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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범벅 여중생' 폭행 수사…부실 축소 의혹까지

[취재파일] '피범벅 여중생' 폭행 수사…부실 축소 의혹까지
지난 1일 밤 부산에서 발생한 여중생 학교폭력 수사는 경찰이 학교 폭력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안이하고 부실하게 대응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부실 수사에 그치지 않고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날로 심각해 가는 학교 폭력에 대해 경찰은 청소년 사건이란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부실 수사로 제2의 폭력사태를 유발했다는 점에서 경찰의 책임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반성과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의 전말을 복기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경찰 초기 "폭행 상태 중하지 않다"…안이한 대응 여론 질타
[취재파일] 피범벅 여중생 폭행 수사/부산 여중생 cctv
지난 1일 밤 부산 사상구 엄궁동의 목재 공장 빈 공터에서 여중 2학년생이 3학년 선배 언니 2명으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했습니다. 폭력 피해 학생의 친구 3명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 피해학생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길가에 쓰러져 방치됐고 길을 가던 행인이 보고 119에 신고해 구급차로 병원에 긴급 후송됐습니다. 119 구조대는 이 학생의 상태가 폭력에 의한 피해임을 직감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병원으로 가 1차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가해 여학생들은 피해 학생이 119에 실려가는 모습을 보고 1시간여 뒤에 지구대에 찾아와 자수를 했고 부모 입회 아래 간단한 조사를 받고 귀가 조처 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SNS에 피범벅이 된 이 피해 학생의 사진과 구타한 가해 여학생의 글이 올라오면서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가해 여학생 가운데 한 명이 선배에게 자문을 구하는 SNS를 보낸 것을 선배가 곧바로 올린 겁니다. SNS에 파문이 확산되자 부산경찰청 홍보팀이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형사미성년자 사건으로 별도 보고서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머리 부위와 입 안이 찢어졌지만 골절이 없고 중상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피를 흘린 사진이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부상 정도는 경미하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피의자 피해자 모두 14세 미만으로 보도에 각별한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여기까지는 1차 초기 단계에 정확한 상황 파악이 안 된 단계에서 개요 파악만 한 내용이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텁니다.

경찰은 지난 3일 피의자 2명을 소환해 1차 조사를 했습니다. “피해 학생이 평소 버릇없이 굴었고 친구의 옷을 빌려 준 뒤 돌려주지 않아 혼을 내 줬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피해 학생도 조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치고 정신적 충격에 빠져 진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경찰의 설명은 흔한 학교 폭력의 한 유형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그런데 당시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고 피해 여학생 가족과 지인들이 SNS를 통해 경찰이 사건을 왜곡해 알려주고 있다는 항의성 글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 CCTV 동영상…조폭 뺨치는 폭행 장면 고스란히 담겨 충격
[취재파일] 피범벅 여중생 폭행 수사/씨시티비 철제의자
당시 폭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조폭 뺨치는 폭행을 피해 학생에게 행사한 겁니다. 여중 선배 2명이 주도하고 다른 2학년 동기 2명은 동조 폭행에 가담해 피해학생에게 1시간 반 동안 무시무시한 폭행을 가한 겁니다. 손찌검과 발길질은 기본이고 철제 의자와 쇠막대기 소주병 등이 동원돼 마구 때렸습니다. 심지어 피우고 있던 담뱃불로 등을 지지거나 군대 유격훈련에서 하는 ‘좌우로 굴리기’까지 시켰습니다. 피범벅인 된 피해학생의 모습을 찍어 다른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폭행 현장에 있었던 피해 학생의 친구의 증언은 더 충격적입니다. 이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 학생들이 폭행한 이유에 대해 “언니들이 두 달 전에 때린 걸 신고했다는 이유로 폭행했다”며 보복 폭행이었음을 밝혔습니다. 또 “피해 학생에게 옷을 빌려 준 친구를 이용해 피해 학생을 불러낸 뒤 가해 언니들을 따로 불러냈다”며 보복폭행을 위해 유인하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또 폭행을 하는 과정에서 “어차피 살인 미수인데 더 때리면 안되겠나” “피 냄새가 좋다며 더 때리자” “맞은 기억을 잃게 만들자며 계속 폭행을 했다”는 겁니다.
 
● 경찰 CCTV 영상 확보하고도 안이한 대응…보복 폭행 가능성 몰라
병원 치료 받고 있는 피해자
경찰은 지난3일 오후 10시 문제의 동영상을 확보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피해 학생은 119 구급대에 실려 긴급 병원에 후송됐습니다. 경찰은 지난 2일 문제의 가해 학생들이 지난 6월에도 피해학생을 폭행해 고소당한 상태에 있었다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가해 학생들이 2차 폭행한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경찰은 4일 오후 1차 브리핑을 하기 전까지 피해자의 상태가 경미한 폭행이고 태도 불량으로 인한 폭행이란 입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가해 여학생들이 태도가 불량해 폭행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1차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 보복폭행과 두 차례 폭행…피해자 가족이 알려와
 
유인에 의한 보복폭행의 가능성, 1차 폭행이 있었던 사실, 피해자의 폭행상태가 중하다는 것은 피해자 가족이나 지인들이 SNS를 통해 알려 파문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4일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공식 브리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일 오후 2차 브리핑을 통해 보복폭행과 이를 위해 피해자를 유인했다는 사실도 피의자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경찰 "CCTV 동영상 언론에 공개 말라" 압박
공장 폐쇄 회로 설치
경찰은 또 취재진이 CCTV 동영상 확보를 막기까지 했습니다. 취재진이 동영상 녹화분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봉고차를 몰고 와 동영상 제공자를 은밀히 불러내 “CCTV를 왜 오픈(공개) 했느냐, 오픈하면 안된다. 막아라. CC TV 전원을 내려라”는 등 회유와 압박까지 했습니다.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은폐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자초했다는 지적입니다.
 
● 경찰, 가해 여학생들 보호관찰 대상 몰랐다
[취재파일] 피범벅 여중생 폭행 수사/경찰브리핑
관할 사상경찰서의 미온적 수사태도와 부실 수사도 큰 문젭니다. 가해 주범 여중생 2명은 지난 6월 29일에도 피해 학생을 노래방에 데리고 가 마이크 등으로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습니다. 30일 피해 학생 가족이 가해 학생 5명을 고소했습니다. 그 뒤 경찰은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기 위해 피해 학생과 가족들과의 연락을 몇차례 시도했으나 “소재지 파악이 안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지난 2개월여 동안 고소당한 폭행 가담 여학생 5명에 대한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1차 폭행사건으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로부터 사회봉사 처분을 받고 선도프로그램을 이수했지만 자신들이 고소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앙심을 품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통상 고소사건의 경우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뒤 피의자 조사를 하도록 돼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단순한 고소사건이 아닌 학교폭력이란 형사사건의 범주여서 경찰이 수사 의지만 갖고 있었다면 충분히 2차 폭행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가해 여학생들은 지난 4월과 5월 특수절도와 공동폭행 혐의로 각각 보호관찰 상태에 있었지만 경찰은 지난 4일 오후에야 이 같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성인으로 치면 집행유예 기간 중에 두 차례나 폭행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경찰은 “소년범 관리는 법무부 산하여서 보호관찰 처분을 곧바로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해명했지만 부실 수사란 비판을 피하긴 어렵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가해 주범인 3학년 여학생들에게 특가법상 보복상해 특수상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소년원에 위탁했습니다.
 
제 기사는 경찰을 비난하거나 처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경찰도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하지만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학교 폭력에 대한 경찰의 수사 매뉴얼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가해 학생이나 피해학생 모두 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입니다. 최근의 청소년 범죄가 학교 안이 아닌 바깥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 밖 아이들을 관리할 교육적 사회적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한편 경찰은 "수사 초기에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에 시간이 필요했고 법적으로 중학생 미성년자 폭행 사건이었기 때문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은폐 축소 의도는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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