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9의 불편한 진실 묻히나…비겁한 육군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7.12.27 11:50 수정 2017.12.27 14:4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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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6일) 육군이 지난 8월 발생한 K-9 자주포 사고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기계, 재료, 화재, 폭발 전문가 등 113명의 조사위원이 참여한 민관군 합동조사위원회를 편성했다고 육군은 설명했습니다. 합동조사위는 4개월 동안 87개 검증 과제를 도출했고, 23회 관련 실험을 하며 철저하게 조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육군은 합동조사위를 거창하게 소개했지만 조사위의 성과는 한마디로 "K-9 사고 원인을 모르겠다"입니다. 합동조사위는 어제 "격발 스위치가 스스로 작동했다" "격발 해머와 공이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뇌관이 이상 기폭했다"고 밝혔는데 각각의 이상(異常) 작동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8월 사고는 설계(국방과학연구소), 생산(한화지상방산), 운용(육군) 중 어느 측의 잘못도 아닌 수수께끼 같은 일이 됐습니다.

8월 K-9 폭발 사고는 이렇게 정리되고 있습니다. 사고의 실체를 더 철저히 밝힐 수 있었지만 육군은 멈춰 섰습니다. 육군은 책임만 면하면 된다는 듯 안도하는 것 같습니다. 사고의 무거운 원인은 감춰진 채 K-9은 머잖아 정상 가동됩니다.

K-9을 생산하는 한화지상방산 측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검증해야 할 여러 가지가 남았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그만 두자는 육군과 끝까지 가보자는 업체. 입장이 거꾸로 돼야 맞는데 기이합니다.

● 민관군 4개월 합동조사의 결론은 "모르겠다"

합동조사위는 "지난 8월 K-9 자주포 사고는 격발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일부 부품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위는 "폐쇄기가 내려오는 중 뇌관집과 격발 장치의 일부 부품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뇌관이 삽입 링 화구에 정상적으로 삽입되지 않아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폐쇄기 아래쪽으로 포신 내부에 장전돼 있던 장약의 연소 화염이 유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폐쇄기에서 쏟아져 나온 화염이 바닥에 놔뒀던 장약을 인화시켜 급속 연소되면서 승무원이 순직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부품별로는 공이 스프링과 뇌관 지지대, 뇌관집 등이 비정상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부품이 왜 비정상적으로 변형됐는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즉 사고 원인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장병들의 생명이 달린 사안인 만큼 원인이 나올 때까지 합동조사위를 연장 가동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육군은 서둘러 조사를 끝냈습니다.
K-9 시험평가 노르웨이● K-9 설계·생산 당사자 빠진 조사

어제(26일) 국방부 기자실에서 열린 합동조사위의 발표에는 육군 관계자와 민간 교수들이 참여했습니다. K-9을 설계한 국방과학연구소, K-9을 생산한 한화지상방산 관계자는 없었습니다. 육군은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지상방산도 조사에 적극 참여했다"고 주장하지만 육군만의 생각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지상방산 측은 "조사위가 질문하면 대답했고 실험 세팅 요구하면 해줬을 뿐"이라며 "본격적인 조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서로 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민관군 합동조사위라면 운용 당사자인 육군과 설계 당사자인 국방과학연구소, 생산 당사자인 한화지상방산이 각각 가설을 세우고 민간 교수들과 입증하는 과정을 통해 가장 유력한 가설을 도출하는 방식을 취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지상방산은 이번 조사에서 보조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한화지상방산과 국방과학연구소 측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입장이 됐어야 했는데 조사 결과를 청취하는 처지였습니다. 군 관계자는 "사고 조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설계와 생산 당사자를 배제했다"고 말했습니다.

한화지상방산 측은 어제 보도자료를 통해 재검증을 요구했습니다. K-9의 사고 당시 포구 초속 즉 포탄이 포신 밖으로 발사될 때의 속도는 정상인 820m/sec였습니다. 조사 결과처럼 폐쇄기가 열려 있었다면 압력이 새나가서 포탄의 속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포구 초속이 정상이었다는 점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조사위는 뇌관이 0.73mm 돌출됐다고 했는데 이랬을 경우 뇌관집 덮개의 조립 자체가 불가능해서 사격을 못한다는 것이 한화지상방산의 주장입니다. 조사위는 공이 스프링의 탄성이 저하됐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뇌관을 터뜨릴 힘을 발생시키지 못한다고 한화지상방산은 밝혔습니다.

한화지상방산 측의 말이 맞는지 틀린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육군이 사고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의문들도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임 소재가 갈리는 불편한 진실이 나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고 원인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사고 재발 가능성을 품고 있는 K-9을 장병들에게 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