국임업진흥원 농학박사
 이헌종 : 한국임업진흥원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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