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동산 불패는 계속된다"…대한민국 부동산 데자뷔

버블위기 주시하고 주택정책은 공공분야에 집중해야

김용철 기자 yckim@sbs.co.kr

작성 2017.08.19 11:24 수정 2017.08.22 10: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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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부동산 버블 붕괴 데자뷔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난 2003년, 줄곧 경제부에 몸담았던 기자에게 경찰간부였던 고등학교 동문 선배가 심각한 질문을 했다. 아이 교육 문제로 강남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는데, 지금 집을 사도 되겠느냐는 물음이다.

“형님, 참여정부가 지금 부자들을 겨냥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데 집값이 오르겠습니까?”

그 선배는 기자의 말을 듣고 집을 사지 않았고, 그때 내 조언은 선배의 평생 자산 형성에 치명적인 기회손실을 안겨줬다.

2004년 참여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과 신용카드버블 붕괴 여파로 주춤하던 집값은 2005년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15일, 추석연휴가 끝나고 찾아온 미국 투자금융회사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금융위기 발발 직전까지 대한민국의 집값 상승세는 계속됐다.

참여정부 출범 4년차였던 지난 2006년 11월, SBS의 시사 프로그램 ‘뉴스추적’을 제작하던 기자는 당시 일고 있던 부동산 투기광풍을 취재해 방송했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용인과 검단 신도시로 확산하고 있었던 시기다.

당시 서울 강남의 경우 아파트 가격은 1주일에 수천만 원 씩 오르기도 했고, 집을 팔기로 계약했던 집 주인들이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집을 팔고 새집을 사려 했던 사람들은 계약이 취소돼 졸지에 무주택자가 되기도 했다.    

부동산 버블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것은 물꼬가 트인 개인대출과 저금리, 그리고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었다. 행정수도 이전,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추진하면서 토지매입을 위해 지급된 보상금만 참여정부 5년 동안 1백조 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방에서 토지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이 서울 강남에 집을 사면서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로또가 되다시피 했다. 서울 강남과 경기도 용인, 김포 등 신도시 지역의 아파트 청약 현장에는 청약자들이 길게 줄을 섰고, 대기 번호를 제때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한 아파트 단지의 청약경쟁률은 316대1을 기록했다.

인터넷에는 부동산 투자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를 풍자한 ‘대한민국 부동산 헌법’도 나돌았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며, 대한민국 부동산은 건설사, 투기꾼, 다주택자(이하 부동산3족), 고위관료들에게 있고, 모든 정책은 그들로부터 나온다. 고위관료는 부동산3족에 대한 봉사자이며 그들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는 공기업으로써 전 국토와 전 아파트의 투기화에 앞장설 의무가 있다. 이 법률은 모든 법률에 우선한다.”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부동산헌법취재가 한창이었던 2006년11월15일 참여정부는 8차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청약자격 강화와 주택 공급 확대, DTI(소득대비 대출한도)와 LTV(부동산담보대출비율) 축소 등 부동산 투기대책의 단골메뉴가 대부분 망라됐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한창 달아오르고 있었던 2006년 말,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벌써 꼭지점을 지나 추락하고 있었다. 뉴욕과 워싱턴 등 대도시 주택가에는 미분양 사태가 발생해 주택 단지마다 세일 간판이 즐비하게 나붙어 있었다. 모기지 대출 중개회사에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부도가 난 대출 서류가 수북이 쌓였다. 미국의 DTI 인정비율은 30%였지만, 납세와 소득증빙 서류를 위조해 거액의 대출을 받은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2006년7월까지만 해도 뜨겁게 달아올랐단 미국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8월부터 갑자기 얼어붙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해 아우성쳤던 사람들은 분양받은 집을 팔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한 한인 동포는 모기지 대출을 받아 무려 26채의 집을 샀다가 모든 재산을 잃게 될 처지가 되기도 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금융기관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2008년 9월 금융위기로 폭발하기 까지는 여기서 다시 2년이 걸렸다.
미국의 기준금리 추이● 10년 만에 돌아온 부동산 버블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국내에서도 투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반토막’이 됐다. 저축은행이 줄줄이 도산하는 등 금융기관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아파트 장사에 ‘올인‘했던 건설회사들은 마구잡이로 조성했던 미분양 택지를 끌어안고 사경을 헤매야 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저성장 국면이 계속되던 지난 2014년7월, 박근혜 정부가 새로 임명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부양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나섰다. 모든 수단이라지만 결국 그것은 규제완화를 통한 주택경기 활성화 정책이나 다름없었다.

대출규제, 청약자격과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까지 대부분 규제를 풀었다. 사상 최저 금리에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로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운용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에 나섰다.

은행들은 대규모 아파트 개발단지에 신용도를 불문하고 경쟁적으로 싼 금리를 제시하며 집단대출을 했다. 가계부채라는 불쏘시개를 머금고 주택건설시장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아파트 분양이 이뤄졌다. 전국의 주택건설 허가 규모는 2015년 76만 가구, 2016년 72만 가구에 달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했던 200만호 건설 사업 추진시기보다 많았다.

서울 강남이나 용인 등 수도권에는 청약대기 행렬이 다시 생겨났고, 아파트 청약에서 당첨만 되면 현장에서 수천만 원 씩 목돈을 받고 되팔 수 있게 됐다. 아파트 당첨권이 다시 로또가 된 것이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한 달 사이 수억 원이 오르기도 했다.
주택건설 인허가 규모 (자료 : 국토교통부)● 다시 부활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석 달 째인 지난 8월2일, 정부는 청약과 분양권 전매, 부동산 담보 대출, 재건축 요건 규제 등 전방위 부동산 투기 억제 방안을 발표하고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풀었던 부동산 규제의 태엽을 다시 되감기 시작한 것이다.

국세청이 다주택자에 대한 세무조사까지 하고 나서면서 달아오르던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속락하고, 거래가 끊기는 등 이른바 ‘부동산 거래절벽’이 현실화됐다. 정부와 민주당은 부동산 보유세 과세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더 강도 높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저성장과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대출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부동자금 규모도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결국 되는 것은 부동산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 수준이 중국 상하이나 홍콩, 뉴욕, 런던 등 다른 국제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도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버블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주기적으로 충격은 있었지만, 그래도 서울 강남 지역에 아파트를 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최소한 배 이상의 자산 규모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각인시켰다.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강남 3구에 집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자산형성에 치명적인 기회손실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 실거래가 추이 (자료 : 한국감정원)사실 정부가 발표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 부동산 투기를 더욱 심화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양도세를 올린다지만 그것은 부동산을 팔아서 수익을 냈을 때 수익의 일부를 내는 것이고, 청약자격을 제한하면 그 청약자격은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아진다. LTV와 DTI 같은 대출규제를 한다지만 은행이 규제를 하면 제2금융권의 대출이 늘어나고, 규제를 피해 편법으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냉각시켜 투기를 잡을 극약처방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지만, 금리를 올려도 어느 수준까지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1%대였던 기준금리를 5%대까지 가파르게 올렸지만 부동산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다가 2006년 8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한국가계의 실물자산 비중 (자료 : 한국은행)
● 주택정책은 공공주택 분야에 집중해야

경제학에서 지대추구 행위(rent seeking behavior)는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행위로 지목된다. 특정 지역에 부동산을 잡아 놓고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연하면 국가의 자원 배분이 왜곡돼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부자들은 대부분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청문회 때마다 장관이나 총리 후보자들은 부동산 투기행위로 질타를 받곤 한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부자들의 필수 보유 자산항목이고, 부자가 되기 위한 필수 투자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부동산 버블이 형성돼 터지면 가계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세의 상승은 부를 증식시키는 효과(wealth effect)를 유발해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된다지만, 부동산 가격의 지나친 상승은 주거비와 임대료라는 비용증가를 수반해 경제활동을 저해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 나아가 글로벌 부동산 시세가 어떤 지점에 와 있는가 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후 10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제로수준의 사상 최저금리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양적완화로 풀린 시중자금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는 버블붕괴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생아가 두 자릿수로 감소해 인구절벽이 현실화하고, 성장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지난해 건설투자 증가율은 성장률의 3배가 넘는 10.8%에 달했다. 건설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투자 증가는 가계부채 증가를 수반해 작년 가계부채는 11.5%(139조원)가 증가했고, 주택과 토지 등 가계의 실물자산 보유비중은 72%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가계부채 추이 (자료 : 한국은행)자동차와 조선, 전자 등 대한민국 주력산업의 국제 경쟁력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고, 초저출산과 고령화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치로 불어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조그만 외부충격에도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은 건설투자로 경기침체를 극복하려하면서 자산 버블붕괴와 20년 이상의 장기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사례를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는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 문제는 일본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다.

시스템 위기로 표현되는 경제위기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제2의 도약을 위해서 어떤 핵심 역량을 확보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주택정책의 우선순위는 시장 전체를 상대로 한 투기와의 전쟁보다 국민의 소득수준으로 살 수 있고 살기도 좋은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통한 주거생활 안정이 돼야 할 것이다. 교육정책이 사교육을 철폐하는 것보다 공교육의 정상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공주택 공급 물량은 최근 몇년 사이 오히려 줄고 있다. 작은 면적의 땅으로 좁은 나라지만 국민들이 내 집 마련 걱정을 하지 않는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정책은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모범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