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4전 5기' 역전승의 주인공!

SBS뉴스

작성 2017.11.27 17:03 수정 2017.11.27 17: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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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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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홍수한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 홍수환 '4전 5기' 40주년…"권투는 내 모든 것"
 
홍수환 회장
"내 삶 자체가 권투…난 아직 선수라 생각"
"4전 5기 경기, 시합 본 사람들 인생도 바꿨을 것"
"워낙 무시 받던 상황, 두 배 연습했다"
"패한 카리스키야, 성품은 챔피언급"
"퇴보하고 있는 한국 복싱…국가가 노력해야"
"모든 일은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어"


▷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을 지금부터 40년 전 오늘로 모시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1977년 11월 27일 오늘은 한국 스포츠사에 한 페이지가 장식된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경기는 아니고요. 머나먼 타국 이역 땅에서 일어났던 경기인데 온 국민이 그야말로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그런 경기가 열렸습니다.
 
 
▷ 주영진/앵커: 정말 멋있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한 방이 있다. 누구든지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한 방이 있다. 이 경기의 주인공 모셨습니다. 홍수환 선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안녕하세요.
 
▷ 주영진/앵커: 아직도 선수라고 불리시는 게 더 익숙하시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선수죠, 뽑힌 손이니까 선수입니다.
 
▷ 주영진/앵커: 오랜만에 영상 다시 한 번 보셨는데 어떠십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언제 봐도 신나죠. 참, 참 대단했구나. 저게 정말 나인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 주영진/앵커: 그런데 저는 말이죠. 저때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예전에는 국민학생 지금은 초등학생이었는데 저거 보다가 우리 형 뭐 부모님들도 에이, 경기 끝났다 하고 안 보시고 텔레비전 끄시고 말이죠. 이랬었는데 그다음에 기적처럼 이기셨단 말이에요. 처음에 4번 다운당했을 때 아, 이제 안 되겠구나. 정말 무서운 선수구나. 그런 역부족 이런 거 혹시 안 느끼셨어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제가 워낙 이 시합할 때는 괄시를 받고 갔기 때문에 연습을 2배를 더했습니다. 항상 누구든지 이긴다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기관총으로 탱크 쏘는 격이다 뭐 이런 말씀까지 들어서 정말 연습을 많이 해서 갔기 때문에 정말 포기할 마음은 전혀 없었고 또 선생님이 4번 다운당하고 나온 다음에 저한테 여기는 판정으로 가야 이길 부가 없다. 그냥 1회전을 더 뛰고 하지 말아라. 그래서 저는 정말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게 열심히 연습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주영진/앵커: 4번 다운당한 게 2회전이었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2회전에 4번 다운당하고 돌아갔는데 판정 가면 승산이 없으니 어차피 한 회전만 더 뛰고 나서 차라리 포기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기예요, 관장 선생님께서?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러니까 우리 선생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항상 1회전을 더 뛰면 또 거기서 1회전 더 뛰고 또 1회전 더 뛰고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때 그 자극제가 된 거죠. 1회전 하고 하지 말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부어라 그런 말씀이었으니까요.
 
▷ 주영진/앵커: 4번 다운당하면 상대방 선수에 대한 공포심, 저 주먹이 정말 무섭다. 맞으면 아프다. 맞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 안 드십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워낙 상대방이 주먹이 셌으니까 사실 그런 마음도 들었는데 뭐라고 그럴까요. 이제 우리의 작전은 5회전만 넘기면 상대방 선수의 주먹이 약해지니까 그때 내 기술로써 이길 수 있다 뭐, 이런 게 우리 작전이었는데 워낙 뭐 나가서 맞아보니까 5회전 이전에 끝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끌고 갈수록 불리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저때가 홍수환 선수가 몇 살 때입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27살 때입니다.
 
▷ 주영진/앵커: 1977년에 스물일곱. 그러면 아놀드 테일러에게 이겨서 그때는 남아공이었나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때는 24살 때입니다.
 
▷ 주영진/앵커: 24살 때. 권투를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저는 19살 때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19살에. 상당히 늦게 시작하신 편이시네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반 땠으니까요.
 
▷ 주영진/앵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돌주먹이다 이런 이야기를 좀 들으셨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저는 학교 생활은 아주 얌전했고요. 저에게 복싱의 계기를 주신 분이 이제 대한민국의 김기수 선배님께서.
 
▷ 주영진/앵커: 대한민국의 첫 세계 챔피언.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첫 세계 챔피언. 그분의 카퍼레이드를 보고 저는 권투 할 생각을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멋있었죠. 세계 우리나라에서 최초라는 건 참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데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럼요.
 
▷ 주영진/앵커: 지금도 경기 장면 보다 보면 말이죠. 3회전에 들어섰을 때 2회전에 4번 다운당한 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또 발놀림이 보인다는 말이죠. 또 일부에서는 홍수환 선수가 그렇게 큰 데미지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일부러 4번 다운당한 게 아니냐. 4번 다운당해도 KO패는 당하지 않는 걸로 경기 규칙이 바뀌었으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작전을 편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있었는데 말이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일부러 다운당할 수는 없죠. 일부러 다운당할 수는 없고 다운을 시키면 상대방은 힘이 배가 됩니다.
 
▷ 주영진/앵커: 그렇죠, 이겼다고 생각하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래서 일부러 다운당할 수는 없고 제가 이 자리를 빌려서 말씀을 드린다면 카라스키야 선수가 권투를 저보다 못해서 진 게 아니고 방심의 순간을 저에게 그냥 허를 찔린 거죠.
 
▷ 주영진/앵커: 마지막 지금 카라스키야 선수가 쓰러져 있는데 말이죠. 마지막 결정타는 뭐였습니까? 스트레이트였어요? 아니면 어퍼컷이었어요? 아니면 쓰러질 때 어딘가를 주먹으로 가격을 하시기는 하는데.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죠. 맨 끝에 때리는데 그 주먹은 턱을 맞혔고.
 
▷ 주영진/앵커: 턱을?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카라스키야가 가장 괴로워한 주먹은 옆구리 공격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옆구리. 나중에 카라스키야 선수하고 만나서 직접 확인하신 이야기입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네.
 
▷ 주영진/앵커: 바로 지금 저 장면이죠? 턱을. 어퍼컷 턱 맞고 두 방 맞고 쓰러질 때도 마찬가지로 왼손 주먹인데 양손 다 잘 쓰시는 거예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저는 오른손잡이지만 양손 다 잘 썼습니다.
 
▷ 주영진/앵커: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고 지금 카라스키야 선수가 일어나지 못하는 걸 확인하고 팔짝팔짝 뜁니다. 저때 기분 어떠셨어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글쎄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기쁨이죠.
 
▷ 주영진/앵커: 저기가 파나마 아닙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파나마입니다.
 
▷ 주영진/앵커: 파나마시티.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기가 저 당시만 해도 1977년에 저기까지 가려면 하루 이상 걸리지 않았습니까? 어땠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때는 이제 여기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갔고요. LA에서 과테말라, 과테말라에서 이제 파나마까지 갔죠.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 당시에 예전에 뭐 라스베이거스나 미국에서 권투 시합이 열리면 막 총성이 울리기도 한다 현장 아나운서가 그런 중계 멘트했던 기억도 나는데 그 파나마 시티 분위기는 어땠어요, 저 당시에. 일방적으로 저 카라스키야 선수를 응원하는 분위기였을 거 아닙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죠. 그런데 뭐 일방적으로 카라스키야 선수를 응원했지만 이미, 이미 세계 챔피언이 된 줄로 알고 환영 준비를 한 그런 상황이었죠, 그때가. 이제 저는 그냥 제물로 바쳐지는 그런 이제 상황이었죠. 정말 저때의 헥토르 카라스키야 선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런데 카라스키야 선수에 대한 사전 정보 저런 게 저 당시에 있었습니까? 경기 장면 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말이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랬죠, 그랬죠. 그때의 아놀드 테일러하고 시합할 때는 전혀 그런 게 없었고요. 그때 카라스키야의 싸우는 모습은 비디오 테이프로 조금은 보고 떠났습니다.
 
▷ 주영진/앵커: VHS 아주 화질 안 좋은, 당시.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쪽도 제 것은 좀 봤고요.
 
▷ 주영진/앵커: 그래서 4전 5기. 이 4전 5기라고 하는 신화가 만들어졌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원래 7전 8기라는 말밖에 없었는데 홍수환 선수 덕분에 4전 5기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갔다 돌아와서 그 말 딱 들으셨을 때 아, 정말 내가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구나 이런 생각 드셨을 것 같아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것은 그때뿐만이 아니고 아직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4번을 쓰러지다가 이긴 것이 내 인생도 바꿨고 또 그 시합을 본 많은 분들의 인생도 바뀜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주영진/앵커: 당연하죠. 아마 홍수환 선수가 김기수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권투의 꿈을 키웠듯이 홍수환 선수의 저 4전 5기 저 경기를 보면서. 아, 저때 귀국했을 때 온 나라가 난리였죠, 아마? 저런 경기가 없었고 홍수환 선수 지금 보면 지금도 잘생기셨습니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별말씀을.
 
▷ 주영진/앵커: 정말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저희 부모님께서, 형님들께서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저 경기가 아니라 첫 아놀드 테일러 이겼을 때 남아공에서 어머니랑 국제전화하면서 하셨던 이야기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네. 이것은 이제 4전 5기고요.
 
▷ 주영진/앵커: 카퍼레이드까지 하셨네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네.
 
▷ 주영진/앵커: 그러면 귀국하셔서 뭐 청와대도 들어갔다 오시고 그러셨겠습니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죠.
 
▷ 주영진/앵커: 온 언론과 인터뷰도 하시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런데 제가 이제 이번 4전 5기 권투 시합 끝나고는 이제 그때 대통령을 못 만나 뵙고요.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이것은 이제 대통령을 만나봤습니다, 그때.
 
▷ 주영진/앵커: 그 당시 권투 선수 가운데 청와대 가서 대통령 만난 선수가 있었을까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김기수 선배님.
 
▷ 주영진/앵커: 첫 챔피언.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있었고 그다음에 8년 후에 저입니다.
 
▷ 주영진/앵커: 1974년, 77년. 제 기억에는 밴텀급, 주니어페더급인가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우리나라 최초의 두 체급 석관한 세계 챔피언입니다. 아쉽게도 롱런은 못하셨어요. 롱런은 못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권투 선수 생활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저때 군인이셨습니까, 아놀드 테일러 이겼을 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시절에는 육군 일등병 때였죠. 그래서 군 부대 강연을 많이 합니다.
 
▷ 주영진/앵커: 각이 살아 있습니다, 지금 보니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만나서 인사하는데 상당히 표정이 좀 굳어 보이십니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일등병인데 대통령 님 만나니까 굳었겠죠.
 
▷ 주영진/앵커: 홍수환 선수 4전 5기. 40년 전 오늘 그렇게 누구나 어렵다고 했던 경기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에게 귀한 교훈을 줬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그 이후의 인생, 많은 굴곡이 있으셨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많은 굴곡이 있었죠. 그때의 우리 지금 가수 옥희 님하고 또 스캔들도 있고 또 뭐 때렸다 맞았다 해서 또 제가 2년 반 동안의 권투 선수 시합을 못한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그 사건으로 해서 2년 반을 권투위원회에서 허락을 안 해 줬거든요.
 
▷ 주영진/앵커: 아직 은퇴하기 전이었는데.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그래서 그때 제 나이 28살 때 2년 반을 권투 시합을 못하게 한 것은 정말 세 체급 도전을 할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한 거죠. 그래서 저는 저하고 아주 절친한 염동균 선수와 50전. 그러니까 우리 아버님이 49살 때 돌아가셔서 저는 49라는 숫자를 제일 싫어하는데 제가 세계 챔피언을 뺏긴 시합 횟수가 49전째 니카르도 카르도나한테 집니다. 그래서 염동균 선수와 이제 한 번을 더 싸우고 50전을 채우고 링을 떠나게 되죠.
 
▷ 주영진/앵커: 염동균 선수와 뭐 희대의 라이벌이었다 많이 권투 시합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염동균 선수도 챔피언 했죠.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했죠. 주니어 페더급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한 번 했었고 홍수환, 염동균. 허버트 강 이런 선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분도 아주 유명한 분이시고요.
 
▷ 주영진/앵커: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에 정말 권투 시합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였었는데. 그 이후에 인생에 이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홍수환 선수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팬분들께서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저는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으로 열심히 살고 있고요.
 
▷ 주영진/앵커: 여전히 권투인이시군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저는 권투라 하면 저의 모든 것이니까 그 둘레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또 이번 기회에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만약에 카라스키야 입장이 되어서 제가 진 선수가 파나마에 가서 카라스키야 선수 이긴 거 40주년 기념해 주라고 가겠습니까? 저는 정말 이번 기회에 카라스키야 선수에게도 배운 게 많습니다. 자기는 패자인데 승자 홍수환의 40주년 챔피언 된 걸 기념하기 위해서 암스테르담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다시 찾아와준다는 게.
 
▷ 주영진/앵커: 오늘, 오늘 왔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어제 왔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제 왔습니까? 우정이 정말 계속 이어지는군요. 국회의원까지 됐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습니다. 맨 처음에 시의원으로 해서 시장 2번을 연임하시고 그다음에 국회의원이 됐죠. 그래서 참 저 시합은 제가 비록 링 위에서는 세계 챔피언이 됐지만 과연 정말 링보다 더 무서운 인생에서는 카라스키야가 오히려 세계 챔피언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 주영진/앵커: 이렇게 서로 상대를 또 추켜세우시는 모습 참 아름답습니다. 지금 희망의 전도사 이런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기사를 제가 본 기억이 나요. 많은 강연을 다니고 아까 군부대도 많이 가신다고 했는데 가서 이야기하시는 핵심 주제는 뭡니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입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죠. 그리고 모든 걸 이뤘다 할 때 거기서 한 번 더 하자. 패배했을 때도 한 번 더 하자. 그러니까 모든 건 한 번 더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권투 선수로서 이야기하자면 때리고 또 때려야 이기지 때리고 말면 이길 수는 없다. 그 말씀입니다.
 
▷ 주영진/앵커: 또 맞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권투하다 보면 맞을 수도 있는 거고 맞는 걸 두려워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그럼요.
 
▷ 주영진/앵커: 그런데 최근 권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권투위원회 위원장 맡고 계시는데 어떤 비책 좀 마련 중이십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가슴이 아프죠. 일단은 우리 프로 복서가 이제 김기수, 유명호, 장정구, 유재두 이런 정말 스타급 레벨의 선수가 아직 안 나오는데 안 나오는 이유는 아침에 뛰게 하는 코치도 없고 아침에 뛰는 선수도 없고 아침에 같이 뛰는 선수 매니저가 없습니다. 제가 세계 챔피언을 적지에 가서 따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아침에 일어나서 뛰는 그 아침 구보는 빼놓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은퇴한 스승님의 눈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복싱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국가들은 다 빨라지고 있고 정말 복싱이 인기가 갈수록 좋아지는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2박 3일을 해도 모자랍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한국권투위원회 위원장 맡고 계시니까 여기서 40년 전보다 조금 더 한 3~4년 전으로 돌아가서 우리 홍수환 선수가 첫 챔피언이 됐을 때 어머니와 통화했던 내용 여러분께 들려드리겠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렇게 대한민국에게 또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을 두 차례나 주었던. 무엇보다 두 번째 승리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이겨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된다는 희망을 줬던 홍수환 선수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끝으로 노래 선물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 우리 홍수환 선수가 선택하신 노래가 옥희 씨의 인생열차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신곡입니다.
 
▷ 주영진/앵커: 이 노래 좋아하십니까?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네, 네.
 
▷ 주영진/앵커: 이 노래 들려드리면서 홍수환 선수와도 여기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회장: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홍수환 선수의 이야기 여러분들 절대 잊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길 수 있고 맞는 걸 두려워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40년 전 홍수환 선수가 우리에게 주었던 교훈은 바로 이것 아닐까 싶습니다.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