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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라이프 저널리즘] 한 종합병원에서 생긴 일

[이주형의 라이프 저널리즘] 한 종합병원에서 생긴 일
며칠 전, 비가 언제 쏟아질지 모르게 궂은 날이었다. 연로한 모친을 모시고 한 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국가고객만족도 1위'라는 문구가 벽면 모니터의 진료 대기자 명단 사이 사이 번쩍번쩍 하고 있었다. 

진료 시간보다 30분 쯤 일찍 도착해 등원 접수를 하니 접수대의 간호사가 앞으로 펼쳐질 일관 '공정'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기억력 검사가 얼마고 무슨 검사가 얼마고, 또 얼마가 드는 무슨 검사를 해야 하는데(그걸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당연히 선택도 없다) 괜찮냐고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안괜찮다고 답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 아니, 생각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

이것 말고도 TTS(텍스트 음성변환) 프로그램이 말하듯 몇마디를 더 던진 뒤 "다 끝난 뒤에는 가지 말고 간호사 설명을 듣고 어쩌고" 하란다.

작성하라는 설문지 하나를 받아들고 도망치듯 - 정말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모친이 계셔서 참았을 뿐이다 - 간신히 기억력 검사실 앞에 갔는데, 혼잡한 진료소 앞에는 노인이 정신을 차리고 앉아서 설문지을 작성할만한 공간이 마땅찮다.(책상은 언감생심이고 앉을 자리도 부족하다)

그런데 접수 간호사로부터 환자를 넘겨받은 간호사는 앞에 들어간 사람이 나오면 검사실로 바로 들어가란다. 받은 설문지를 다 작성한 뒤에 가지고 들어가란 것인지, 앞 사람이 나오면 설문지를 작성하다말고 그냥 들고 들어가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 환자가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안내하는 표지도, 간호사도 없는데 앞 사람이 나오면 바로 들어가라니 그럼 설문지를 집중해서 쓰는 동시에 진료실 문도 놓치지말고 지켜보고 있으라는 건가? 

어찌어찌하여 기억력 검사실에 들어간 모친은 '오늘이 몇년 몇월 몇일인지', 날씨는 어떤지, 나무와 비행기와 모자를 검사자가 말한 순서대로 따라할 수 있는지, '간장공장공장은…' 따위를 테스트 받았다. 앞서 접수대의 간호사가 설명이랍시고 - 사실상 - 지시한 내용에 비하면 놀랄만큼 간단했다.

그 간호사가 어떻게 하라고 설명한 건 젊은 나조차 반의 반도 기억 못한다. 노인 혼자와서는 도저히 따라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러려면 돈내고 기억력 검사는 뭐하러 하나. 이걸 다 기억해서 불편함없이 진료를 받고 돌아갈 수 있다면 80대 중반의 어머니가 나보다 기억력과 이해력이 훨씬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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