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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기의 진화적 개발과 K-2 흑표 전차 국산화

[취재파일] 무기의 진화적 개발과 K-2 흑표 전차 국산화
어제(13일)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K-2 흑표 전차의 파워팩 국산화를 두고 국회의원과 방위사업청, 업체가 참여한 공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파워팩은 전차의 심장으로 불리는 장비로 엔진과 변속기 등의 복합체입니다.

K-2 흑표 전차의 1차 양산분 100여 대는 독일제 엔진과 변속기, 즉 순수 독일제 파워팩이 장착됐고, 2차 양산분의 파워팩을 어떻게 제작하느냐가 토론의 중심이었습니다. 1,500마력 국산 엔진은 양산 평가를 마치고 언제든 양산을 할 수 있는 단계인데, 1,500마력 국산 변속기는 양산 내구도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방사청은 2차 양산분에 국산 엔진과 독일제 변속기를 묶은 이른바 ‘하이브리드’ 파워팩을 장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아쉬운 대로 국산 변속기를 달고 차츰 변속기의 수준을 높여가자”는 의원들이 있었는가 하면 “관계 기관과 업체가 합의한 성능 목표에 국산 변속기가 못 미친 만큼 국산 변속기를 채택할 수 없다”는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국산 변속기의 평가 기준이 외국제에 비해 가혹하다는 데에는 의원들 간에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어제 토론에서는 또 진화적 개발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군 요구 성능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더라도 현 단계의 기술 수준에 맞춰 우선 전력화를 하고 차츰 성능개량을 하는 방식입니다. 해외 유명 무기들도 이렇게 개발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었는데 20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들이 국산 무기의 진화적 개발 필요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 1,500마력 국산 변속기 탄생의 산고(産苦)

무기 체계는 개발을 마치면 양산을 위한 내구도 평가를 받습니다. 내구도 평가를 통과해야 양산을 할 수 있습니다. 국산 1,500마력 변속기도 작년 1월부터 1년 째 양산 내구도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차 평균 수명 주기의 운행 거리인 9,600km를 주행하며 어떤 결함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K-2 전차 변속기의 내구도 평가 기준입니다.

국산 변속기는 지금까지 6차례 내구도 평가를 거쳤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1차는 메인펌프 구동기어 베어링 파손, 2차는 메인 하우징 크랙, 3차는 변속장치 유성기어 파손, 4차는 메인 하우징 크랙, 5차는 변속기 파손, 6차는 클러치 압력판 고정용 볼트 파손이 원인이었습니다. 2차와 5차 실패는 변속기의 문제가 아니라 각각 운반 중 취급 부주의와 시험장비 오작동이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6차 실패는 목표 거리인 9,600km에 2,490km 못 미친 7,110km에서 수입 부품의 볼트 하나가 부러져서 발생했습니다.
[취재파일] 무기의 진화적 개발과 K-2 흑표 전차 국산화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은 “전차가 9,600km 달리도록 잔고장 한번 없게 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성능에 이상 없다’는 진술서 한 장으로 통과시킨 독일제 변속기와 9,600km 가동하며 잔고장 한 번 없어야 하는 국산 변속기의 평가 기준은 형평성에 안맞다”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국산, 독일제 모두 결함이 있다고 하면 국산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K-2 1차 양산분 100여 대 중 16대에서 독일제 변속기의 중대 결함이 발생했고 현재까지 결함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을 두고 한 발언입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토마호크, 아파치 같은 명품도 최소 성능만 맞추고 초도 배치한다” “미국 뿐 아니라 심지어 북한도 최소 60% 성능만 나오면 배치한다” “국산 변속기를 장착해도 K-2는 문제 없이 굴러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반해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체와 기관들이 합의한 조건을 업체가 못 지킨 것이고, 그래서 독일제를 선택했다” “애국 마케팅도 정도껏 해야 한다”며 독일제 변속기를 지지했습니다.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은 “업체가 애초에 내구도 평가를 위한 국방 규격에 이의를 제기했어야지 이제 와서 국방 규격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방사청도 이철희, 이종명 의원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정현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 발언 시간을 얻은 국산 변속기 제조업체 대표는 “전차 차체와 엔진은 내구도 평가 기간 동안 ‘내구도 결함’만 없으면 되는데 유독 변속기에만 ‘결함’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됐다” "규격을 정할 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차체와 엔진에 적용되는 내구도 결함은 중대 결함을, 변속기에 적용되는 결함은 모든 결함을 말합니다. 즉 엔진과 차체는 중대 결함이 나와야만 평가 탈락인데 반해 변속기는 소소한 결함만 발생해도 탈락입니다. 업체 대표는 “엔진, 차체와 동일한 규격으로 평가 받게 해주면 통과해서 우선 전력화를 하고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무결함 변속기로 보답하겠다”고 호소했습니다.

● 뜻밖에 제기된 진화적 개발론

국감장에서 벌어진 뜻밖의 토론에서 뜻밖의 개념이 나왔습니다. 진화적 개발론입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300명 태우는 여객기에 승객 3~4명 안 왔다고 해서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안 온 승객은 대기자 명단으로 돌리고 비행기 띄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발 목표를 100% 완수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 개발이 되면 우선 전력화를 하고 추후에 성능개량을 통해 결함 제로에 근접하는 진화적 개발 방식의 다른 표현입니다.

김종대 의원은 “지금과 같은 완성형 개발 방식으로는 다음, 또 다음 차수의 무기체계 개발을 기대할 수 없다” “사소한 결함이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격이고 이런 경우가 파탄 기업, 파탄 국가의 전형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목표를 정해 놓되 일정 수준 충족하면 전력화를 하는 것이 맞다”며 진화적 개발 방식에 동의했습니다.

그동안 국산 무기들은 개발 중 난관에 봉착하면 결함 무기라고 지탄 받기 일쑤였습니다. 제때에 목표 성능을 못 낸 것이 잘한 일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의 무기 기술이 원샷 원킬은 못하는 수준입니다. 사실 해외 유명 방위산업체들도 절대로 단번에 완벽한 무기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다들 진화적 개발 방식을 채택해서 단계적으로 무기체계를 완성합니다. 늦었지만 국회 국방위에서 진화적 개발 방식을 입에 올린 점이 무척 고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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