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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반기문 센터' 졸속 국고 지원…강경화 장관의 보은 예산?

[취재파일] '반기문 센터' 졸속 국고 지원…강경화 장관의 보은 예산?
● 대선의 추억

먼저, 지난 대선 기간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 당시 반기문 대선 후보는 지난 1월 16일, 부산 지역을 방문한 후 경남 김해에서 기자들과 '치맥'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며 느꼈던 소회를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예전에는 피고용자 입장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차와 사무실을 지원해줬는데, 이제는 차도 두 대나 사고 운전수와 비서도 고용하고 사무실도 내 돈으로 직접 얻었다. ” 그러면서 "꼭 돈 때문에 당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은 '돈 때문에 입당해야겠다.'는 취지로 해석이 되면서 지지율이 고꾸라졌고, 결국 2월 1일 반 후보는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당시 취재 기자들 사이에선 '평생 공무원과 현실 정치인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특히 '돈 문제'와 관련해서 말입니다.

● 초스피드 예산편성

대선이 끝나고 3달 만인 지난 8월 4일 반 전 총장은 오스트리아 빈에 자신의 이름을 딴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일명 '세계 시민을 위한 반기문 센터'. 오스트리아 법상 '협회'로 등록을 하고, 피셔 오스트리아 전 대통령을 공동 이사장으로 공개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 전 총장 측은 설립 비용을 우리 정부에 요청하기로 하고, 8월 9일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을 통해 외교부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가야 하는 마지노선은 8월 말. 신규 예산을 정부안에 반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기재부에서 매년 5월부터 3차례 부처 예산을 심의해서 8월에 종합 예산안을 짜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월 31일 완성된 정부 예산안엔 '반기문 센터' 지원금으로 100만 달러, 우리 돈 11억 3천만 원이 떡 하니 편성됐습니다. 이런 '마법'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묻지마 단체지원
● 꼼수의 흔적

외교부는 이 예산을 우선 외교부 일반 회계가 아니라, 산하 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 예산에 눈에 잘 띄지 않게 끼워 넣었습니다. 재단 내부 시행지침에는 '국외 기관이나 단체'는 지원할 수 없도록 돼 있었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반기문 센터 지원'만을 위한 세부사업 항목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또 단체 이름을 줄여 '세계시민센터'로 적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세계시민을 위한 반기문 센터'를 줄이면 '반기문 센터'여야 하는데 '반기문'을 쏙 뺐습니다. 반기문 개인 단체라기 보다는 국제기구처럼 보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기재부를 움직여야 했습니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직접 나섰습니다. 강 장관은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직접 만나 신속한 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외교부도 국제기구, 문화외교, 공공외교 등을 중심으로 근거 자료 마련에 나섰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기재부를 통과하는 데는 성공. 이제 국회만 조용히 통과하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2일 외교부 대상 외통위 국정 감사가 열렸습니다. 국감은 부처의 주요 업무 보고로 시작하는데, 외교부 강 장관과 국제교류재단 이시형 이사장 모두 반기문의 '반' 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긴급하고 중요한 예산이라고 기재부를 설득해 놓고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은 겁니다. 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SBS 기자에게 "괜히 사업에 상처만 날까 봐" 그랬다고 털어놨습니다. 당당한 예산 신청이었다면 그렇게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요? SBS 보도로 지원 사실이 공개되자, 외교부는 국익을 강조했습니다. "반기문 전 총장의 외교적 역량을 국가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과연 국익에 보탬이 되는 일일까요?

● '반기문 센터' 국고지원이 국익 증진?

우선, 반 전 총장은 대선 후보로 출마를 했던 국내 정치인입니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정파와 무관하지 않은 정치인 반열에 오른 겁니다. 한국 정부가 부여한 유엔 사무총장이란 경험을 대선 출마로 사유화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국익만 위할 인물 인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립니다. 만일, 다른 정치인 기념센터 건립에 이런 식으로 국고를 지원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요.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외교적 역량을 인정하더라도 국내 법 절차를 지켜가며 순리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반 전 총장이 우리 사회의 원로, 롤 모델로서 보여줄 모습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단체 예산을 얻어내려고 유엔 사무총장 시절 정책특보로 있었던 강 장관을 움직이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8월이 어떤 때였습니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첫 실거리 발사하는 등 안보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고, 우리 외교가 '코리아 패싱'이란 비판을 받을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장관을 동분서주하게 하는 게 국익을 생각하는 모습일까요?

유엔 사무총장은 국가 원수급 예우를 받기 때문에 반 전 총장도 전직 국가 원수급 인사로 볼 수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기념 재단들은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고, 도서관 건립 등 특정 사업에 한해 보조금을 지원 받습니다. 반기문 센터 역시 먼저 기부나 회비를 받아 설립 운영하고, 특정 사업에 한해 정부에 지원을 신청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후 국제기구로 전환이 되면 그땐 참가국 의결에 따라 한국 정부에 분담금을 요청하면 될 일입니다. 강 장관의 보은성 예산이든 아니든, 지금의 일 처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10월 30일) 외교부 종합 국정 감사가 예정돼 있고, 다음 달 초부터는 국회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합니다. 외교부는 지금이라도 일을 순리대로 진행하기를, 또 반 전 총장은 우리 사회의 귀감으로 계속 남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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