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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평온한 일상을 깨트린 케미포비아의 습격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리포트+] 평온한 일상을 깨트린 케미포비아의 습격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살충제 달걀' 파문에 릴리안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더해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살충제 달걀은 폐기됐고 논란에 휩싸인 생리대도 생산 중단과 환불 조치에 들어갔지만 소비자들이 화학제품 전반에 대해 불안·공포감을 느끼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 화학 성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촉발된 '케미포비아'

'케미포비아'란 화학을 의미하는 '케미컬(Chemical)'과 혐오를 뜻하는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말입니다.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불신·공포감을 느끼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논란이 됐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케미포비아란?
지금까지 정부에 신고된 피해자만 5,800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케미포비아'란 용어가 널린 퍼지게 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지난해 9월 일부 치약과 물티슈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독성 성분인 CMIT와 MIT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화학제품 관련 논란은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알고 있는 소비자 4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87%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 가까이 믿지 못하겠다고 답한 겁니다. 또 응답자의 69.2%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천연재료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려 한다"고 답했습니다.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 조사 결과
■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에도 불안한 소비자들

케미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도 소비자가 이를 믿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외국의 한 소비자 잡지가 피앤지(P&G)사의 기저귀 일부 품목에서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검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한국피앤지 측은 기저귀에서 발견된 화학 성분이 극미량이고 유럽 안전 기준에도 못 미쳐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유통 중인 모든 기저귀에 대해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인체에 무해하다' 결과에도 불안한 소비자들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해당 기저귀를 검사해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인터넷 카페에서는 "예전 사태 때문에 찜찜해 사용이 꺼려진다"는 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활화학제품 다 못 믿어"…케미포비아 왜 생기나?

사람들의 불안이 케미포비아로 극대화돼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신뢰 하락'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정부의 인증을 거친 제품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데다, '피해'가 발생한 사후에야 문제점이 드러나기 때문에 소비자의 신뢰는 더 떨어지고 공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생활화학제품 다 못 믿어"…케미포비아 왜 생기나?
게다가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서 소비자들은 정부와 기업의 관리·감독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상황 역시 살충제 달걀 파문에 릴리안 생리대 유해성 논란, 정부의 미숙한 대처 등이 겹치면서 먹거리와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이 '케미포비아'로 발현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 소비자 불안감 해소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동안 잠잠했던 케미포비아가 다시 확산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와 기업 차원의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학제품 허가 단계부터 평가 제도 전반을 보완하고 제품군 별로 평가 방식도 다양화하는 등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더불어 기업과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대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정 제품에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상에 올라오는 불명확하고 왜곡된 정보가 소비자들 사이에 공포심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신 / 건국대 소비자정보학 교수]
"케미포비아 같은 불안 현상은 소비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소비자들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는 정보도 못 믿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정부가 올바른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 신뢰를 높여야만 소비자의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획·구성: 정윤식,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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