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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② : 우리 겨레의 소리…국악의 세계화

[人터뷰+]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② : 우리 겨레의 소리…국악의 세계화
(작성중)[人터뷰+]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②: 우리 겨레의 소리.. 국악의 세계화
 '작은 거인' 김수철과의 연작 인터뷰 두 번째 순서에서는 우리 겨레의 소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집념과 노력 그리고 어린이 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인기 절정에서의 방향 전환: 우리 소리를 찾아서>

▷ (박진원 논설위원) 80년대 후반쯤인가요,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탑 스타가 갑자기 하루 아침에 그런 음악은 접고 일반 대중에겐 진입 벽이 느껴지는 색다른 음악을 내놓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겨레의 소리를 추구하겠다는 뜻은 느껴졌는데 저 같은 일반 청중이 따라 가긴 쉽지 않았습니다. 인기 절정의 상황에서 방향 전환을 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김수철) 사실 저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국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록 하면서 저녁에는 국악 공부하고 이렇게 했거든요. 그걸 쭉 하다 보니까 '국악, 우리 소리가 왜 대중화가 안됐지? 왜 생활화가 안됐지? 이렇게 훌륭한데'라는 생각에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들을수록 좋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교과서에 우리 음악이 지금은 좀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뭐 거의 없었고, 국악기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 해서 나라도 작곡을 하고 국악기를 좀 많이 들려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졌고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국악은 대중성이나 상업성이 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잘 나갈 때 돈을 좀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공부하고 국악 녹음하고 그때 아니면 못하니까 발표하기 시작한 거죠.
(작성중)[人터뷰+]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②: 우리 겨레의 소리.. 국악의 세계화

▷ 당시 국악 공부를 위해 국악 LP를 들으면 지루해서 졸기만 했다고 이번 책에서 털어놓으셨던 데요.

▶ 맞아요. 계속 졸았어요. 계속 졸았는데, 대학교 때 친구들끼리 <탈>이라는 소형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게 프랑스 청소년 영화제에 출품됐어요. 한국 젊은이들의 한 단면을 그린 거였어요. 그런데 본선에 진출한 거에요. 그래서 우리 국악을 해야겠다고 해서 교과서를 뒤져 보니까 나온 게 별로 없어요. 우리는 잘 모르고 있죠. 그래서 좀 알아야겠다. 이렇게 된 거에요. 졸면서도 공부를 하니까 뭔가 있기는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 확신이 딱 선 게 '아 이게 훌륭한 소리다. 나는 이걸 우리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어요.
 

▷ 책을 읽다 보니 국악기를 개량하면 시대에 맞는 국악 작곡과 대중화, 서양악기와의 협연이 보다 쉬워질 거란 생각에서 국악기 개량을 얘기했다가 당시 국악계의 대가에게 '조상님들이 수천 년에 걸쳐 물려준 악기에 왜 네가 손을 데려 하느냐'는 꾸중을 들었다는 대목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 문화라는 게 보존, 계승, 발전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보존은 굉장히 잘돼 있어요. 그런데 계승은 현대적인 어떤 것, 정서를 넣어줘야 돼요. 제가 공부를 하다 보니까 국악기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할까? 현대적으로 전달될 때의 문제점이 느껴졌어요. 예를 들면 우리 국악기가 온도, 습도에 좀 예민해요. 그래서 장시간 연주하다 보면 음이 떨어져요. 이게 낮아지거나 올라가거나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수시로 음을 만져야 되고.

이런 여러 가지 때문에 제가 국악 공부 6년만인 1986년에 아쟁을 개량하려고 손을 댔어요. 그런데 이제 개인 돈으로 하다 보니, 이게 한 백 대는 부숴야 되거든요. 위치, 왜 오동나무여야 되나, 플라스틱으로 하면 안 되나, 다른 나무는 안 되나, 왜 받침대 높이가 꼭 그 정도여야 되나, 낮으면 안 되나, 왜 나일론 줄은 되고 쇠 줄은 안되나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한 백 대는 부숴야 되는데 제가 실험을 하다가 재정적 예산이나 여러 가지가 힘에 부쳐서 스톱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절실했던 게 지금 갖고 있는 음을 더 고정적으로 다듬어주고 절대음이 날 수 있도록 해주고 오래도록 연주될 있게 해주고 음을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한 두 개 늘리면 작곡하는 기법이 달라지거든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원래 음이 클래식에서도 처음에는 5음이었다가 6음, 7음, 8음 이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시대에 따라 음이 변해가는데 보존을 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절대 다치면 안 된다고 얘기하시는데 그것도 맞는 말씀이에요. 그래야 보존이 되니까. 저는 보존, 계승, 발전에서 계승, 발전을 더 공부해서 하니까 좀 많이 부딪혔죠. 그러나 지금은 벌써 많이 개량됐고. 제가 예전에 하던 것에서 많이 수용하시고. 초창기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은 인간문화재 선생님들도 제 생각에 동감해 주시는 것 같아요.
 

▷ 밥 말리(Bob Marley)를 통해 자메이카의 레게(reggae)가 세계적 음악 장르가 됐듯이 국악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 그렇죠. 책에도 썼지만 밥 말리가 자메이카의 고전 음악을 현대화해서 전 세계에 알렸거든요. 전 세계인들이 그 음악을 즐기면서 자메이카를 알게 되고 자메이카 문화를 알게 되는 거거든요. 세계에선 사실 아시아 음악 하면 중국 음악과 일본 음악, 주로 이 두 나라 음악을 알아요. 우리 나라 음악은 잘 몰라요. 이건 제가 삼십 년 동안 세계 문화행사를 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지금은 주로 중국하고 일본만 알고 있어요.

실제로 제가 2002 월드컵 때 한일월드컵 메인 테마곡을 작곡한 반젤리스(Vangelis, 그리스 그룹 Aphrodite’s Child 출신의 음악가)를 만났어요. 이 분이 일본 음악만 아니 만나서 한국 음악을 설명하고 오라고 해서 급파된 적이 있어요. 모르는 건 찬스라고 저는 생각해요. 아시아 음악은 중국하고 일본 음악만 아니까 이건 찬스에요. 먼저 국내에서 활성화시켜서 나가야 하는데 국내는 여러분 알다시피 문화 하기가 참 힘들어요. 특히 우리 국악은. 그러다 보니 이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우리 소리를 공부해서 장르 개척을 해야겠다는 게 제 결심이었어요.

밥말리, 반젤리스
장르가 많아야 우리가 미국으로 진출할지 유럽으로 진출하지 모르는 거거든요. (다양한 장르 중 뭐가 터질 줄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우리 음악 준비가 중요하다는 뉘앙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 진출할 때에 대비해 많이 써야겠다. 오십, 육십까지는 우리 소리를 공부해서 다양한 음악의 장르를 개발,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국악기와 서양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뭐 이런 장르를 한 다섯 개 정도 만들었어요. 이제 이걸 바탕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이런 상황이에요. 동서양 사람들이 대화, 소통하는 것 이게 중요해요.

전 세계 각 나라마다 전통문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 국악이 있듯이 그 나라의 전통 음악이 있어요. 누구 것은 훌륭하고 누구 것은 훌륭하지 않다 이건 아니에요. 각각 색깔이 다르고 소리가 다른 거에요. 이걸 해야 전 세계인과 대화할 수 있는 거거든요. 전통음악만 갖고는 아 한국에 이런 소리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지 그걸로만 감동하지는 않아요. 감동을 주고 어떤 메시지를 주고 동서양의 통풍이 되려면 그 전통음악을 현대화하는 것만으로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한 오십까지는 작업하고 오십부터는 공연을 해야지 했었는데 이제 육십이 됐으니 10년 늦춰서 이제 움직이려고 해요. 하여튼 저는 우리 소리가 장르 개발을 통해 전 세계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제가 외국 나가서 해본 결과 그 중에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게 기타 산조에요. 앞으로 자주 듣게 되실 거에요. 제가 많이 공연할 테니까.
 
<국가 주요 행사와 어린이 음악: '치키치키 챠카챠카'>
 
▷ 올림픽, 아시안게임, 엑스포 등 국가 주요 행사의 음악 감독을 많이 하셨고 순수예술로서의 음악을 하면서도 TV 프로그램, 영화 음악, 무용 음악 등 대중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꾸준히 해오셨죠. 3년 전까지만 해도 SBS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도 선생님 곡이었고요.

▶ 그랬죠. 그때까지 15년 정도 제 음악 썼죠. 저는 원래부터 소리라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대학들을 다니면서 강의하는 것도 소리학이에요. 좁은 영상, 작은 영상에 의한 소리는 드라마 음악, 큰 영상은 영화 음악, 움직임에 의한 소리는 무용 음악 그리고 빛과 소리의 조화는 행사 음악. 이런 거에요. 그 다음에 가요는 정서, 감각에 의한 유행 음악이죠. 그건 대중음악.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렇게 해온 거에요.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담긴 <김수철 솔로 1집>에 보면 <별리>라는 10분이 넘는 긴 곡이 있어요. 그게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세계에요. 이게 대중가요라기보다는 현대 음악에 가까워요. 이런 걸 대중음악 하면서 계속 같이 해왔거든요. 대중음악은 유행음악이잖아요. 유행음악 중에서 비틀즈처럼 오래도록 남는 것은 사실 얼마 안돼요. 유행음악은 지나가 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감기려면 어차피 순수음악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을 같이 공부하다 보니 이렇게 오게 된 거죠.
(작성중)[人터뷰+]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②: 우리 겨레의 소리.. 국악의 세계화
▷ 또 인상이 깊었던 게 허영만 화백의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가 <치키치키 챠카챠카>(1990) 같은 어린이들이 들을만한 음악도 많이 만드셨죠? 산울림의 동요집들을 제외하면 드문 작업인데..

▶ 저는 예전부터 어린이들이 가요 부르는 게 싫었어요. 어린이하고 맞지도 않은 노랫말에 사랑 얘기, 인생 얘기, 헤어지는 얘기, 슬픈 얘기 하니까 그게 싫었어요. 싫었던 차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어린이들을 위해 작곡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어느 날부턴가 어린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작심할 때 그때는 지상파에 어린이를 위한 드라마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꼴지 수색대>를 하게 됐고 그 다음이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에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어린이 관련한 거는 제작요건이 아주 좋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 조건 따지지 않고 무조건 어린이를 위해서 한 중에서 <날아라 슈퍼보드>가 아주 빅히트를 쳤어요. 이런 작업을 할 때는 작사를 하면서 어린이 시각으로 아이들이 뭘 좋아하나, 무슨 색깔을 좋아하나, 무슨 음식을 좋아하나, 친구를 좋아하나, 하늘을 좋아하나, 나무를 좋아하나 공부를 하게 됐어요. 많이 배우기도 하고 깨닫게 됐죠. 그 중 하나 <날아라 슈퍼보도>가 잘돼서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날아라 슈퍼보드> 노래 <치키치키 챠카챠카>가 어린이들과 저를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됐죠.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③에 계속]

▶ [人터뷰+]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① : 기타로 우뚝 선 '작은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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