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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색한 영웅 만들기…빗나간 JSA 귀순 사건 쟁점들

[취재파일] 어색한 영웅 만들기…빗나간 JSA 귀순 사건 쟁점들
지난 13일 벌어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귀순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관심이 흐트러지면서 정작 주목해야 할 쟁점은 놓치고 괜한 소모전만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JSA를 통해 북한군이 귀순한 일이 드문 사례여서 이런 경우 군의 대처는 어찌해야 옳은지를 담담히 점검해봐야 하는데 우리 군 풍토에서는 낯선 영웅담에 시선이 몰리더니 급기야 영웅담 조작 의혹으로까지 번지면서 JSA 사건의 본질은 영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JSA 대대장인 권영환 중령이 포복을 했건 안 했건, 열상 감시장비 TOD에 권 중령이 찍혔건 안 찍혔건 전반적인 상황 파악에는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권 중령은 13일 상황에서 북한군의 동향을 살피다 귀순 작전을 현장 지휘한 것이고, 귀순 병사 주변 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JSA의 상황은 다른 간부가 관할했습니다.

쟁점은 13일 권 중령의 임무가 '귀순 작전의 지휘인지', 'JSA 전반의 지휘인지'가 돼야 합니다. 당시 JSA에는 원래부터 있던 남북의 경비 병력과, 귀순자를 쫓아온 북한군 수십명이 완전무장한 채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소소한 실수로 인한 오해가 남북 총격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JSA의 남측 지휘관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13일 JSA 귀순 사건에서 우리가 얻어내야 할 교훈은 ‘남측 지휘 책임자인 권 중령이 어떤 임무를 했어야 하느냐’입니다.

권 중령이 귀순 작전을 맡아 지휘한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귀순 작전에서 권 중령 행동의 디테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여러 가지로 욕을 먹는 군이 굳이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어 공치사를 하고 싶었다면 대상은 권 중령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귀순 병사를 구해온 이름 모를 부사관 2명이 됐어야 했습니다.

● 다시 보는 13일의 JSA…사건의 본질은?

지난 13일 오후 3시 15분쯤 JSA 북방에서 완전무장한 북한군 수십 명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JSA 우리 군 경비대대는 급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북쪽을 주시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군용 지프차가 빠른 속도로 JSA로 진입하더니 바퀴가 배수로에 걸려 멈춰섰습니다. 지프에서 내린 북한군 1명이 남쪽으로 도주했고 북한군 서너 명이 총을 쏘며 그를 쫓았습니다. 북한군 추격조 중 1명은 군사분계선까지 넘어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귀순 북한 병사는 JSA 남측 자유의 집 서쪽, 낙엽을 모아둔 곳에 쓰러졌습니다.

완전무장 남북 장병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특히 북한의 병력과 화력이 우리보다 압도적이었던 상황에서 권 중령은 JSA의 최우수 자원인 중사 2명과 함께 귀순 병사를 구조했습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16분입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권 중령이 구조 작전에 나섰을 때 JSA의 우리 측 병력에 대한 지휘는 누가 했느냐’입니다. JSA에는 한국 측과 미국 측이 각각 1명씩 지휘관을 두고 있습니다. 권 중령 말고도 미군 중령이 한 명 더 있습니다. 권 중령이 혼자 순간적으로 판단해 미국 측과 인수인계 없이 구조 작전에 나섰다면 문제가 됩니다. 미군 대대장에게 분명하게 JSA 병력의 지휘를 맡기고 구조 작전을 했다면 논란의 여지는 적습니다.
JSA 귀순 사건 취재파일 사진

▶ [SBS 보도 기사링크] JSA 영웅담 논란에…軍 "간부 3명 포복 접근 확인"
(☞ 바로가기 : //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93522&oaid=N1004494696&plink=TEXT&cooper=SBSNEWSEND)

구조 작전에 나선 권 중령이 ‘포복해서 갔느냐’, ‘좀 뒤에서 지휘했느냐’로 말이 많은데 이는 쟁점이 아닙니다. 귀순 병사를 기준으로 권 중령이 중사 2명보다 뒤에서 그들을 지휘한 것은 여러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이왕 구조 작전에 나선 권 중령은 구조 작전을 지휘했으면 그만입니다.

대응 사격을 안 한 것도 잘 살펴보면 이해할 만합니다. JSA는 유엔사가 관리하는 곳으로 교전 수칙이 다른 휴전선 지역과는 다릅니다. JSA에 관한 한 유엔사는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목표여서 대응 사격의 기준이 상대적으로 엄격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느냐’, ‘위기상황이 고조될 우려가 있느냐’ 등을 종합 판단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총알이 넘어왔으면 비조준 경고사격이라도 해야 국민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교전 수칙”이라고 말했지만 JSA는 총알이 넘어왔다고 해서 경고사격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중구난방’ 군의 입

이번 사건이 사건의 실체에 비해 시끄러워진 데는 군의 입으로 통하는 당국자들의 말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국방부 대변인, 합참 공보실장, 육군의 몇몇 장군들인데 그들의 말이 모두 달랐습니다. 한 책임 있는 당국자는 사건이 벌어진 지 일주일이 더 지난 어제까지도 “권 중령이 귀순 병사를 직접 들고 나왔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육군 쪽에서는 “조사를 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논란들이 곧 판명될 것”이라면서도 권 중령을 주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영웅 만들기입니다. 보다 못한 국방장관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맞느냐”며 화를 낸 뒤 국방부, 합참, 육군에 말조심하라는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은 흔치 않은 JSA 귀순 사례에서 먼저 교훈을 찾았어야 했는데 성급하게 영웅을 이야기했습니다. 몇몇 장군이 생각하는 영웅과 일반 시민이 생각하는 영웅의 기준도 달랐습니다. 또 몇몇 장군들의 의도가 그리 순수하지는 않았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번 영웅담은 실패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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